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70인 과의 동행] (13) 강명관 교수와 부산 보수동책방골목
[경향신문] ㆍ헌책 미로 따라…현대사 굴곡 따라…‘과거로의 시간여행’
ㆍ상세 일정은 70.khan.co.kr

지난 4일 전국에 비가 내렸다.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비로 불쾌지수가 높아진 날이었다. 서울~부산간 왕복 10시간이 넘는 여행.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당일치기 버스 답사로는 추천 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70인과의 동행’에 참가한 시민들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답사를 위해 이른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 50세를 넘긴 장년층이었지만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헌책방을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일부는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여행’을 기대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58)가 책방골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됐다.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지식과 함께 한문학을 현대의 글로 쉽게 풀이하기로 유명한 강 교수 역시 동행인들 앞에서 곧바로 추억에 잠겼다.
강 교수는 책방골목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전쟁은 책을 없애기도 하지만 책의 장소를 옮긴다”고 했다. 과거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책이 쏟아져 나온 것이 6·25 전쟁 이후였듯 보수동에 책이 쏟아진 것도 전쟁 때문이라고 했다.

전쟁이 터지자 피란민이 부산에 모여들었다. 부산 중구와 동구, 서구, 영도구 일대에는 서울서 피란을 온 천막학교가 생겨났다. 산기슭에는 판잣집과 골목이 생겨났고 골목마다 학생들로 붐볐다. 한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에서 사과궤짝을 놓고 헌책을 팔기 시작했다. 인근 부평동 깡통시장에서도 팔 수 있었지만 텃세가 심하고 깡패가 많아 비교적 한적한 보수동을 선택한 것이었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읽은 책은 팔고 헌책을 사서 봐야 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노점책방은 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노점책방이 하나둘씩 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자연스럽게 긴 책방골목이 형성됐다. 새 학기가 되면 골목에 늘어선 책 보따리가 장관을 이뤘다.
1960년대 들어 노점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책꽂이가 있는 책방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2~3평짜리 작은 점포 70~80여개가 100여m가량 줄지어 선 골목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점간 인수합병으로 현재 서점 수는 50여곳으로 줄었지만 매장이 커지면서 450m의 골목이 형성됐다.

1980년대 초에는 이 책방골목에 고서가 많았다. 책을 짊어지고 피란을 온 이들이 돈이 궁해지자 내다 판 책이었다. 당시에는 오래된 일본 서적도 많았다. 인근 대신동에서 쏟아져 나온 책이었다. 대신동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거주지였다. 패전 이후 몸만 빠져나가고 가져가지 못한 일본인들의 책이 책방골목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책방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따라 삼삼오오 산발적으로 담소가 이뤄졌다. 1970~80년대 책방골목과 민주화운동에 얽힌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1976년 보수동의 한 교회에서 청년부 회지 ‘책방골목’ 창간호를 만들어 배포하자 경찰은 청년부 회장과 회원 등을 구속했다. 회지 인사말에 실린 글이 문제였다. “아프다. 아파도 왜 때리느냐고 반항하지도 못한다…. 왜 때리느냐고 반항해 보자. 달려들어 같이 치고받고 육탄전이라도 해보자. 우리 올바른 삶을 위하여 아니 떳떳한 죽음을 위하여 힘써 이 땅의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현시키자. 한국적이니 유신이니 따위는 말고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구속 이유는 ‘한국적이니 유신이니 따위는 말고’라는 구절이 ‘긴급조치 제9호’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책방골목사건’이다. 재판 결과 집행유예로 모두 풀려났다. 김광일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신군부가 조작한 대표적 공안사건인 ‘부림사건’도 책방골목과 인연이 깊다. 1978년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의 ‘합동서점’이 책방골목에 문을 열었다. 정치·종교적 중립을 지키고 조합원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조합의 목표였다. 대학생, 회사원, 교사 등 조합원이 570여명으로 늘어났다. 부마항쟁이 터지자 유신정권은 회원들을 배후로 몰았다. 300여명이 연행되고 조합은 강제 해산됐다. 그러나 상당수 조합원들은 계속 모임을 가졌고, 결국 부림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고 노무현 대통령역)가 헌책방에 팔았던 고시 책을 다시 사는 장면이 바로 책방골목에서 촬영한 것이다.
책방골목을 둘러보던 동행인들 중에는 실망감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고서나 제법 오래된 책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가 깨진 것이다. 상당수 서점이 최근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헌책만으로는 서점운영이 어려웠고 어린이도서와 중·고교 참고서를 취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대째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양수성 책방골목번영회장(43)의 ‘동방미술회관’도 몇 안되는 고서적 서점이지만 고미술품으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와 70년대 희귀본까지 헌책 20여만권을 소장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책을 겹겹이 쌓아 미로 같았다. 밖으로 나오기는 더 힘들었다. 한 동행인이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가 있느냐고 묻자 양 회장이 1분도 안돼 책을 들고 나왔다. 신기했다. 1976년 초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동행인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1998년 책방을 아버지께 이어받았다는 양씨는 “웬만한 책의 위치는 다 안다”고 했다.
또 다른 책방 ‘우리글방’은 벽을 터 책방과 커피숍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비좁긴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1980년대 사회과학서적이 한면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대한제국시절 초등학교 수학교과서인 <신정산술(新訂算術)> 등 고서적과 을유문고, 서문문고, 삼중당문고 등 1960~70년대 문고판 서적을 비닐로 예쁘게 포장해 한동안 동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1950~70년대 여성잡지를 발견한 여성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강 교수는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은퇴하면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책을 팔아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어느 날 보수동 골목을 걷다가 아내더러 나 역시 정년 후 보수동에서 책방을 하나 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집에 쌓인 책에 넌덜머리가 난 아내는 즉각 정말 괜찮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작은 책방에 들러 이런 규모의 가게를 얻는데 얼마면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썼다. 이어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 책이 안 팔린다고 안달복달할 것도 없다. 친구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그날 책 판 돈을 가지고 아래쪽 동네, 곧 깡통골목, 국제시장, 남포동, 광복동으로 건너간다. 구석구석 좋은 술집 천지다. 대폿잔을 기울이면서 하루를 마친다. 황홀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책방골목 투어를 마치자 강 교수는 동행인들을 인근 부평 깡통시장과 자갈치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국내 최초의 상설시장인 부평 깡통시장에서는 옛 자취를, 자갈치시장에서는 부산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일정은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언덕의 추리문학관. 추리소설가 김성종 작가(76)가 일행을 맞았다. 김 작가가 1992년 문을 연 추리문학관은 국내 최초의 전문 도서관이자 문학관이다. 장서는 추리소설 1만7000여권 등 4만7000여권이나 된다. 김 작가는 “현대인은 좀처럼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문맹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아주 느린 작업으로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작가들은 거의 극빈층”이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둘러 일정을 마친 일행들은 아쉽지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추리문학관을 나서야 했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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