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진지병·쿨병..'OO병'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이슈팀 진은혜 기자 2016. 6. 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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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더이슈] SNS 시대 '신조어' 범람.."듣는 상대방에겐 상처 될 수 있어"

[머니투데이 이슈팀 진은혜 기자] [[이슈더이슈] SNS 시대 '신조어' 범람…"듣는 상대방에겐 상처 될 수 있어"]

# 주말엔 예술 영화관에서 독립 영화를 보고 출퇴근길엔 인디 음악을 즐겨듣는 회사원 이모씨(27). 그는 얼마 전 친구에게 “인디병 중증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고 상처받았다. 인디병이란 ‘나만 아는 것’에 골몰하는 대중과의 차별 본능을 비꼰 말. 이씨는 “취향이 확고하단 사실만으로 조롱의 대상이 된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OO병이 난무하고 있다. 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진지병', 단발머리 욕구가 치솟을 땐 '단발병' 확진을 받는다. OO병이 우리 언어 습관에 파고든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0년 전후로 SNS 사용이 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유행어와 은어가 생겨났고 OO병은 특정 현상이나 인간 군상을 묘사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연예인 박수진(위)은 대표적인 단발병 바이러스 보균자다. 단발 욕구가 치솟을 때 단발 남자 연예인 사진을 보는 것은 대표적인 단발병 치료 방법 중 하나. 사진(아래)은 가수 강균성./사진=머니투데이

◇ OO병의 원조 '중2병'…발병률 높은 병은?

어느 말이든 갖다 붙이면 새로운 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OO병’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빈번하게 거론되는 질환이 있다.

① 중2병: OO병의 원조격인 중2병은 감수성·허세·자의식이 최고조에 이르는 사춘기 특유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중2병에 걸린 이들의 특징은 과도한 겉멋과 자기 합리화. 일본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나는 아직 중2병에 걸려있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했다. 한국에 들어온 건 2010년 웹툰 ‘싸우자 귀신아’를 통해서다. 이후 각종 중2병 테스트, 극복 방법 등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최근엔 '대2병'도 등장했다. 대2병은 꿈같던 신입생 시절을 보내고 취업난, 학업 같은 현실의 벽 때문에 불안한 대학생들의 심리를 반영한 말이다. 중2병이 특정 연령대를 표현하는 말이라면 대2병은 취업난 같은 시대 상황을 내포한 단어다.

② 쿨병: 쿨병은 자신의 현명함을 입증하기 위해 혹은 쿨해보이기 위해 다수나 명사의 의견을 비웃는 현상이다. 쿨병 환자는 냉소적인 태도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왜 저 일에 혈안인지 모르겠어. 더 중요한 걸 못 보다니 어리석은 중생들’식의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③ 인디병: 인디병은 일종의 ‘취향 계급화’ 현상. 비주류 취향에 집착하는 대중과의 차별 본능을 일컫는 말로 “즐겨갔던 식당인데 많이 알려져서 식상해졌다”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 인디병을 의심 해봐야한다.

④ 쿨톤병: 여성들은 피부톤을 핑크빛의 창백해 보이는 쿨톤과 노란빛의 따스해 보이는 웜톤으로 분류한다. 쿨톤인 사람들은 상당수가 13호 정도의 흰 피부이기 때문에 흰 피부를 꿈꾸는 이에겐 ‘판타지’다. 쿨톤병은 자신이 쿨톤이라고 굳게 믿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흰 피부에 집착한다는 의미로 ‘13호병’이라고도 불린다.

⑤ 단발병: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 증상. 고준희·박수진·혜리처럼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연예인이 공식석상에 등장했을 때 발병률이 치솟는다. 단발병 치료제는 2가지. 긴 머리가 어울리는 스타의 사진을 보며 참거나 단발머리 남성의 사진을 보며 ‘내가 머리를 자르면 저렇게 될 거야’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다.

이 외에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거나 매사에 심각한 사람을 조롱하는 ‘진지병’, 앞뒤가 꽉꽉 막힌 언행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게 만든다는 ‘고답이병’ 등이 있다.

온라인에서 자주 사용되는 OO병. 무심코 쓴 말에도 상대방은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사진=네이버 캡쳐

◇ 무심코 쓴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 OO병의 두 얼굴

회사원 김지윤(27)씨는 자신을 묘사할 때 종종 ‘인디병, 중2병’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가까운 친구 사이에선 이런 말을 쓰는 게 편하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며 “낯선 사람에게 쓰는 건 꺼려진다.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단 OO병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맘충·급식충·노인충’처럼 특정 계층에 벌레 충(蟲)자를 붙여 말하는 게 유행이다. OO충은 특정 집단과의 불쾌한 경험을 묘사하는데 효과적이지만 대상에 대한 혐오 정서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런 단어들이 널리 사용되는데엔 SNS의 영향이 크다. 누구나 쉽게 말하고 글 쓸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면서 유행어 확산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입에 착 감기는 신조어는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일파만파로 퍼져버린다.

상명대 국어문화원 서은아 전담교수는 “은어나 유행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희처럼 쓴다”며 “상대방을 진짜 비하할 의도보다는 습관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어원이나 진짜 뜻을 모르고 무심코 쓴 말에도 상대방이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유행어의 전파 속도와 파급력이 큰 상황인 만큼 교육기관 뿐만 아니라 매체, 개인이 언어생활을 되돌아보고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슈팀 진은혜 기자 verdad0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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