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투수 2군 보내기

조회수 2023. 6. 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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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로키의 육성 스토리

드래프트(2019년)가 코 앞이다. 각 팀마다 회의실이 분주하다. 찍을까 말까. 고민 중이다. 대상은 뻔하다. 고교 랭킹 1위 투수다. 160㎞를 쉽게 찍는다. 덕분에 괴물로 불린다. 당대의 투수에게만 붙는 호칭이다. 쇼와의 괴물(에가와 스구루), 헤이세이의 괴물(마쓰자카 다이스케), 그리고 그는 레이와의 괴물이다.

12개 구단 중 9곳이 갈등한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자칫하면 지명권만 날릴 판이다. 5개 팀은 철수하기로 했다. 4곳이 끝까지 남았다. 니폰햄, 롯데, 라쿠텐, 세이부가 ‘못 먹어도 고’를 외친다. 운명이 걸린 뽑기가 벌어졌다.

로또 당첨의 주인공은 치바 롯데 마린즈였다. 이구치 타다히토 감독이 만세를 부른다. 반면 당사자의 표정은 반대다. 몰려든 TV 카메라 앞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약체 이미지이고, 인기도 별로인 팀인 탓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때부터다. 극진한 돌봄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른바 ‘로키 지키기’다. 오후나토 고교 출신의 사사키 로키의 유명한 육성 스토리다.

지바 롯데 마린즈 SNS

입단 첫 해는 실전 등판 '제로'

총대를 멘 것은 이구치 감독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로 만들겠다.” 철저한 관리를 선언했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애지중지가 시작된다. 함부로 공도 못 만지게 한다. “이제 19살이다. 아직 성장하는 나이다. 좋은 밸런스와 폼이 먼저”라는 지론을 펼쳤다.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다. 4월이 다가오며 시끄러워진다. 감독의 고집이 점점 세진다. “엔트리에 로키 자리는 없다. 개막은 2군에서 맞게 될 것이다.” 팬들은 어리둥절하다. ‘아니, 지금 괜찮은 투수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선발 로테이션 돌리기도 빡빡한데….’

구단 프런트도 마찬가지다.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얼마만의 일인지 모른다. 캠프에 팬들이 몰려들고, 유니폼 판매도 몇 배로 늘었다. 자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조회수도 100만을 넘기기 일쑤다. 모든 게 슈퍼 루키 덕이다. 그런데 2군행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이구치 감독의 파격 행보가 점점 심해진다. 아예 2군도 보내지 않는다. 내내 1군과 동행시킨다. 오로지 훈련뿐이다. 달리기, 웨이트 트레이닝, 불펜 피칭…. 실전 등판은 제로다. ‘차라리 2군으로 보내서 선발 수업이라도 시키자.’ 프런트와 전문가들이 아우성치지만 소용없다.

그렇게 1년을 ‘허송세월’했다. 적어도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그렇다. 이듬해(2021년). 드디어 1군 무대에 데뷔했다. 물론 마음껏 펼치지는 못했다. 50이닝으로 제한을 걸었다. 이를 조금 넘긴 63.1이닝으로 시즌을 마쳤다. 3승 2패, ERA 2.27.

입단 3년째인 2022년, 그의 해가 밝았다. 개막과 함께 폭풍이 몰아친다. 오릭스전(4월 10일)에서 28년 만의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탈삼진만 19개다. 사상 최연소 대기록이다. 다음 경기까지 이어진다. 8회까지 손도 못 댄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2연속 퍼펙트는 무산됐다. 감독이 교체를 지시했다. “더 던지면 안 된다.” 역시 투구수 보호 조치다.

지바 롯데 마린즈 SNS

결국 엔트리 말소된 슈퍼 루키

김서현이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전체 1순위로 입단한 이글스의 기대주다. 데뷔(4월 19일)하고 1군에서 한 달을 조금 넘겼다. 6월 들어 갑작스러운 난조다. 4경기에서 2.2이닝 동안 4사구를 9개나 허용했다.

특히 7일 베어스전이 심각했다. 영점을 못 잡고 볼만 뿌리다가 내려갔다. 몸에 맞는 볼(데드볼)과 볼넷 1개씩을 내줬다. 출루한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아 동점(3-3)을 허용했다. 문동주의 6이닝 1실점 호투도 날아갔다. 8개의 투구 중에 스트라이크는 1개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표적을 크게 벗어났다.

최원호 감독은 이렇게 밝혔다. “교체되고 내려와 주변 눈치를 보더라.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1군 말소를 결정했다.”

아울러 이런 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특별히 관리해 줘야 하는 선수다. 당분간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게 될 것이다. 공을 많이 던지면서 감각을 찾아야 한다. 보직은 그다음에 결정할 문제다. 문동주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투수가 될 재목이다. 지금 정비하는 게 슈퍼스타가 되는 과정일 것이다.”

이 같은 방침에 여론은 대체로 수긍한다. 이제 막 시작 아닌가. 성장의 과정이다. 시간을 갖고 충분히 준비해서 다시 만나야 한다. 적당한 멈춤이 필요하다. 그런 끄덕임들이다.

갑자기 높아진 변화구 비율

다만 아쉬움의 목소리도 높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락가락하지 않는 일관성에 대한 지적이다.

주목할 사례가 있다. 개막을 앞둔 시점이다. 전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내내 1군과 동행하던 김서현을 2군으로 보냈다. 동시에 퓨처스 코칭스태프에게 특별 메모를 전했다. 이런 내용이다.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지 못하게 해라. 투 스트라이크 이전까지는 무조건 직구 승부를 시켜라.”

수베로의 이유는 분명하다. “캠프 때 보니까 자꾸 슬라이더에 의존하려고 하더라. 분명히 좋은 패스트볼을 갖고 있는데, 어린 선수가 벌써부터 변화구에 물들면 좋지 않다. 그 점을 고치기 위해 2군에서 등판하라고 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콜업됐다. 1군 데뷔전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투구수 17개 중의 11개가 빠른 공이었다. 최고 158㎞(트랙맨 측정은 160㎞)의 레이저도 쐈다. 콘택트 비율 3대장인 허경민을 하이 패스트볼로 돌려세웠다. 54타석만의 삼진이었다.

하지만 5월 중순을 기점으로 내리막이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수베로의 퇴임 시기와 맞물린다. 모자에는 옛 스승의 백넘버를 썼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르침에서 조금씩 어긋난다. 패스트볼에 대한 강조 말이다.

수베로 재임 시에는 그의 직구 비율이 50%를 웃돈다. 그러나 퇴임 이후는 슬라이더 비율이 상당히 높아진다. 3~5개를 내리 구사할 때도 있다. 가장 많이 던지는 구종이 돼 버린 것이다. 이해는 간다. 어디 본인 마음대로 할 연차인가. 벤치와 포수의 의중을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1군 필승조다. 한가롭게 여유부리기 어렵다. 일단 막아야 한다.

물론 개인의 성향도 있다. 변화구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커브, 체인지업, 스플리터도 던진다. 심지어 너클볼도 구사한다. 재능은 맞지만, 득보다 실이 우려된다. 그 나이에는 그러지 않는 게 낫다. 더 큰 장점이 빛을 잃기 때문이다. 그게 수베로의 걱정이었다.

잊히며 안되는 수베로의 미션

물론 사사키 로키는 무척 이례적인 경우다. 이글스에는 정민철과 류현진 같은 사례도 있다. 고졸 신인으로 리그를 씹어 먹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특별한 케이스다. 일반적이고, 모범적인 육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글스의 현실은 엄중하다. 그리고 복잡하다. 시즌 중에 감독이 교체됐다. 동시에 팀의 기조도 달라졌다. 육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조금씩 작아진다. 당장의 승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게 있다. 희생하면 안 될 게 있다. 그건 미래다. 희망이다. 그 끈을 잡아줄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아마 수베로와 로사도(투수코치)였다면 그런 볼배합을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4월의 얘기다. 김서현이 처음 2군에 갔을 때다. 얘기한 것처럼 퓨처스 수뇌부에 메모가 전달됐다. 슬라이더 금지령이다. 몇 주 뒤 1군 데뷔전을 성공한 다음이다. 수베로가 이런 멘트를 남겼다. 어려운 한국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퓨처스 최원호 감독과 박정진 투수코치를 꼭 언급하고 싶다. 직구를 던지게끔 유도해달라는 요청을 한 달 만에 이뤄줬다. 캠프 때와는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수베로는 떠났다. 그러나 그의 미션은 잊히면 안 된다. 그게 이글스의 미래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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