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演技 수업 다시 받았어요"
영화 '만추'(1966) '삼포 가는 길'(1975)로 기억되는 고(故) 이만희 감독의 마지막 연인(戀人)이었던 배우 문숙(62)이 돌아왔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과 하얗게 센 머리를 그대로 드러냈지만 아름다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바르는 거 없어요. 얼굴이 건조하면 식용(食用) 올리브유를 바르고, 코코넛 오일로 닦아내요. 고구마나 오이를 바구니에 담아 다니며 간식으로 먹고요."

요가와 자연주의 식이요법에 정통한 문숙은 노하우를 담은 책 '문숙의 자연식'을 냈다. 지난해엔 영화 '뷰티 인사이드'로 39년 만에 스크린에도 복귀했다. 서울 북촌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그녀는 요가 센터와 명상 시설에서 요가와 음식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문숙이 기억하는 이만희 감독은 '죽이게 멋있는 남자'였다. 1974년 영화 '태양을 닮은 소녀' 오디션에서 만나 단박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철없는 스무 살 여배우가 스물세 살이나 많은 이혼남을 선택한 거죠. 혼인신고도 안 하고 살았어요." 둘은 '삼포 가는 길'을 작업하면서 더 사랑에 빠졌다. 문숙은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삼포 가는 길'에서 멈추고 만다. "본래 간이 안 좋았는데 무리했던 모양이에요.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면서 '월요일에 보러 오겠다'고 하고 집에 갔어요. 그게 마지막이 됐어요. 월요일 아침 나갈 채비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이만희 감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어요."

문숙은 197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사람 없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라고 했다. "드라마 촬영 때 사고로 머리를 아홉 바늘이나 꿰맸어요. 혼이 나가 있었죠. '더 버틸 수 없겠다' 싶어 한국에서 제일 먼 곳을 찾아 떠났어요. 그게 미국 플로리다였죠." 이후 대학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한 문숙은 화가로 활동했고, 미국인 남편을 만나 2남매를 낳았다.
그는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살았다"고 했다. "영화를 편집하듯 과거를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어요. 늘 선글라스 썼고, 한국 사람이다 싶으면 고개를 돌리고 도망갔죠." 서른여섯 살에 이혼해 홀로 두 자녀를 키웠다. 외로움은 더해갔고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 몸이 망가졌다. 두통이 심했고 온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고통이 계속됐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서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 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픔을 나누고, 밤에 사막에 나가 달을 보며 수련했다. 이후에는 요가를 가르치기에 이르렀다. 삶의 방식도 바꿨다. 가공식과 육류는 최소한으로 먹고, 유기농 채소 위주로 섭취했다. 하와이 마우이로 이주해 자연주의적인 삶을 살자 건강이 회복됐다.
2014년 겨울 귀국한 문숙은 한때는 애써 잊으려 했던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영화 복귀에 이어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에서 로펌 대표 역을 맡아 촬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이만희 감독의 딸인 배우 이혜영(54)씨 등 그의 가족과도 재회했다.
"연기 수업을 다시 받는 기분이에요. 훌륭한 젊은 배우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데, 이런 나를 써주는 게 고마운 일이에요. 40여 년 전에 영화 대여섯 편 찍었을 뿐인 저를 기억하고 찾아주는 감독들과 팬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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