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의 역사>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사진 51'

전하연 작가 2016. 5. 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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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저녁뉴스]

[EBS 뉴스G]

최근 CNN에서는 세계 과학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룬 

여성 과학자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영국의 

화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도 있었는데요. 그녀는 인류에게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요?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올해 세계 여성의 날에 CNN에서는 

세계 과학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여성 과학자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로잘린드 프랭클린도 있었는데요, 

그녀는 최초로 DNA의 이중나선형 구조를 보여주는, 

X선 사진을 찍은 과학자로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업적은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고 

오랜 세월 잊혀야 했죠.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1920년 영국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물리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의 국립화학연구소에서 4년 동안 근무하게 되는데요,

이때 X선 회절 분석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X선 사진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유전정보의 비밀이 DNA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DNA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큰 과제였습니다.


프랭클린은 당시 킹스 칼리지에서 

X선 회절 사진 경력이 있는 유일한 연구가였는데요, 

그녀는 오랜 노력 끝에 

DNA의 이중나선형 구조를 보여주는 사진을 찍게 됩니다. 

바로 X선을 100시간 동안 쪼여서 얻은 

‘사진 51’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확하고 충분한 확증을 얻기까지 

발표를 미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동료였던 모리스 윌킨스는 

그녀의 ‘동의’ 없이 ‘사진 51’을 

그녀와 경쟁관계에 있던 제임스 왓슨에게 보여주죠.


왓슨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프란시스 크릭과 DNA 모델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프랭클린의 사진과 발견에 기반을 둔 

DNA 이중 나선 모형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지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죠.

이 발표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랭클린의 자료를 

사용했다는 것을 함구했습니다.

프랭클린은 1953년 3월 킹스 칼리지를 떠나 

버크벡 칼리지로 옮깁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담배모자이크병 바이러스와 

RNA에 관한 연구를 했고 

5년간 바이러스에 관한 17개의 논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버크벡 칼리지로 온 지 3년 뒤 

그녀는 난소암에 걸리게 되는데요,

X선에 많이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녀는 세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연구에 전념했지만 

1958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망한지 4년 뒤인 1962년 

왓슨과 크릭, 윌킨스는 DNA 분자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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