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단지>-평생 투쟁 속에 살아야 하는 딸들에게
가족 내에서 남자들의 일상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여자들의 일상은 늘 투쟁이다. 여자들은 언제나 가사와 씨름하고 시어머니에게도 욕을 된통 먹어가면서 하루하루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우리집에는 내가 책장이 닳도록 넘겨보던 동화책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인 깜순이가 커다란 냄비 안에서 익어가는 닭을 물끄러미 보다가, 닭다리 두 개를 하나씩 툭, 툭 치며 “이건 아빠 꺼, 이건 동생 꺼” 하는 장면이었다. 깜순이의 동생은 남자였고, 깜순이는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닭다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깜순이는 마당의 닭을 괜스레 괴롭히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넌 왜 다리가 두 개니? 왜 두 개뿐이니?”
내 어린 시절도 그랬다. 아들이 있는 집에서 닭다리를 먹어본 딸이 몇이나 될까. 오빠, 혹은 남동생이 닭다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예외겠지만, 어쨌든 선택권은 항상 남자 편에 있었다. 닭다리뿐만 아니라 가족의 대소사에 있어서도 결정은 늘 남자가 하곤 했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단지>의 가족이 그랬듯이 말이다.

| 작품 속 ‘단지’의 가족은 남성 중심적인 사고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그 사고를 고스란히 다른 식구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 레진코믹스 제공 |
닭다리 선택권은 언제나 남자 편에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끼인 둘째 딸 단지의 이야기 <단지>는 가족 안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적 차별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준다. 오빠와 남동생이 집에 있는데도, 비가 와 빨래를 걷어야 한다고 엄마는 구태여 외출한 단지를 다시 들어오게 한다. 어린 시절에조차 단지는 아이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그보다 더 어린 남동생을 돌보는 존재로만 그친다. 단지가 다친 때에도 엄마는 그녀를 무심히 병원에 데려갈 뿐, 그 어떤 따뜻한 말이나 위로를 건네지 않는 것이다. 단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다르지 않아서, 엄마의 지갑 안엔 늘 남동생과 오빠의 사진뿐. 그 안에 단지의 얼굴은 없다.
하지만 가족 내 폭력성이 조금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웹툰 <단지>에서 그려진 가족의 모습은 사실 ‘반도의 흔한 가족상’이다. 가족의 주된 결정권은 아빠와 아들을 따라 움직이고, 엄마와 딸은 늘 그 하위에 머물며 가족의 일상을 유지시키기 위한 모든 노동에 복속된다. 가족 내에서 남자들의 일상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자들의 일상은 늘 투쟁이다. <단지> 후반부에 등장하는 엄마의 에피소드처럼, 여자들은 언제나 가사와 씨름하고 시어머니에게도 욕을 된통 먹어가면서 하루하루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단지>에서는 엄마가 주인공인 단지에게 이러한 굴레를 그대로 뒤집어씌우며 단지를 다른 아들들과 차별하며 키워 낸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쉽게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의 말들이 엄마를 향하고 있다고 해서 이 말이 맞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엄마 역시 한국 가족의 프레임 안에서 규정되어온 성차별과 불평등 속에 자라왔으며, 그 안에서 자신을 학대 속에 방치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딸에게 폭력과 학대를 물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폭력의 주체는 엄연히 엄마이고,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우리가 <단지>를 통해 읽어야 할 것은 주인공 단지의 상처뿐 아니라 이러한 불평등을 딸에게 내재시키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해왔던 남성 중심성의 가족이다.
<단지>의 후반부엔 딸 시절의 엄마가 등장한다. 그녀의 세상 속에서 ‘딸’은 아들과 결코 평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윽고 엄마가 된 그녀가 ‘딸’인 단지를 보았을 때 단지에게 부과해야 할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세상에서 딸은 여전히 부정한 사람이고, 따라서 딸을 낳은 부정함의 대가로서 그녀는 그녀가 겪어온 ‘딸’의 이름을 단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단지 작가의 만화 <단지>의 한 장면. / 레진코믹스 제공 |
할머니가 엄마를, 다시 엄마가 딸을
이것은 남성 중심성의 사회에서 살아온 모든 여성에게 적용된다. 나의 경우 내게 닭다리를 포기하게 한 건 할머니였다. 동화책에서도 깜순이의 할머니가 닭다리로 향하는 깜순이의 손을 탁 때리고 아버지와 오빠의 접시로 닭다리를 날라 준다. 그러면 남자들은 무심히 자신의 접시에 놓인 닭다리를 먹을 뿐인데, 그들 눈에는 번번이 닭다리를 먹지 못하는 나와 깜순이, 단지가 어떻게 보였을까?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라 우리는 보이지조차 않았을까.
더 참혹한 것은 이러한 남성 중심성의 사회 속에서 그 풍경을 당연한 일로 유지하는 과업을 여자들이 떠맡아 왔다는 사실이다. 할머니가 엄마를, 그리고 다시 엄마가 딸을 그렇게 교육시킨다. 그렇게 해서 딸은 자신의 한계와 임무들을 배워가며 딸로 태어난 원죄를 지속적으로 내면화한다. <단지>의 주인공 단지조차 엄마와 대면하여 그간 불편했던 마음을 꺼내놓지만 결국은 또 김장을 하러 본가로 향한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순종적인 딸과 상처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그녀의 자아가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결국 순종적인 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로부터 독립을 꿈꾸더라도 딸들은 평생을 투쟁 속에 살아야 한다. 가족과의 투쟁, 엄마와의 싸움, 또한 가장 내밀한 곳에서 나와의 전쟁까지.
딸들의 싸움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약 80여년 전에도 남성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독립하고자 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기리는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여자는/ 왜/자신의 집을 짓기 위하여/ 자신을 통째로 찢어발기지 않으면 안 되는가,/ 검정나비처럼 흰나비처럼/ 여자는 왜/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하여선/ 항상 비명횡사를 생각해야 하는가.”(김승희, ‘나혜석 컴플렉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이 땅의 딸들은 ‘온전한 나’를 꿈꾼다. 김장하지 않아도 되고,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아도 되며, 결국 딸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해방되어도 좋은 ‘나’ 그 자체를.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는 끝내 비명횡사를 각오해야만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이토록 작은 긍정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말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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