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국내 인스턴트 라면 1000가지.. 절반 먹어봤죠"
"라면 봉지 조리법에 나오는 끓는 물의 양은 500㎖나 550㎖예요.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물 맞추는 사람이 많은데 이 50㎖에 라면 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난 16일 충북 청주에서 만난 지영준(27)씨는 커다란 종이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상자 속엔 아직 뜯지 않은 봉지 라면 30여 개가 들어 있었다. 상자 속엔 '신라면'이나 '참깨라면'같이 익숙한 포장의 라면부터 '하바네로 짬뽕' '일품 짜장면'처럼 낯선 제품까지 갖가지 라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모두 다른 제품이었다.

지씨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2년 8개월간 오직 라면만 소개해 온 블로거다. 지씨가 운영하는 라면 블로그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20만명, 정기적으로 지씨의 글을 받아 보는 사람만도 3만2000명이 넘는다. 라면 잘 끓이는 분식집이나 일본식 라면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1000원 안팎의 봉지 라면과 컵라면만 소개한다. 그깟 라면 종류가 몇이나 되겠냐 싶지만 지씨가 이미 소개한 우리나라 인스턴트 라면만 300종이 넘는다.
지씨는 "국내 인스턴트 라면만 1000가지쯤 될 것"이라고 했다. 라면을 출시하는 곳은 흔히 아는 농심, 삼양, 오뚜기, 팔도 같은 회사뿐만이 아니다. GS25, CU,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 롯데마트나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에서도 라면이 나온다. 새롬식품의 '채식라면', 재덕의 '산양삼 라면' 등 중소기업 라면도 있다. 언제 어느 회사에서 출시되는지 표로 정리해왔다는 지씨는 "라면 신제품은 국내에서만 한 달 평균 3~5개가량 나온다"고 했다. 작년 10월 출시된 짬뽕 라면처럼 한번 유행을 타면 비슷한 제품이 경쟁적으로 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한꺼번에 출시될 때는 일주일간 4개가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지씨는 신제품을 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라면 회사의 홈페이지를 수시로 방문하고 포털 사이트에선 '라면, 신제품, 출시' 등 키워드도 검색해본다. 출시일을 명확히 밝힐 땐 당일 오전에 제일 먼저 구매하고 '○월 중에 출시된다'고 할 때는 매일 소매점을 찾아 확인한다. 하루에 3시간씩 판매점 20~30곳씩 돌아다니며 라면 쇼핑을 하기도 한다. 중소기업 제품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일 땐 인터넷으로 사기도 한다. 지씨는 "1000~1600원 안팎인 라면 하나에 배송료는 2500원이 붙으니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라면에 대한 애착이나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라면 중 뜻밖에 입맛에 맞는 것이 있었다. 비슷한 라면이 있는지, 또 다른 제품은 없는지 알아보다가 라면을 평가하거나 소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씨는 '우리처럼 다양한 라면이 있는 나라에서 라면 소개를 꼼꼼히 하면 재미있겠다'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록 취미이지만 지씨는 최대한 객관적인 맛 평가를 위해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식사로는 라면을 먹지 않고 식후 2~3시간 뒤에 라면 1개를 다 먹는다. 라면에 계란을 넣지도 않고 김치를 곁들여 먹지도 않는다. 맛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울 때는 서너 가지를 함께 끓여 조금씩 맛을 보고 비교하기도 한다.
2년 넘게 인스턴트 라면만 연구해온 지씨는 라면 전문가가 됐다. "같은 '신라면'이라도 봉지 라면과 큰 컵라면, 작은 컵라면 맛이 전부 달라요. 작은 컵라면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종이 용기이고 건더기가 상대적으로 풍성하게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작년 말부터 유행했던 짬뽕 라면은 이제 한물갔고 회사마다 여름을 겨냥해 비빔면 싸움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라면 맛이나 흐름은 물론이고 생산업체의 특징도 파악하고 있다. 지씨는 삼양이 '불닭볶음면'으로 히트를 친 뒤 매운맛에 성패를 걸려는 경향이 있다며, 출시하는 제품마다 매운맛을 강조하는 건 물론이고 성분을 보면 '하바네로 고추'가 들어간 게 많다고 했다.
맛있는 라면이 반드시 잘 팔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잘 팔리는 라면은 광고를 많이 하는 제품"이라고 했다. 지씨의 분석에 따르면 농심은 도전적이기보다 무난한 제품을 내놓고 광고를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점, 시장점유율 1위라는 점이 히트 요인이다. 다른 업체에서 농심처럼 무난한 제품을 내놨을 때는 대부분 사장돼왔다고 그는 말했다. "맛있는데 뜨지 못한 라면"으로는 삼양에서 3년 전 내놨던 '나가사키 홍짬뽕'을 꼽았다. "요즘 유행인 프리미엄 짬뽕 개념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지씨의 블로그 이름은 '라면 완전정복'이다. 여러 가지 라면을 하나씩 정복해 나간다며 한 네티즌이 '라면 정복자'라고 붙여준 별명에 착안했다. 지씨는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라면을 정복하려면 평생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라며 웃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려대, 금융·증권범죄 전문인력 양성 계약학과 신설
- 김정은 “韓 핵잠 보유 추진, 군사 연습으로 정세 극도 악화… 가장 적대적 국가”
- 하루새 16% 폭락한 스페이스X...3조원 사들인 서학개미 어쩌나
- ‘홍명보호’, 체감 온도 40도 무더위 속 남아공전 대비 훈련
- MSCI 관찰대상국 발표 D-1…증시는 기대 반 우려 반
- 對日 여행 적자 역대 최대...일본인이 4조원 쓸 때 한국인은 13조원 썼다
- HD현대삼호, 선박 고정용 밧줄 끊어져 근로자 1명 사망
- 北 노동당 “핵무력 강화, 핵보유국 지위 행사가 유일한 길”
- 홈플러스 회생 인가 D-10…MBK·메리츠 2000억 조달 공방
- 선관위 국정조사특위 오늘 가동… 노태악 등 40여명 증인 채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