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칼의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단순하게 생겼지만 저렴하게는 1만원 이하 부터 비싸게는 20~30만원도 넘어가는 것이 식칼입니다.
그래서 '비싼 칼은 얼마나 잘 썰리기에 그렇게 비쌀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싸다고 꼭 잘 썰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1~2만원 칼이 20~30만원 이상 고가의 칼보다 더 잘 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는데요.
그렇다면 비싼 칼은 왜 비싼 걸까요?
Part 1 절삭력에 대한 오해
'잘 썰리는 칼이 좋은 칼이라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칼이든 연마만 잘하면 최초의 절삭력은 모두 좋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삭력을 결정 짓는 데는 칼날의 예리함, 칼날의 각도, 후면의 두께와 길이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이것은 칼의 가격과는 연관성이 낮기도 합니다.
따라서 비싼 칼이라고 꼭 잘 썰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 절삭력을 결정짓는 요소
칼날(엣지)의 예리함과 각도,
후면의 두께와 무게 등이 복합 작용
- 엣지의 예리함
재료에 처음 닿는 칼날의 끝이 예리할수록 재료를 절삭하는데 유리합니다.
얼마나 예리한지는 보통 엣지테스터로 확인하는데, 와이어 실을 끊어내는 최대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보통 200~300g 정도면 주방칼로써 괜찮은 예리함이라 볼 수 있는데, 구매 직후의 칼은 대부분 이 정도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칼날(엣지)의 각도
칼날의 각도는 칼날의 끝(엣지)의 각도를 말하고 작을수록 재료를 절삭해 들어가는 데 유리합니다.
다만 칼날의 각은 작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칼날 각이 극단적으로 작은 커터칼이나 면도칼은 매우 잘 썰리지만 금방 날이 무뎌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주방칼로써는 절삭력과 내구성을 모두 적절하게 챙긴 30~40도 정도가 적절하며 시중 판매 중인 대다수의 일반적인 식칼은 이 정도 수준입니다.
(※ 각도를 확인하는 것은 레이저 각도기와 같은 전문 장비가 없는 이상 확인하는 것은 다소 어렵습니다.)
- 엣지 후방 두께와 칼날(엣지)의 형태
칼날의 예리함과 각도 외에도 칼날 끝의 두께와 형태에 따라서도 절삭력이 달라집니다. 두께는 얇을수록, 형태는 보다 미끈할수록 절삭에는 도움이 됩니다.
즉 수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절삭력에 관여하는데, 아쉽게도 일반 가정에서 이를 확인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칼의 절삭력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2. 최초 절삭력
연마 상태가 좋다면
최초의 절삭력은 모든 칼이 우수함
칼의 절삭력은 각 제조사의 칼날 각과 형태에 대한 방향성과 완성도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출고 전 공장에서 모두 기본적인 연마를 마치고 판매됩니다. 그래서 구매 직후의 칼은 저렴하더라도 왠만하면 날이 예리하고 또 잘 썰립니다.
그런데 각 브랜드나 판매처마다 연마에 들이는 노력이 다른데요. 가령 고가의 브랜드지만 연마에는 힘을 좀 빼기도 하고, 저렴하지만 최초 연마 상태에 공을 많이 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비싼 칼이 저렴한 칼 보다 더 안 썰린다고 느끼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가 브랜드의 칼은 가격은 비싼데 연마에 힘을 쏟지 않는 경우도 있는 걸까요?
이유는 칼은 절삭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Part 2 칼의 유지력(내구성)
칼은 당장의 절삭력보다 그 절삭력이 얼마나 오래가는 지, 즉 유지력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날의 예리함이 오래 유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칼날을 구성하고 있는 강재가 중요합니다. 강재는 칼의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합니다.
1. 칼 유지력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가장 중요한 건 소재와 강재
한 번 예리하게 만든 칼날이 얼마나 오래가는 지를 뜻하는 유지력(내구성)에는 칼날의 각도, 두께도 관련이 있지만 이 보다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칼날의 소재와 그 소재를 이루고 있는 강재입니다.
2. 칼의 소재
가정용으로는 스테인리스가 적합
칼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가정용 식칼로는 내구성과 위생을 모두 우수하게 갖춘 스테인리스가 가장 적합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칼은 스테인리스 소재입니다.
최근에는 세라믹 소재를 많이 찾기도 하는데 절대 녹슬지 않고 가벼운 장점이 있어 힘이 약하거나 손이 작은 분들이 위생적인 칼을 고를 때 택하는 편입니다.
다만 잘 깨지는 특성이 있어 강하게 부딪치거나 떨어 뜨리면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가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날을 갈기가 어려워 한 번 이가 나가면 복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메인으로 사용할 칼의 소재는 스테인리스가 보다 적합합니다.
3. 스테인리스 칼의 강재
탄소와 크롬을 기본으로 몰리브덴, 바나듐 등
추가 구성에 따라 등급이 나뉨
- 열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카바이드
스테인리스는 탄소(C)와 크롬(Cr)이 기본 성분입니다. 크롬은 높은 열과 함께 탄소를 만나면 결합해서 한층 단단한 크롬카바이드(탄화물)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탄소와 크롬의 양이 많을수록 크롬카바이드가 많이 생성되어 칼이 쉽게 무뎌지지 않습니다.
크롬카바이드보다 더 강한 카바이드를 생성하는 물질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몰리브덴(Mo)과 바나듐(V)이 있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가격도 올라갑니다. 보통 칼날에 'MoV'로 적혀있거나, '몰리브덴-바나듐 스틸'과 같은 용어로 고지해 놓습니다.
정리하면 칼날의 단단함은 열 처리 과정에서 탄소와 결합하여 생성되는 카바이드의 양과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데, 탄소와 크롬의 양이 많을수록, 그 외 몰리브덴과 바나듐이 추가될수록 더 단단해지며 가격도 올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경도와 인성
단단함을 위해 카바이드를 많이 생성하는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단단할수록 깨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는 경도와 인성이 함께 비례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경도는 단단함의 정도를 뜻하고, 인성은 늘어나고 퍼지는 정도를 말합니다.
즉, 경도가 높을수록 단단해서 칼날이 무뎌지지 않지만, 그만큼 늘어나는 성질이 약해 깨지거나 이가 나가기 쉬워집니다. 단단해 잘 긁히지 않지만, 쉽게 깨지는 유리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도와 인성을 두루 챙기기 위해 강재의 성분 비율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차이나게 됩니다.
(※ 경도와 인성이 모두 높은 슈퍼 스틸도 존재합니다. 다만 가격이 매우 비싸 주방칼의 강재 영역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강재의 성분 외에도 열 처리 과정을 포함한 전반적인 야금 공정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같은 강재를 사용하더라도 브랜드의 기술력에 따라 칼날의 완성도가 달라집니다.
다만 공정은 소비자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브랜드가 주는 신뢰를 바탕으로 판단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칼을 구매할 때는 같은 강재라도 전통 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강재명도 확인하기 어렵고 브랜드가 주는 신뢰도 약하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럼, 주방용 식칼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강재들을 등급을 나눠 알아보겠습니다.
Part 3 강재 등급별 칼(식도)
1. 저가형 강재
1만원 내외 이하
스테인리스의 주 성분인 탄소와 크롬 외에 내구성에 도움을 주는 특별한 추가 성분이 없는 강재입니다. 1만원대 이하 저가형 칼에 주로 사용되며, 날이 빨리 무뎌지기 때문에 가볍게 사용할 목적에 어울입니다. 매일 요리하며 사용할 용도로 칼을 찾고 있다면 조금 더 값을 지불하여 한 등급 높은 강재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420, 420J, 3Cr13 과 같은 용어로 고지하고 있으며 강재명이 쓰여 있지 않은 1만원대 제품들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중저가형 강재
1~2만원대
420HC(High Carbon)는 420계열 저가형 강재에 탄소의 함유량을 높여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하이카본이라고 고지되어 있는 2~3만원대 칼이 이 강재를 사용한다 볼 수 있습니다.
칼 사용량이 많지 않고, 칼에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면 이 강재 정도도 사용하기 괜찮습니다.
3. 중고가형 강재
4~10만원대
몰리브덴과 함께 바나듐을 추가한 강재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브랜드의 공정에 따라 가격이 4~10만원 정도로 다소 폭 넓은데, 해당 가격대의 유명 브랜드 칼은 대부분 이 강재를 쓴다 볼 수 있습니다.
저렴하게는 도루코 클래식 라인, 테팔, 이케아와 같은 브랜드가 있고, 중고가형으로는 시모무라각마, 글로벌나이프G2, 헹켈5스타, 우스토프 드라이작 클래식 등이 대표적입니다. (우스토프 드라이작 클래식은 가격대가 20만원 내외로 높습니다.)
해당 강재를 사용하는 4~10만원선의 제품들은 1~2만원 저가형 칼과는 확실히 다른 유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두 번 요리하는 가정이라면 한 번 날을 갈아서 3개월에서 반 년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가정에서 메인으로 사용할 칼을 찾는다면 가장 추천하는 강재 등급이며, 괜찮은 칼을 사서 오래동안 사용하고 싶다면 7~10만원 내외 해당 강재를 사용하는 제품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4. 고가형 강재
10~20만원대 이상
VG-10은 일본산 강재로 몰리브덴과 바나듐은 물론 탄소의 함량도 높아 경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대표적으로 KAI 브랜드의 슌 클래식 라인이 있습니다. 경도가 높은 만큼 인성이 낮아 이가 나가기 쉽고, 녹이 슬기 쉬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격대가 20만원 이상 상당히 높은 편으로 전문적으로 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강재입니다.
비슷한 중국산 강재인 10Cr15CoMov도 있는데 가성비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대표적으로 신주오 다마스커스 제품이 이에 해당합니다.
Part 4 유지력 테스트
칼날의 최초 상태를 최대한 동일하게 맞춘 뒤
로프를 더 이상 안 썰릴 때까지 썰어보기
1. 22종 구매
가격대와 강재 등급이 다른
22종의 칼 직접 구매
강재와 대표적인 브랜드도 알아봤지만, 직접 써보지 않으면 품질을 제대로 알기 힘든 것이 칼입니다.
그래서 강재 등급과 가격에 따라 실제로도 유지력 차이가 나는지, 5천원부터 20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22종 칼을 직접 구매 해 얼마나 절삭력이 오래 유지되는 지 테스트를 해 보았습니다.
2. 연마
칼날의 상태를 동일하게 만들기
절삭력은 칼날 각의 형태와 연마 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강재에 의한 유지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유지력 비교를 위해서 먼저 칼날의 상태를 최대한 동일하게 연마 했습니다.
3. 로프 썰기
더 이상 안 썰릴 때까지 썰어보기
2000번 넘게 썰어 봄
썰어 볼 재료는 황마끈 로프를 택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질감이며, 적당히 거칠고 질겨 수백번 써는 이내에 날이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잡아 뜯어야 해 절삭했다고 볼 수 없는 순간까지의 횟수를 세었으며, 도합 2000번을 넘게 썰었습니다.
4. 결과
가격과 강재에 따라 썰리는 횟수가 최대 3배까지도 남
결과는 크게 3등급 정도로 볼 수 있었습니다.
420 계열의 저가형 강재의1~2만원대 이하 칼들은 60~90번 정도를 썰어 확실히 상대적인 유지력이 낮아 보였습니다. 10~20번 정도 썰고 나면 급격히 날이 무뎌지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몰리브덴이나 바나듐이 추가되는 2~6만원 수준의 칼들은 100~150회 정도로 저가형 칼보다는 확실히 좋은 유지력을 보였습니다. 눈에 띄는 점은 도루코 뉴 클래식인데, 1만원대 좋은 가성비에 비해 썰리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그 이상 가격대의 칼은 200회를 넘게 썰었는데, 이 중 가장 고급의 강재를 사용하는 KAI 슌 클래식과 신쥬오 다마스커스가 썰리는 횟수도 가장 많았습니다.
다만 한 등급 낮은 강재의 10만원 내외 칼들도 비슷하게 썰려 그 차이가 크다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2~6만원 정도의 칼보다 한 등급 강한 칼을 원한다면, 10만원 내외의 칼로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Part 5 결론
평범한 가정에서는 4~10만원 정도면 충분
칼이 비쌀수록 잘 썰릴 것이라는 것은 칼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입니다. 절삭력은 칼날의 각도, 후방 두께와 같은 칼날 각의 형태와, 공장 연마 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제품의 가격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렴한 칼일수록 최초 절삭력을 좋게 하기 위해서 공장 연마에 힘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삭력보다 중요한 것은 유지력이며 이는 칼날을 구성하는 강재에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단단한 강재일수록 가격이 비싸지며 너무 단단하면 일반적인 칼갈이로 가정에서 연마가 어렵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루에 한 두 번 요리하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4~6만원 정도면 충분하며, 괜찮을 칼을 사서 오랫동안 사용하고 싶다면 7~10만원 정도의 칼이 합리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