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 연임 막자고 '노후 안전판'까지국민연금 사외이사 추천 논란[김보형의 뷰파인더]
국민연금 나서면 외국인 주주 이탈 우려
주주와 국민은 금융지주 실적에 더 관심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부패한 이너서클’ 지적 이후 본격화한 금융 당국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12일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BNK, iM, JB금융 등 8개 은행계 금융지주 회장과 간담회를 열고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일정을 연기했다. 금융감독원도 4월 22일로 예정됐던 8개 은행계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과의 간담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주총 문턱 높여도 실효성 떨어져
금융 당국은 올해 1월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며 3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제도화까지 추진하겠다고 했다. 일정이 미뤄지면서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 회장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도입’ 등 기존 검토안보다 강력한 규제가 포함된 최종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과 금융 당국이 속도조절에 나선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동시에 나왔다.
금융 당국이 주주총회 문턱을 높여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주총 특별결의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이미 확인됐다. 올 3월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찬성률 88.0%)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99.3%),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91.9%) 등은 모두 특별결의 기준인 출석 주주의 3분의 2(66.7%) 이상 찬성을 무난히 넘겼다.
금융지주는 동일인 지분 한도가 10%(지방금융 지주 15%)로 주주 구성이 분산돼 있어 해외 투자자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KB가 76%로 가장 높고 하나(67%), 신한(61%)도 60%를 웃돈다. 4대 금융 중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낮은 우리금융도 47% 수준이다. BNK금융도 외국인 주주가 지분 41.6%를 들고 있다. ISS나 글래스루이스 같은 해외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참고하는 편이다. ISS가 빈 회장의 연임에 찬성을 권고한 만큼 빈 회장의 연임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시 출석주주의 4분의 3 이상(75%) 찬성하도록 문턱을 더 높여도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현직 회장이 최종 후보로만 뽑히면 주총에서 67%는 물론 75% 찬성률도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 제한 ‘외풍’ 부를 수도
금융 당국 안팎에서도 주주총회 특별결의만으로는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을 막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지주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전부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하고 후보 추천 시 사외이사 전원 서명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사외이사의 임기를 3년 단임제나 2년 임기 후 1년 연임제 등으로 줄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는 2년 임기 후 1년씩 연임하는 방식으로 최장 6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금융지주 회장이 임기를 무기로 사외이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치권에서는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법안까지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금융지주 대표이사의 연임을 1회로 제한해 총 임기를 최대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임 제한이 없어 은행장과 계열사 대표 등을 거쳐 금융지주 회장으로 이어지는 장기집권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하지만 ‘주인 없는 회사’(소유분산기업)라는 이유로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의 임기까지 제한하겠다는 법안은 과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CEO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주주들의 권리를 정부가 원천적으로 빼앗는 점도 문제다. 금융지주처럼 소유분산기업인 포스코도 지난해 3연임에 대해서만 67% 특별결의를 도입했다. 특히 3연임을 법으로 금지할 경우 6년마다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후보들 간 파벌싸움은 물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권 등의 외풍이 거세질 가능성도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 막으려다 ‘낙하산’ CEO가 금융지주 회장자리에 앉을 판”이라고 우려했다.
외국인 주주 이탈 우려도
주총 표 대결로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막기 어려워지자 등장한 아이디어가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추천 역할 확대다. 국민연금은 KB(8.99%·1대 주주), 신한(9.01%·1대 주주), 하나(8.69%·1대 주주), 우리(7.09%·2대 주주), BNK(6.69%·2대 주주) 등 주요 금융지주의 1, 2대 주주다. 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면 주총 안건 상정 전 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금융 당국은 국민연금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단기 매매차익 반환 의무’(10%룰)와 ‘대량보유 보고 의무’(5%룰) 등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 경영에 관여하면 6개월 이내 매매로 얻은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 이 규정은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추천에 걸림돌로 꼽혀왔다. 또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 경영에 개입할 때도 투자 목적이나 지분 변동 내역 등을 공시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하려면 투자 목적을 ‘경영 참가’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투자전략이 노출되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노후재산을 불려야 하는 국민연금이 예외적인 조치까지 동원해 금융지주 경영에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의 ‘관치’ 리스크를 우려한 외국인 주주들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지주 지분의 60~70%를 차지한 외국인 주주들이 손을 떼면 주가 폭락이 불가피하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증시 밸류업도 물 건너간다.
금융지주 이사회 독립성이 오히려 저해된다는 비판도 있다. 소비자보호, 정보기술(IT) 전문가 등 사외이사 후보군이 제한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추천에 나서면 전직 관료 등 ‘관피아’들이 또 다른 사외이사 이너서클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한 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지낸 금융권 인사는 “국민연금 등 주주 추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추천 주체와의 관계와 이해상충 여부부터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2006년 취임 이후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월스트리트는 ‘장기집권’을 문제 삼지 않는다. 다이먼 회장 취임 전보다 회사 주가는 10배 넘게 올랐고 순이익은 7배 가까이 증가할 정도로 탁월한 실적을 내면서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건 ‘누가 금융지주 회장인지’보다는 ‘누가 주가를 올리고 더 많은 배당을 통해 내 노후를 책임질 것인지’가 아닐까.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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