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억의 야생화 이야기(21)-백당나무와 불두화] 접시와 부처님 머리를 닮았네
[식물분류학자 유기억교수가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흔히 이름이 비슷한 식물은 정확한 구별이 쉽지 않다. 학명(學名)처럼 국제 식물명명규약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면 분명히 형태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문제는 우리 이름, 즉 국명(國名)이다.
모양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더라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실수하기가 쉽다. 바닷가에 가면 해당화요, 산으로 가면 산당화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흔히 산에 있는 것은 백당나무요, 절에 있는 것은 불두화(佛頭花)라고 부른다. 사실 산당화는 명자꽃이라 불리는 중국 원산의 관상용 나무지만 해당화와 비슷한 이름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는 종이다.

그렇다면 백당나무와 불두화는 어떻게 다를까? 두 종류는 꽃의 형태를 뺀 다른 형질은 거의 같아서 많은 사람이 혼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확연한 차이는 학명에 잘 나타나 있다. 백당나무의 학명은‘Viburnum sargentii’이고 불두화는 백당나무의 품종인 ‘V. sargentiifor. sterile’로 되어 있다.
속명 ‘Viburnum’의 뜻은 알려지지 않았지만V. lantana라는 식물의 옛날이름이라 하고, 종소명 ‘sargentii’는 미국의 식물학자 사젠티(C.S. Sargentii)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불두화의 품종소명 ‘sterile’은 불임(不姙)이라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종류의 차이점은 종자를 맺느냐, 맺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꽃의 화려함으로 보면 백당나무보다는 불두화가 훨씬 아름답다. 불두화의 한자 의미는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한 꽃’으로 5개의 꽃잎으로 구성된 작은 꽃 여러 개가 원형의 구조물처럼 만들어진 작은 꽃줄기에 달려 전체적으로는 동그란 축구공이나 눈 뭉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어 이름도 ‘snowball tree’다.

불두화는 ‘수국백당나무’ 또는 ‘큰접시꽃나무’라고 불리기도 하고, 백당나무는 ‘청백당나무’또는 ‘불두화’라고도 한다. 백당나무라는 우리 이름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흰색의 꽃이 피는 당분이 많은 나무라는 뜻인 것 같다. 이 꽃을 찾아오는 벌이나 나비가 많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같은 속에 속하는 식물로는 분꽃나무와 산가막살나무를 포함하여 10여 종이 있다.
한방에서 백당나무의 어린 가지와 잎은 계수조(鷄樹條)라고 하는데, 허리나 다리가 시린 증상이나 관절염에 효과가 있으며 버짐이나 가려움증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두화는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아 도심의 아파트 화단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나무 중의 하나가 되었다. 꽃이 피면 마치 커다란 솜방망이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머리를 조아리듯 길게 늘어진 꽃줄기에 매달려 가벼운 봄바람에도 출렁거리는 꽃송이들은 새록새록 낮잠을 즐기는 어린아이의 얼굴처럼 예쁘다.

한번은 자동차를 몰고 달리다가 언뜻 길가에 스쳐 지나간 흰 꽃을 잊지 못해 먼 길을 되돌아갔던 적도 있다.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 너머로 식물의 모습을 얼마나 자세히 보았다고 되돌아가기까지 하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비록 그 모습이 명확하지는 않았어도 왠지 다시 보아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에 끌렸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식물조사를 하다 보면 대개 조사지의 환경과 입지 조건에 맞는 식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여야 할 식물이 눈에 띄지 않으면 그것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날도 스쳐 지나간 꽃이 뭔가 새로운 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되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되돌아간 그곳에는 백당나무가 있었다. 도로변의 물이 흐르는 도랑과 산림이 인접한 곳에 하얀색 꽃이 편평한 접시 모양을 만들며 피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날씨가 흐려 물이나 인접한 다른 식물들의 잎 색깔과 대비되어 흰 꽃이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겨울이 되면 열매도 볼거리다. 눈과 장독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처럼 조화로운 겨울 풍경에 걸맞은 또 하나의 풍경으로 백당나무의 붉은 열매와 흰 눈의 어우러짐을 들 수 있다. 마치 하얀 눈 속에 앉아 붉은 열매를 쪼아 먹는 참새의 모습이 보이는 듯 선하다.
불두화는 종자를 맺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꽃의 모양이 부처님의 머리를 닮아서인지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는 스님들이 계신 곳이어서인지 주로 사찰 근처에서 볼 수 있다. 열매가 열리지 않는 대신 식물체의 일부를 뿌리와 함께 잘라 내어 심는 포기나누기(分株法)나 나뭇가지를 잘라 심는 꺾꽂이라 불리는 삽목(揷木)을 하면 쉽게 새로운 개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열매를 맺는 백당나무는 바닥에 떨어진 잎에서 은행나무 열매의 고약한 냄새가 나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맺히는 식물이라 하더라도 장단점은 다 있게 마련이다.

유기억 yooko@kangwon.ac.kr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며, 식물분류학이 전공인 필자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숲 해설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생화를 주로 그리는 부인 홍정윤씨와 함께 책 집필 뿐 만 아니라 주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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