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논픽션] '배대슈' 오역 논란으로 본 영화번역계의 진짜 문제


[SBS funE | 김지혜 기자]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감독 잭 스나이더)이 개봉과 동시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대 이하의 완성도와 재미라는 혹평 세례 탓에 흥행 질주에도 제동이 걸렸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바로 오역 논란이다. 시작은 예고편부터였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인 ‘It’s time you learned what it means to be a man"(인간이 된다는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을 "남자답게 굴때도 됐잖아"로 번역해 논란이 일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의 관계자는 "예고편의 번역가와 본편의 번역가가 다르다. 예고편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본편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언론시사회 직후 "너무 뻔해서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뜻의 Water is wet(원문은 water, wet)을 고담시는 타락했고, 물은 젖어있다라고 오역했다"고 지적했다.
개봉 후 관객들 사이에서도 번역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번역가가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지식이 폭넓지 않아 잭 스나이더 감독이 떡밥으로 제시한 소스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게다가 이 영화뿐만 아니라 번역가의 과거 오역 사례까지 거론하며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오역 논란은 다소 과열된 양상을 띠었다. 오역 논란은 언제, 어떤 번역가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계산기처럼 정답이 떨어질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번역은 자막 제작을 염두에 둔 작업이다. 한 줄에 13자, 두 줄 이내의 자막을 스크린에 띄우는 것이 보편적 시스템인 탓에 가독성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를 위한 말줄임과 말맛은 번역가의 역량을 확인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번역가는 창작자의 의도를 살린 정확한 번역을 제1의 원칙으로 하되 상징과 은유가 돋보이는 의역도 곁들인다. 모든 오역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의도된 오역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살리는 경우도 많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몇몇 번역가들이 직배사의 외화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적 특성을 생각하면 전속에 가까운 일감 몰아주기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박지훈 번역가는 국외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코리아와 20세기폭스코리아의 개봉 영화를 10년 가까이 전담 작업해 오고 있다.
워너브러더스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랜 시간 보여준 결과물이 박지훈 작가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100점짜리 번역가는 없다. 박지훈 번역가는 평균 90점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실력자다. 그점 때문에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단 워너나 폭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다른 직배사인 UPI코리아 역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특정 번역가에게 일을 맡겨 왔다.
물론 이들은 영화번역계에서 톱(TOP)으로 불리는 실력자다. 그간 수많은 히트작을 작업해 왔고, 센스 있는 번역을 통해 관객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경험은 좋은 스승이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영화를 작업해 온 경험은 신진 번역가들이 단기간에 획득할 수 없는 특급 번역가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연간 백여 편이 넘는 직배 영화가 3~4명의 번역가에게 몰린다는 것은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 한 편의 영화를 번역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일주일 내외. 단기간에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에 진행하는 상황에서 예상치 않은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일의 원천이 되는 영화번역가는 사실상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그러나 번역가마다 색깔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른 만큼 각각의 전문 분야나 특화된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가 다루는 소재나 이야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더 좋은 번역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계에서 번역 분야는 세대교체가 더딘 곳으로 꼽힌다. 실력 있는 번역가라도 자리를 잡기가 쉽기 않다. 그만큼 신인들에겐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다. 자유 경쟁 논리가 무색한 직배사의 안정 지향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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