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먼저 태어났을 뿐인데.. 엄마는 왜 나만 희생시킨 걸까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기어이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을 저질러 놓으면, 곁의 누군가가 또 열심히 그 뒷감당을 하는 법이라는 걸 날 때부터 아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을 아우로 둔 오늘의 손님은 고백합니다. 내 몫의 삶을 빼앗긴 기분이라고. 그러나 그 원망이 동생이 아닌 어머니를 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홍여사 드림

똑같은 레이스 공주 옷에 하나는 왕관 쓰고, 또 하나는 요술봉 들고 엄마, 아빠보다 앞서 걸어가는 쌍둥이 자매를 보면 누구나 미소를 짓겠지요. 하지만 저는 눈길을 피하게 됩니다. 공주 놀이와는 거리가 멀었던 저희 쌍둥이 자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서너 살 무렵까지는 우리도 똑같은 분홍색 내복을 입고 사진 찍히며 인형처럼 귀여움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서로 불화하고, 아버지가 집을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핑크색 어린 시절은 끝이 났습니다. 결국 두 분은 저희 자매가 여섯 살 때 헤어지시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엄마는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들을 낳지 못해서 남편을 잃었다고요. 삼대독자 남편에게 아들이 아닌 딸을, 그것도 쌍둥이로 안겨놨으니,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엄마는 딸 쌍둥이의 부정적인 면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신기해하고 귀여워하는데, 엄마는 부끄러워했습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그 뒤에 생략된 말을 우리 자매는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급기야 쌍둥이 딸을 떼어 놓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저는 일곱 살에 입학시키고 동생은 일부러 한 해 늦게 입학시키셨죠. 저는 동급생들에 비해 왜소하고 늦되어서 존재감 없이 학교를 다녔고, 동생은 워낙 키도 크고 꾀도 많아서 자기 학년에서 유명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공부밖에 모르는 조용한 학생이 되어 갔고, 동생은 재주도 많고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꽤 하는 팔방미인이 되어 갔습니다. 사실 쌍둥이는 같은 유전자를 타고나니까, 재주도 지능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 경우에는, 모든 것이 엄마의 의도적인 양육 방식 차이로 달라져 버렸습니다. 겨우 10분 차이인데, 언니인 저에게는 의젓한 장남 노릇을 기대하셨고, 동생에게는 고명딸 역할을 맡기셨어요. 그렇게 설정이 된 뒤로 우리의 인생은 판이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특히 대학 진학할 때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엄마는 딸들에게 교대 진학을 기대하셨어요. 아버지도 안 계시고, 형편도 어려우니 안정된 직장을 갖길 원하신 거죠. 저는 엄마 말씀대로 교대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받아들였습니다. 원래 바라던 꿈은 신문방송 쪽이었지만, 그런 말은 해보지도 못했어요. 이듬해에 동생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선언하더군요. 그리고 제 맘대로 원서를 썼습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엄마의 반응입니다. 화를 내지 않고, 쉽게 포기하더군요. 만약 제가 엄마 뜻을 거슬렀다면 엄마는 길길이 뛰며 너 죽고 나 죽자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동생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더군요. 오히려 저를 불러 달랩니다. 네 동생은 원래 자기애가 강하니까, 억누르면 잘못된다, 네가 양보하고 도와줘야 한다고요. 자기애라…. 그 말은 언제나 저를 주눅 들게 했습니다. 나에게는 왜 자기애가 없을까? 자기애만 있었으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그 뒤로 십몇 년 세월은 엄마의 그 말, 동생을 도와주고 양보하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교편 잡으면서 동생 대학원 학비를 댔고, 영어공부 하러 갔다 온다고 해서 그것도 뒷바라지했습니다. 무슨 시험 본다고 2년만 도와달라는 거 거절했다가 엄마한테 또 그 소리를 들었어요. 우리 삼모녀 약 먹고 죽자고요.
결국 학원비에 용돈 주며 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했는데, 2년을 채우자 동생이 선언하더군요. 결혼한다고요. 그러니까 지금껏 공부 뒷바라지한 저에게 시집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연애 한번 못해보고 결혼은 꿈도 못 꾼 채 가장 노릇에 지쳐 있던 저는 동생의 결혼을 나 몰라라 외면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엄마가 저를 달래고 어르더군요. 어쩌느냐 시집은 보내야지. 저거 보내 버리고 너랑 나랑 오순도순 살자.
그 길로 제게 카드 빚과 엄마를 남기고 시집간 동생은 처녀적 모습과는 다르게 만능 살림꾼이 되어 아들 낳고 잘살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학교를 다니며, 그 흔한 노처녀 선생님이 되어 있고요. 어릴 때는 동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고 나중에는 엄마가 걸렸습니다. 제가 선본 모든 남자를 일언지하에 실격 처리해버리고, 차라리 너랑 나랑 재미나게 살자는 엄마이니, 어떻게 걸리지 않겠어요. 이런 말 하면 동생은 코웃음을 칩니다. 결혼은 이런 거 저런 거 따져가며 하는 게 아니라 일단 꽂혀서 저지르고 보는 거랍니다. 그럼 저는 속으로 말하죠. 얘! 나한테는 뒷감당해줄 사람이 없거든….
늙으신 엄마는 동생 집에만 다녀오면 행복에 겨워합니다. 이모들에게 전화해서 자랑하죠. 둘째 고것은 신랑도 휘어잡고, 부자 시아버지도 꽉 틀어잡고, 아들내미 영재 교육 시키면서 진짜 똑 부러지게 산다고요. 그러곤 덧붙입니다. 아, 우리 큰애야 효녀지. 조선에 없는 효녀야. 응. 그래, 내가 딸 복이 고루 많아.
효녀! 그 말이 제 목을 조여옵니다. 내 맘이 시켜서 걸어온 길이라면 저는 자랑스럽게 효녀 명찰을 달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상황에 몰려, 엄마와 동생의 기에 눌려 내 몫을 빼앗기며 살아온 기분입니다. 물론 저를 믿고 맘 편히 노년을 맞는 엄마를 보면,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뿌듯한 마음 뒤엔 꼭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역시 제가 못난 걸까요?
엄마에게 묻고 싶습니다. 엄마는 왜 두 딸 중 하나를 희생시키려고 했으며, 그게 왜 나였는지. 앞으로도 엄마와 단둘이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하는 저로서는, 그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가 힘드네요.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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