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연공서열 뛰어넘는 '특별승진' 바람
신한은행 이천금융센터에 근무하는 행원 조슬기(26)씨는 최근 일반직으로 특별 승진했다. 2013년에 RS(리테일서비스) 직군으로 입행한 지 3년 만이다. 그간의 은행 인사 관행에 따르면 적어도 9년은 근무했어야 하는데 불과 3년 만에 승진했다. 그는 3년 연속 리테일 우수상 등을 받는 탁월한 성과를 냈고, 60대 장애인 고객을 양아버지로 모시면서 안부를 챙길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3일 조씨 등 8명을 특별 승진시켰다.
지난해 적립식 상품을 무려 568건이나 유치한 하나은행 이모진(37) 대리도 최근 발탁 인사에서 승진했다. 지난 2002년 충청은행 대전영업부에서 복사 등 잡무를 처리하는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2004년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11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지난 1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KEB하나, 뉴스타트 2016' 행사에서 이씨 등 6명의 우수 실적자들을 "마케팅 영웅"이라고 소개하고, 특별 승진을 발표했다. 연공서열의 호봉제에 묶여 '거북이 승진'이라는 말을 듣던 은행권 인사가 달라지고 있다. 초저금리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성과를 높이기 위한 '당근'으로 발탁 인사가 확대되면서 은행권의 연공서열 인사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은행권에 몰아치는 '특별 승진' 바람
이 같은 바람은 은행권 전체에 불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지난 23일 일산 킨텍스에서 임직원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16년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성과가 좋은 직원을 인사에서 우대하는 인사 제도가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성과 중심의 인사 확대를 올해 추진할 10대 과제의 하나로 제시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수한 직원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는 것은 인사의 당연한 원칙"이라며 "올해 우리은행의 인사는 연공서열보다 실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몇년 전부터 특별 승진을 늘리고 있고, 특히 지난해에는 외국인 직원들을 대거 특별 승진시키기도 했다.
신한은행의 이번 특별 승진은 예년보다 폭이 커졌다. 통상 3명 정도에 그쳤는데 이번엔 지점장 4명, 부지점장 2명, 과장 1명, 행원 1명 등을 승진시켰다.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특별 승진 폭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섭 농협은행장도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이 보상받는 조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에 걸맞은 파격 인사를 이번에 단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른 은행들도 현재 시행하고 있거나 검토 중인 특별 승진의 폭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성과주의 확산과 연결
특별 승진은 금융위원회가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깨뜨리기 위해 추진하는 성과주의 임금 체계 개편과 관련이 있다. 노조 반발을 우회하는 '연착륙'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은행권은 노조의 반대로 지점이나 부서 단위의 집단평가만 하고, 개인별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한 지점의 성과급 등급이 정해지면 모든 직원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래서는 성과가 높아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저성과자들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특별 승진은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깨뜨릴 수 있는 방안이다.
은행 노조들은 성과주의가 '특별 승진'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해 특별히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A은행 노조 관계자는 "은행에서 특별 승진을 시켜주는 은행원들의 성과는 전산상으로도 논란이 없게 명백하고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노조에서도 이견이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분위기가 결국에는 성과주의와 연봉제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노조 측은 경계하고 있다. 성과급 비중을 높이려는 기업은행의 경우 지난 4일 '성과주의 저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나기수 신임 노조위원장은 지난 8일 취임식에서 "파업을 불사해서라도 성과연봉제를 저지하고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작년 12월 '개인별 성과평가제도 도입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 건 후보가 전체 투표자의 절반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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