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중국어선 '먹고사니즘'에 무너진 한반도 마지막 중립지대

박수찬 2016. 6. 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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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부터 군과 해경,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한강하구 중립수역인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와 서검도 일대에서 불법조업중인 중국어선 퇴거작전에 나서면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수십년 동안 유지됐던 한반도의 마지막 중립지대가 사실상 무너졌다.

1953년 10월 체결된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인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대한 규칙 및 관계사항’에 따르면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로 하되 소수의 민정경찰(Military Police)만 순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북 모두 지금까지 한강하구에 민정경찰을 보내지 않았고, 양측 민간선박도 거의 다니지 않아 중립지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급증한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군과 해경, 유엔사가 민정경찰을 구성해 한강하구에서 순찰활동에 나서면서 군사분계선(MDL)이 존재하지 않는 이 일대는 서북도서와 더불어 새로운 ‘화약고’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10일 오전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중국어선 퇴거에 나선 민정경찰 고속단정. 합참 제공
◆ 軍 “중국어선 모두 퇴거할때까지 단속한다”

10일 오전 10시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서남방 한강하구 중립수역.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잇닿아 있지만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비무장지대로 놓여있던 이곳에 이날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군과 해경, 통역,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요원 등으로 구성된 ‘민정경찰’ 24명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고속단정(RIB) 4척에 타고 안개 낀 바다를 가르며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 퇴거를 위한 첫 단속에 나섰다.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와 서검도 일대 중립수역에서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 10여척에 접근한 민정경찰 고속단정들은 “귀측은 군사정전위 통제구역에서 조업 중이다. 한강하구에서 즉시 퇴거하지 않으면 이후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귀측에 있다”는 내용의 경고방송을 한국어, 중국아, 영어로 반복하며 철수를 요구했다.

꽃게와 숭어 등을 싹쓸이하며 조업에 몰두하던 중국어선들은 황급히 어망을 걷고 북측 연안으로 도주했다. 고속단정들은 간조가 시작되는 오후 3시40분까지 중국어선 인근에서 기동을 거듭하며 조업을 못하도록 압박했다.

민정경찰 대원들이 고속단정에서 교신을 하고 있다. 합참 제공
군은 11일에도 중국어선들이 북측 수역에 머물러 있음에 따라 이들이 남하하면 유사한 형태의 작전을 재개해 조업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에 앞서 군은 인적, 물적 측면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민정경찰은 선박 검색 등 관련 경험이 풍부한 해경 요원들이 주도하며 군은 지원 역할을 맡는다. 고속단정은 방탄유리 등 방호장비를 앞부분에 장착해 중국어선의 공격으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한다.
군은 날씨 등 현지 상황을 고려, 고속단정을 2~4척씩 지속적으로 투입해 중국어선들이 한강하구에서 모두 퇴거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해군 함정을 비롯한 지원전력도 중립수역 밖에서 대기하며 북한군의 해상 도발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군 관계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중국어선은 40t급 철선이지만 한강하구는 수심이 얕아 20t급 목선이 주로 다니고 숫자도 10여척 수준”이라며 “중국어선들이 모두 퇴거할때까지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강하구는 지금까지 우리 군이 진입한 적이 없어 현지 사정에 어둡다. 암초와 해무 등 고속단정의 항행 안전에 위협을 주는 요소들도 많다. 지난 9일 시작될 예정이었던 단속 작전이 하루 연기된 것도 현지에 짙게 낀 해무 때문이었다.

중국 연해의 어족자원이 남획으로 씨가 마른 것도 문제다. 중국어선들은 생계를 위해 자국 정부의 통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반도와 남중국해, 심지어 아프리카 연안에서도 불법조업을 하며 물고기를 싹쓸이 하고 있어 중국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우리 군의 단속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강하구에서 불법조업중인 중국어선들. 합참 제공
◆ 중국어선이 무너뜨린 중립수역…남북 무력충돌 가능성

중국어선의 ‘남을 배려하지 않은 먹고사니즘식’ 불법조업은 주로 연평도 등 서북도서 해역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곳에 몰려오는 중국어선의 숫자가 늘면서 일부가 한강하구까지 진출하면서 한반도 마지막 중립지대인 한강하구에 우리측 민정경찰이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953년 10월2일 제22차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비준된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인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대한 규칙 및 관계사항’은 한강하구 수역의 비무장화를 천명하고 있다. 다만 질서 유지 차원에서 순찰용 선박 4척, 민정경찰 24명을 각각 배치할 수 있다. 민정경찰은 권총과 소총 등 개인화기만 소지한다.

한강하구를 항해하는 선박은 군사정전위원회 사전 승인을 받고, 항해 시 국기를 게양하며 야간에는 자기편 강안에 정박해야 한다. 해상에서의 인원‧물품 교환, 군수물자 운송은 금지되며 충돌 회피 목적 외에는 상대방 선박과 통신할 수 없다. 한강하구에 불법으로 조업하는 중국어선들은 정전협정에 명시된 민간선박 규정을 지키지 않아 우리 군은 이들을 ‘무단진입선박’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정전협정 당사자라는 측면에서 중국어선 불법조업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정경찰들이 고속단정에서 중국어선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합참 제공
우리 군이 한강하구에서 민정경찰을 운영하면서 세간의 관심은 중국이 아닌 북한을 향하고 있다. 한강하구는 군사분계선이 없고, 선박간 통신도 매우 제한된다. 경계선이 있고 국제 공용통신망 등 상업 회선을 이용할 수 있는 서북도서보다 우발적인 무력충돌 가능성이 훨씬 높다.

북한은 2013년 3월 정전협정을 백지화를 선언했다. 1990년대부터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남북을 잇는 통신선은 모두 끊어진 상태다. 북한이 한강하구에 민정경찰을 투입할 경우 무력충돌을 예방할 방법이 없다. 북한은 1960년대 서북도서에서 조업중이던 우리 어선과 해군 함정을 나포한 적이 있어 이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지만 정전협정 후속합의서를 준수해야 하는 우리 군으로서는 대응책 마련이 제한된다.

반대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노동당 7차 대회 직후 관영매체와 당 조직을 총동원해 남북 군사회담 개최를 요구해왔다. 한강하구에 우리 측 민정경찰이 투입된 것을 계기로 ‘비무장지대 긴장 완화’를 다룰 군사회담을 제의하며 대화 공세를 펼칠 수도 있다.

우리 군은 북한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편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국어선에 대한 경고사격 등은 자제한다는 방침이어서 한반도의 마지막 중립지대가 서북도서처럼 군사적 대치 지역으로 바뀔지, 예전처럼 물고기와 새들의 낙원으로 남아있을지 주목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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