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 그리고 '홈마'의 연결고리
아이즈 ize 글 고예린

지난 4월 1일 만우절, MBC 예능연구소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권해봄닷컴’으로 변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모르모트 PD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는 권해봄 조연출의 팬페이지 계정처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권해봄닷컴’은 만우절 하루 동안 고화질 ‘직찍’ 프리뷰와 사진, 캘린더와 슬로건, DVD 제작 이벤트, 심지어 서포트를 전달하러 왔다는 트윗까지 올리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런 팬페이지들을 운영하는 ‘홈마(홈 마스터)’의 문화를 재현했다. 만우절 이벤트를 종료하면서는 “권해봄닷컴은 절대 사생(아이돌의 사생활을 따라다니는 팬)이 아니며 해봄과 친목을 도모한 적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이돌 팬들에게 익숙할 ‘홈마’ 문화와 함께 동시에 그들이 ‘사생’이라는 시선을 받는 지점까지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만우절 장난이기는 하지만 MBC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언급될 만큼, 아이돌 팬들은 ‘홈마’들이 콘서트나 음악방송 등 공식적인 스케줄 외에도 음악방송 출·퇴근길, 해외 활동 시의 공항 입·출국 등 일상적인 스케줄에서 찍고 보정한 사진들을 소비한다. 한 인기 보이 그룹 ‘홈마’ A 씨는 “아이돌 팬덤에서 팔로워가 빨리, 또 많이 늘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직찍’ 사진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홈마’들이 찍은 고화질 사진을 각종 커뮤니티들에 올려 일반인들을 팬으로 만드는 것은 팬덤 확장의 주요 루트가 되고, 이제 ‘홈마’의 숫자는 팬덤의 규모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정도다.
물론 사진을 올리는 것부터 사진을 바탕으로 굿즈를 만드는 것까지, 이 모든 과정에는 초상권과 저작권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획사에서도 ‘홈마’들의 활동을 완전히 없앨 만한 제재를 취하기는 어렵다. 아이돌이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팬들에게 제공하는 홍보 창구를 잃는 것은 소속사 입장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한 보이 그룹이 ‘홈마’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굿즈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다수 ‘홈마’들이 홈을 닫으면서 팬덤의 규모가 확연히 줄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당 소속사는 결국 팬들의 항의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신인 걸 그룹의 ‘홈마’ B 씨는 “슈퍼스타도 아닌 신인인데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을 엄격하게 제지하면 좋을 것이 없다. 기존에 있던 핵심적인 팬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고 말할 정도다. 무엇보다 ‘홈마’들은 단지 ‘직찍’이 아니라 그들이 담는 아이돌의 이미지를 최대한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한 신인 보이 그룹의 ‘홈마’였던 C 씨는 “멤버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여도 최대한 멋있어 보이게 찍고 흑백 처리를 해서 올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홈마’와 아이돌 소속사의 관계는 협력과 긴장을 반복한다. 과거 아이돌이 속한 소속사에서 일했던 관계자 D 씨는 “2차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커져서 회사에서도 초상권에 대한 부분은 엄격하게 신경을 쓰지만, 최근에는 ‘직캠’ 등이 활발해지면서 유연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정말 서포트 활동을 하기 위해서 만드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홈마’라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미리 협의해 특정 포토타임을 주기도 하고, 활동 초기 팬들이 많이 없는 경우에는 심하게 규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D 씨는 “실제로 호텔 옆방을 잡아놓고 호텔 복도에서의 모습 같은 것을 찍어서 파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부분은 법적 제재뿐만 아니라 그런 활동이 범죄라는 걸 각인시킬 만한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함께 한다. 남들이 찍지 않는 사진을 올리기 위해, 쉽게 용인하기 힘들 정도인 사생활의 공간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도 나타난다. B 씨는 걸 그룹 팬덤은 보이 그룹과는 지형이 약간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남성 팬들이 많은 걸 그룹의 경우 ‘홈마’들에게 해주는 팬서비스를 보고 홈을 열고는, 멤버들에게 계속 붙어 다니거나 마치 여자친구처럼 이야기하려고 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을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홈마’가 대다수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인기 보이 그룹의 홈마 E 씨는 “대부분 ‘홈마’들은 돈을 쓰면 썼지 벌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명 아이돌의 ‘홈마’들은 홈페이지 안에 판매 페이지를 만들어서 재고를 만들어두고 가격을 매겨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팬덤 내부에서도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 ‘홈마’들에게는 ‘애정을 기반으로 해야지 왜 멤버들로 장사를 하느냐’는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거리까지 다가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확한 기준보다는 각 팬덤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경계가 그어지는 것이다. C 씨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카메라를 듦으로써 면죄부가 생겼던 것 같다. 멤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제작하고, 그들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홈마’는 최대한 아이돌의 모습을 자주, 많이 노출시켜야 하는 소속사와 과거와 달라진 팬들의 수요가 맞닿으면서 나타났고, 일반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키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팬과 아이돌 사이의 어디쯤 있는 이 새로운 포지션이 어떤 역할과 룰을 가져야 할 것인지는 합의되지 않았다. 과연 이곳에 모두 어느 정도나마 수긍할 수 있는 룰과 질서가 생겨날 수 있을까. 그러한 질서가 자리 잡는다면, 어쩌면 ‘홈마’들은 새로운 시장을 향한 출발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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