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억의 야생화 이야기(29)-만삼] 만병통치약 같은 만삼
[식물분류학자 유기억교수가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몸에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서 먹어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식품에 대한 신념이랄까 하는 것은 유난해 보이기까지 한다.
간혹 몇 백 년쯤 묵은 산삼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방송을 타는데, 심마니의 인터뷰 내용은 늘 한결같다. 바로 꿈 이야기다. 어떤 이는 꿈에서 조상님을 뵈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돼지 떼가 자신에게 달려들었다고 한다.
꽤 오래 전에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에서 식물조사를 하기 위해 심마니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를 같이 등반한 적이 있었다. 요즘이야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기네 지역을 알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산이나 약수, 동굴, 향토 음식 등 홍보할 만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내책자를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상에 알린다. 아침마다 신문 사이에 끼어 함께 들어오는 광고지에 버금갈 정도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적거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을 방문할 때는 이런저런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날도 이런 두려움 때문에 그 산의 지형을 잘 알고 계시는 마을 사람을 모시기로 했던 것이다. 짚으로 엮어 만든 망태기 하나를 등에 지고 나타난 심마니는 모습 그대로가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였다. 긴 콧수염과 헝클어진 머리, 거의 해어진 옷 등 다소 낯선 모습에 도시에 사는 어린 아이가 봤다면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를 정도의 행색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졌고 인사를 나눈 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의 평소 산행 속도를 뛰어넘어 거의 달리다시피 산을 올라야만 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하루 만에 다녀오려면 이 정도 속도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마니는 말 그대로 신출귀몰했다. 길도 없는 계곡을 바람처럼 쌩쌩 내달렸다.
몇 시간을 그렇게 쫓아가다가 음침한 분위기에, 물안개와 계곡의 안개가 만나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얀 안개로 가득 차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심마니 아저씨가 예전에 자신이 산삼을 캤던 곳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그 순간,‘ 그래, 바로 이런 곳에 산삼이 자라겠구나’하는 느낌이 팍 드는 분위기의 장소였다.
아저씨는 등짐을 내려놓고 돌로 만든 작은 터에 큰절을 하며 그때의 일에 대한 감사의 예를 올렸다. 산행이 이어지는 동안 그런 장소는 곳곳에 몇 군데가 더 있었고 그때마다 심마니는 산삼을 캤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처럼 산삼은 아무한테나 보이지 않아서 신성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특이한 곳에서 자라니 그 효능도 뛰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산삼 효능의 만 배(?)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식물이 있다. 바로 만삼(Codonopsis pilosula)으로, 깊은 산 깊은 곳에서나 자라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는 식물이다. 생김새로만 본다면 더덕의 사촌뻘쯤 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속명 ‘Codonopsis’는 ‘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codon’과 ‘비슷하다’는 의미를 가진 ‘opsis’의 합성어로 꽃의 모양이 종과 비슷해서 만들어졌으며, 종소명 ‘pilosula’는 부드러운 털이 있다는 뜻이다.

만삼(蔓蔘)이라는 우리 이름은 줄기가 덩굴성인 삼이란 뜻으로, 그 약효가 산삼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나다 하여 붙였다고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더덕속(屬) 식물은 만삼을 포함하여 더덕, 소경불알, 애기더덕 등 4종류가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초롱꽃과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덩굴성 줄기를 가졌으며, 종 모양의 꽃이 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더덕은 뿌리가 도라지처럼 생겼으며 씨에 날개가 있고 꽃에는 자색 반점이 있는 특징이 있고, 소경불알은 잎자루가 짧고 뿌리는 동그랗게 생겼으며 꽃잎 안쪽은 짙은 자주색이어서 차이가 있고, 애기더덕은 제주도에만 분포하며 식물 전체가 소경불알의 절반정도 크기여서 서로 구별된다.
한방에서 만삼의 뿌리는 당삼(黨蔘)또는 만삼(蔓蔘)이라고 하는데 사포닌, 당류, 미량의 알칼로이드 성분과 녹말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강장작용, 신체의 면역 기능 항진작용을 하며, 조혈 계통에 작용해 적혈구 수를 증가시키거나 혈압강하제로도 쓴다. 또 열이 많아 인삼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사용하면 기(氣)를 보호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부 농가에서는 재배를 하기도 하는데, 강원도 정선군 동면 호촌리의 호명마을은 약 5만 평에 만삼을 재배하고 있어 국내 최대 재배지이자‘만삼마을’로 불린다. 민간에 전해오는 재미있는 요리법이 하나있다. 8년 이상 묵은 만삼 뿌리를 캐서 잘 말린 후 두 뿌리를 가늘게 썰어 마늘, 대추, 밤, 호두, 은행 각각 두 알씩과 함께 토종닭에 넣는다. 이때 닭은 남자가 먹을 것은 암탉, 여자가 먹을 것은 수탉으로 해야 약효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참깨, 잣, 찹쌀을 넣고 푹 고아 내면‘만삼계탕’이 되는데, 이것을 한 그릇 먹으면 몸속에 있는 모든 잔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만삼은 지리산이나 강원도 이북 지역에서만 자라며, 반드시 자생지 근처에 가야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조사를 몇 십 년 다녔어도 몇 뿌리 만나지 못했을 정도로 귀한 식물이지만, 자생지에서의 모습은 아주 강인하고 복스럽다. 줄기를 흔들어 보면 푸릇푸릇한 향기도 난다. 이른 아침, 안개가 물방울로 변해 만삼의 꽃과 잎사귀에 아롱아롱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광경은 한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활력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유기억 yooko@kangwon.ac.kr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며, 식물분류학이 전공인 필자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숲 해설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생화를 주로 그리는 부인 홍정윤씨와 함께 책 집필 뿐 만 아니라 주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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