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잘 해줘야 굴러가는(?) 마우스가 있었죠

지금 PC나 노트북으로 이 글을 보는 당신의 손은 마우스를 쥐고 있을 것이다. 이 마우스는 키보드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PC의 필수 입력장치로 진화해왔다. 요즘엔 무선은 기본이고 70g도 안되는 무게, 그리고 각종 인체공학적 편의 기능으로 무장해 제조사 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 1968년 발명된 최초의 마우스 <이미지 출처 : Britania.com>

마우스는 생각보다 오래전에 탄생한 물건이다. 미·소 냉전이 극에 달하던 1968년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의 '더글러스 엥겔바트'라는 사람이 발명했다. 키보드 대신 컴퓨터 에 움직임을 입력하는 장치를 고안하다나 구상한 마우스는 생긴 모양이 생쥐를 닮아 명명되었다고. 그 후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1970년 특허까지 받았지만, PC의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 특허 기간이 만료되는 90년대에 이르러 매킨토시의 OS가 GUI(Graphic User Interface)로 구동됨에 따라 마우스가 필수로 부상했어도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유저들이 마우스를 사용하게 만든 WIndows 95

어쨌거나 7-80년대 초기 PC는 CUI(Character User Interface), 즉 문자열 명령어 입력 방식으로 구동되었기 때문에 특수한 작업을 제외하고는 일반 유저들이 마우스를 쓸 일이 거의 없던 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매킨토시 GUI가 대히트를 치면서 마우스는 인간과 PC의 상호작용을 중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운영체제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곰곰이 회상해 보면 그 당시 마우스는 지금의 휘황찬란하고 가벼운 마우스의 느낌은 아니었다. 흰색 아니면 회색빛이 도는 뭔가 묵직~한! 볼 마우스(Ball Mouse)였기 때문이다.

▲ 볼 마우스 내부 롤러의 위치 <이미지 출처 : Quora.com>

마우스는 스크린상 X와 Y 축의 좌표를 기반으로 구동된다.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든 특정 오브젝트를 변형시키든 X와 Y 축 값만 변동시키는 게 기본적인 기능이라는 말이다. 볼 마우스는 이런 X, Y 축의 좌표를 마치 볼륨 다이얼처럼 내부의 롤러를 돌려 변동시킨다. 이 롤러 두 개를 동시에 돌려가며 마우스 포인터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볼이다. 이 볼이 바닥과 마찰로 인해 회전하며 X, Y 축 롤러를 동시에 돌리면서 좌표값을 실시간으로 운영체제가 표시하는 원리다.

▲ 볼 마우스의 볼을 분해하는 영상
<출처 : Youtube Testroom 7 채널>

볼은 기본적으로 철로 제작되었으나 바닥과의 마찰이 잘 일어나기 위해 표면을 고무나 실리콘 재질로 감싼 형태였다. 만약 이런 표면 처리가 되지 않으면 마우스를 움직여도 내부 볼이 회전하지 않아 롤러를 돌릴수 없기 때문에 운용이 불가능해진다. 뻑뻑한 볼의 재질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중력의 힘으로 바닥면에 닿기 때문에 보기보단 무거웠다. 나중에 볼 마우스의 전성기가 지난 후 이 볼만 빼서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 패러럴 포트와 시리얼 포트, 뒤로는 모니터와 연결되는 D-Sub 포트 <이미지 출처 : www.gtweb.net>

연결 방식도 지금과는 달랐다. 볼 마우스가 대중화되던 1990년대 초반엔 시리얼 포트로 연결되었다. 지금과 같이 마우스에 부가기능이 별로 없던 시대라 한 번에 비트 하나씩만 전송되는 시리얼 포트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전화 접속 모뎀, 일부 도트 프린터들도 이 시리얼 포트를 사용했기에 볼 마우스를 사용하기 위해선 이미 연결되어 있는 장치를 빼거나 다른 포트를 사용하는 기기로 바꿔야 하는 불상사(?)도 번번이 일어났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키보드, 마우스 전용인 PS/2 포트가 범용화되면서 이런 번거로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USB-A 방식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미지 출처 : quora.com>

지금 시점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은 이 볼 마우스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바닥 재질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고 웬만하면 잘 돌아가는 적응력(?)이 기억난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광 마우스는 바닥에 빛을 쏘아 반사되는 정도로 움직임을 인지하므로 유리 재질 테이블이나 난반사되는 재질의 바닥에선 오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볼 마우스는 급할 땐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도 사용했으니 말이 필요 없을 정도. 또한, 묵직한 무게 덕분에 지금까지 그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용자들도 있다. 현재 유통되는 몇몇 고급형 마우스들이 무게 추를 따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마우스의 손맛은 적절한 무게감이 좌우한다는 게 맞는 말 같다.

▲ 볼 마우스를 청소하는 영상
<출처 : Youtube ComputerFreak 채널>

하지만, 볼 마우스가 좋은 추억만 있던 것은 아니다. 볼의 표면이 고무, 실리콘이다 보니 바닥면에 있는 모든 먼지, 털 등을 모조리 붙여낸다. 머리카락이나 실같은 이물질은 내부로 빨려 들어가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볼이 회전하는 구역엔 돌려서 빼는 커버가 있어 주기적으로 볼을 빼서 청소해 줘야만 했다. 더불어 볼이 몰고 온 이물질이 롤러의 접촉부에까지 옮겨가 긴 먼지 줄을 만드는 경우도 빈번해 볼 마우스의 내부 청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또한, 볼이 핵심적인 부품이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공용 PC의 마우스에서 볼만 빼가는 테러 행위도 종종 발생했다. 급한 사람들은 마우스 내부의 롤러 2개를 손가락으로 돌려 업무를 처리하곤 했지만, 초기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주된 점검 포인트가 이 볼 마우스의 볼 지키기였을 정도로 볼 절도 사건은 심각한 문제였다.

▲ 말방구실험실에서 리뷰한 PS/2 방식 볼 마우스
<출처 : Youtube 대신남 말방구실험실 채널>

지금도 볼 마우스를 구입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볼 마우스의 개념은 이제 일반 마우스에서 엄지 부분쪽으로 트랙볼을 장착한 제품으로 변했다. 바닥을 구르는 볼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돌리는 볼이 된 것이다. 그나마 유명한 로지텍이나 노트북 잠금장치로 유명한 켄싱턴에서 나오는 트랙볼 제품을 해외 구매로 입수하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면 중고 볼 마우스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물리적인 회전으로 작동하는 제품이다 보니 미개봉 제품 이외엔 상태가 좋은 제품을 구하긴 힘들 것 같다.

우리 기억 속 한구석에 남아 있는 볼 마우스는 어찌 보면 PC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제일 충만할 때 만난 아이템이었지 않나 싶다. DOS 6.0 시절, Windows 3.1이라는 요상한(?) 소프트웨어를 깔고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여 '보조프로그램' 아이콘을 더블 클릭했던 그 순간의 짜릿함을 기억한다. 또한, 친구네 집 486DX PC에 Windows 95를 2시간 넘게 설치하면서 첫 부팅 완료까지 기다리는 그 순간, 오른손에서는 볼 마우스를 만지작 만지작거렸던 일을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익숙한 마우스, 애지중지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해 줬던 볼 마우스를 떠올리며 추억의 서랍을 다시 열어봐야겠다. 어머니가 대청소 때 버리시지 않은 볼 마우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기획, 글,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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