[유기억의 야생화 이야기(23)-찔레나무] 찔레나무의 꽃은 흰색이다

2016. 3. 1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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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자 유기억교수가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노래방이 처음 소개되었을 무렵에는 노래를 부르며 노는 데 그보다 더 좋은곳은 없었다. 일정한 시간 동안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자신의 노래 솜씨도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소개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앨범들이 발표되고 있어서, 어떤 때는 마치 제3세계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따라 부르기는 포기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가사라도 음미해 보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뿐이다. 영어가 섞이지 않으며 노래가 안 되는 것인지 가사에는 반드시 영어로 된 부분이 있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것 또한 대부분 노래의 공통된 특징이다. 노래에도 분명 세대 차이가 있음을 실감할 뿐이다.

얼마 전에 노래 잘 하기로 소문난 가수의 콘서트에 갔었다.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티켓은 대형 공연장의 가장 좋은 자리였고, 대학 다닐 때 우연히 갔던 소극장 콘서트 이후 오랜만에 가는 콘서트라 함께 간 아내와 나는 약간 들떴을 뿐만 아니라 자못 기대도 되었다. 요란한 리듬과 춤으로 무장한 젊은 가수들과는 달리 은은한 목소리와 가창력을 바탕으로 콘서트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노래를 알리는 바람직한 노래꾼이었다. 두 시간 남짓한 공연 동안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할 만큼 신나는 분위기의 공연이 끝나갈 무렵, 노래는 트로트풍으로 바뀌어 갔고, 관객들은 점점 더 열광하게 되었다. 역시 우리 정서에는 전통 가요가 단연 최고 인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노래방 목록 중에는 백난아라는 가수가 부른「찔레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노래방에서도 내 직업의식은 여지없이 발동한다. ‘ 찔레꽃 붉게 피는……’으로 시작하는 가사가 딱 걸린 것이다.

찔레나무(Rosa multiflora)의 꽃 색깔은 흰색이기 때문이다. 가끔 연한 붉은빛이 도는 개체도 없지는 않지만 붉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남쪽 지방에는 붉은색 꽃이 피는 찔레나무 종류가 있는 것일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해당화나 줄딸기, 또는 울타리 대신 심는 원예종 덩굴장미 종류를 잘못 보고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찔레나무에 얽힌 어릴 적 기억도 많다. 가시가 있는 나무라 낫이나 칼 없이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어서 쉬이 다가서기 힘들었는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다가가는 이유는 바로 새순 때문이었다. 봄이 되면 묵은 가지에서 새로 올라오는 새순을 따서 겉껍질을 벗겨 내고 입에 넣으면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것이 감칠맛이 있었다. 내 고향에서는‘찔렁’이라 불렀는데 그야말로 천연 야채 샐러드였던 셈이다. 가끔 야외실습을 나가서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보지만 반응은 영신통치가 않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맛있는 간식이자 자연과 만나는 정겨운 놀이의 일부였는데 말이다.

새순뿐만 아니라 열매도 요긴하게 쓰였다. 겨울이면 찔레나무 열매를 이용해서 새를 잡았다. 눈 내린 논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주워 놓았던 벼 이삭을 올려놓고 하루 정도 새들을 유인한 후에 다음날쯤 벼이삭과 함께, 구멍을 내서 안에 독극물을 넣은 찔레나무 열매를 섞어 놓으면 그것을 주워 먹은 꿩이나 산비둘기를 잡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너무나 재미있는 놀이이자 사냥이었다.

찔레나무 열매

속명 ‘Rosa’는 장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rhodon’과 붉다는 의미의 켈트어 ‘rhodd’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종소명 ‘multif lora’는 꽃이 여러 개 달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찔레나무라는 우리 이름은 줄기에 가시가 있어 찔릴 수 있는 나무라는 뜻일 것이다. 형태가 비슷한 종류로는, 잎과 꽃차례에 선모가 많은 털찔레, 작은 잎의 길이가 1∼2센티미터이고 꽃이 작은 좀찔레, 턱잎의 가장자리에 톱니가 거의 없고 암술대에 털이 있는 제주찔레가 있는데 모두 찔레나무의 변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찔레나무는 지방에서 ‘가시나무’, ‘설널네나무’, ‘새비나무’, ‘질누나무’, ‘질꾸나무’, ‘찔네나무’, ‘들장미’, ‘야장미’등으로 불리기도한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영실(營實)이라 하여 불면증이나 건망증에 사용하며, 식욕을 돋우거나 종기를 낫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찔레나무가 포함된 장미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 종류가 모두 속해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 낸 장미 품종만 1만 5,000종 정도라고 하니 가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름다운 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노래 가사처럼 찔레꽃이 붉은색이었다면 화려한 장미 종류에 묻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흔하지만 더 관심이 가는 식물이다.

유기억 yooko@kangwon.ac.kr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며, 식물분류학이 전공인 필자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숲 해설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생화를 주로 그리는 부인 홍정윤씨와 함께 책 집필 뿐 만 아니라 주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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