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와 만납시다] '노량진 섬' 어느 강의실에도 긍정의 꽃은 핀다 ①
원룸촌을 빠져나온 두 남학생이 학원 건물 뒤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편한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가방이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라고 말하는듯하다. 다가가 “괜찮으면 잠시 인터뷰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할 말이 없다”며 이들은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러고 보면 권유리(22)씨와 백소희(20)씨의 밝은 모습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공무원 준비에 들어간 지 반년도 되지 않았다지만 이들에게 ‘공시생’의 보편적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권씨와 백씨는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에서 만났다. 이들은 다른 두 수험생과 함께 ‘복사실 지도원’으로 일한다. 대학교로 치면 근로장학생과 비슷한 개념이다. “지도원이라는 명칭이 있긴 한데…”라며 멋쩍어하는 두 사람을 보니 보통 여대생과 다를 게 없다.
권씨는 7급 검찰직, 백씨는 9급 일반 행정직을 준비 중이다. 권씨의 전공은 법학, 백씨는 회계전공이다. 이들은 각각 4학년 1학기, 2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이다. 권씨의 집은 원래 부산이나 서울 강서구에서 자취하며, 백씨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학원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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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 한 남학생이 잠시 복도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권씨는 “검찰청에 실습 나간 적 있다”며 “그때부터 검찰직 매력에 빠져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사노비보다 공노비가 낫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국가에 속해 일하면 자부심도 느낄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네 웃음을 자아냈다.
권씨는 수강생 중 반 이상은 부모가 권유해서 오는 거라고 귀띔했다. 법학 전공이라는 말에 로스쿨 제도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원 정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처음 시험 이야기 꺼냈을 때 부모님께서 별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백씨는 “공무원 준비를 5년 넘게 한 친척 언니가 있다”며 “부모님께서는 ‘2년 안에 합격 못 하면 그만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밝혔다. 2년 안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면 그는 학교로 돌아가 회계사를 준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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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급 검찰직을 준비 중인 권유리(22)씨는 “검찰청에 실습 나간 적 있다”며 “그때부터 검찰직 매력에 빠져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아직 시작한 지 반년이 되지 않아서일까? 두 사람은 다소 여유가 있었다. 이들은 “공부하니 어떻느냐”는 질문에 “배우는 게 재밌다”며 “그런데 전공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이 조금 어렵다”고 답해 기자를 당황케 했다. 한숨부터 푹 쉴 거라는 예상을 빗나가서다.
권씨는 “처음 두 달 정도는 10시간 넘게 앉아있는 걸 못했다”며 “그게 습관이 안되어서…”라고 말했다. 옆에서 백씨는 “매일 오전 6시에 나와 자정에 들어가다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한 시간씩 여유를 뒀더니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거들었다.
강의실 풍경은 어떨까? 갑자기 “싸늘하다”로 시작하는 영화 ‘타짜’ 속 배우 조승우의 독백이 떠올랐다.
권씨는 “강의실 들어가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한다”며 “집에 갈 때까지도…”라고 말했다. 반면 백씨는 “하기 나름”이라며 “사람들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면 다들 대답해주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삭막해질 것 같다는 답이 이어졌다.
공부 시작 후 딱 한 번 친구들과 만났다던 백씨는 “우리는 외롭지 않다”며 “나중에 (공무원) 합격하면 (함께 공부한 사람들과) 해외여행도 가자는 이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하시는 분들을 보면 조금 우울할 것 같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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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 수업 중인 공시생들의 진지함을 창 밖에서도 느낄 수 있다. |
* 내일(3일) 오전 8시, [김기자와 만납시다] '노량진 섬' 어느 강의실에도 긍정의 꽃은 핀다 ② 편이 이어집니다 *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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