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면엔 행안부 '경찰국' 신설
정권 ‘경찰 장악’으로 민생보다 ‘정권 치안’ 치중
특수본, 인사권 쥔 행안부 장관 수사할지 미지수
[주간경향]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행정안전부의 ‘경찰국’과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행안부는 지난 8월 ‘경찰 장악’ 논란 속에서도 경찰국 신설 등을 강행했다. 행안부는 당시 정부조직법 등을 근거로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행안부의 경찰국과 경찰청장 지휘규칙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정치적·법적 책임론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아울러 경찰국 신설 등으로 인해 정권의 경찰 장악력이 강해진 점도 이태원 참사 예방 실패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민생 치안’보다는 ‘정권 치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얘기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부실 대응 등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최근 행안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이 장관을 포함한 ‘윗선’을 겨냥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행안부 장관이 사실상 경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장관을 여전히 신임하고 있고, 이 장관도 자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지휘·감독 권한 없다?
“행안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 행안부 장관은 치안업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경찰청의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행안부는 지난 6월 27일 경찰국 신설 등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이같이 밝혔다. 행안부는 두 달 뒤인 8월 2일 경찰국과 ‘행정안전부 장관의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이 과정에서 여러차례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 모순된 듯한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됐다. 이 장관은 지난 11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경찰에 대한 일반적인 지휘·감독권이 없다. 특히 개별적 치안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지휘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책임회피를 위한 말 바꾸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경찰에 대한) 지휘 권한은 있으나 그 지휘 권한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11월 14일),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11월 16일)고 잇따라 해명했다.
이 장관은 사퇴론을 일축하며 사태수습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장관은 연내 종합계획 수립을 목표로 삼고 출범한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의 단장도 맡았다. 참사 책임자가 단장이 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야당의 지적에 이 장관은 “책임지는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다”라며 “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11일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전용기 탑승에 앞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지난 16일 귀국할 때는 이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를 두고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행안부 장관, 재난안전관리 총괄 역할
행안부는 국가 재난·안전의 주무 부처다. 정부조직법에는 행안부 장관이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 수립·총괄·조정 등의 사무를 관장한다고 나와 있다. 재난안전법도 행안부 장관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이유다.
이는 이 장관에게 법적 책임이 있는지 따질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이태원 참사 발생 과정과 원인, 각 기관의 사전 대비 상황, 참사 발생 후 조치 등 참사를 둘러싼 사실관계를 다져왔다. 이를 바탕으로 이 장관 등 행안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특수본은 정부조직법과 재난안전법상 이 장관 등 행안부의 구체적인 책임과 권한, 주의의무 등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 특수본은 지난 11월 14~15일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의 박모 실장과 실무자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행안부 직속 기구로, 재난 상황을 전파하는 등 재난안전 및 위기 상황을 종합 관리한다.
이어 지난 11월 17일에는 행안부의 재난안전관리본부 서울상황센터,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안전관리정책관, 재난대응정책관 등 12곳을 압수수색했다. 윗선을 향한 수사를 본격 시작한 것이다. 특수본 관계자는 “주요 압수 대상은 핼러윈 관련 보고 문건과 이태원 사고 대응 자료, 매뉴얼 등 문서 또는 전자정보”라고 말했다. 특수본은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이태원 참사 발생 전에 사고 가능성에 따른 대책 마련 필요성이 담긴 자료 등을 행안부에 보고했는지 여부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예년 핼러윈 관련 대책 자료나 정기적으로 다중 인파가 몰리는 장소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 등이 담긴 문건의 확보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특수본은 행안부 장관의 의무가 무엇이고 상황에 따라서 어떤 조치를 해야 했고, 실제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등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장 지휘규칙, 부메랑 되나
특수본은 또 지난 8월 신설된 경찰국의 업무와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 내용도 분석하고 있다. 정부조직법과 더불어 경찰국 및 경찰청장 지휘규칙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경찰의 일상적인 상황처리를 지휘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간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을 통해 경찰을 지휘한 전례나 경찰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 및 보고내용 등도 파악해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국의 업무 중에는 경찰의 중요정책 수립과 관련해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는 사항이 포함돼 있다. 특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에는 경찰청장이 ‘중요 정책 및 계획의 추진 실적’을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그 밖의 법령에 규정된 권한 행사 및 책무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해 행안부 장관이 요청하는 사항’도 보고 대상이다. 이창민 변호사(민변 10·29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 공동간사)는 “지휘규칙에 따라 이상민 장관에게 실질적인 지휘권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라며 “치안 안전 계획의 보고를 경찰청장에게 요청할 수 있었지만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 노조가 지난 11월 15일 이상민 장관을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한 건도 특수본이 행안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 길을 틀 수 있게 했다. 특수본은 고발에 따라 이 장관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다만 이 장관은 일반적인 형사 절차에 따라 형식적으로 피의자 신분이 됐다. 특수본이 이 장관까지 수사를 뻗어나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윤 대통령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장관에게 신임을 보내는 상황이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오른팔’이라 불릴 정도로 최측근이다. 특수본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이 장관이 사실상의 경찰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 장관에게 칼날을 들이댔다가 향후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지난 11월 15일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행안부와 경찰을 연결하는 끈은 전혀 없다”라며 지휘·감독 권한에 재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유일한 끈이라는 것은 경찰 고위직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인사제청권이 유일하다”고 했다.
이 장관이 언급한 인사제청권은 경찰을 통제·장악할 수 있는 막강한 수단이다. 이 장관은 지난 8월 경찰국을 신설하면서 총경 이상(경정부터 대상)의 인사제청권을 실질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경찰청장이 인사안을 추천하면 행안부 장관을 경유해 대통령이 최종 결정했다. 이 장관은 이렇게 형식에 그쳤던 제청권을 제대로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청장의 인사추천권을 무력화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행안부 장관은 실질적인 경찰 인사권을 가짐으로써 경찰 조직을 장악할 수 있다. 이 장관도 당시 “추천권과 제청권은 차원이 다르다. 추천권과 다르게 제청해도 아무 상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권 치안’에 치중한 결과
이런 행안부 장관의 인사권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맞물려 이태원 참사 발생에 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가 대통령실 주변 경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상대적으로 민생 치안을 다룰 여력이 줄었다는 해석이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실 앞에서 개최된 집회·시위 현장에 나가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대통령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앞 집회가 없었다면 그 경찰들이 이태원으로 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서장도 지난 11월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대통령실 이전 때문에 업무 부담이 과중된 것 아니냐’는 질의에 “경호나 경비 쪽은 (부담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 맞춰 인원이 보충됐다. 현장에서는 그러나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민생 현안보다 경비에 집중했던 것 아니냐’는 질의에는 “특정 업무에만 집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시 집회·시위가 있었고 현장 대처를 분명히 하라는 지령이 있었다”고 했다.
행안부가 경찰국을 신설하면서 인사제청권을 실질화한다고 발표했을 때, 일선 경찰들이 민생보다는 정권을 위한 치안에 더 신경쓸 것이란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태원 참사를 이런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선 경찰관의 말이다. “경찰국 설치할 때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경찰들이 많아질 것이란 말이 많았다. 대통령 행사와 일반시민 행사가 있다면 경비 인력을 대통령 행사에 더 많이 배치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행사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인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에서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떠나서 일선 경찰들은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본다. 경찰이 과거로 회귀하면서 ‘후진국형 참사’가 발생했다고 본다.”
민주당 등 야당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마약과의 전쟁’도 참사 원인으로 지목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21일 경찰의날 행사에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 마약 단속을 위한 형사 52명이 투입됐다. 검거 실적은 ‘0건’이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조직에서 아랫사람들은 윗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대통령이 마약을 언급한 이상 마약검거 실적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1월 7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질서 유지가 아니라 다른 쪽에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의에 “마약 쪽에 상당한 비중을 뒀던 건 맞다”고 밝혔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니 다른 업무를 제치고 마약범죄에만 집중한 것 아니냐’는 질의엔 “마약 관련 범죄 예방 활동에 형사들이 투입된 건 제 지시에 의한 게 맞다”라고 했다. 용산경찰서가 2017년부터 올해까지 작성한 핼러윈 관련 치안대책을 담은 계획 문건 가운데 ‘마약’을 언급한 건 올해가 유일하다. 다만 “서울경찰청은 지난 7월부터 마약 특별 단속을 시작했다”고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통령실 이전과 마약이 이번 참사와 연결된다는 지적을 두고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박하는 상황이다.
사전 위험성 충분히 예측 가능
이 장관을 제외하고 지난 11월 17일까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입건한 인물은 7명이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총경·참사 당일 상황관리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용산경찰서 전 정보과장(경정) 및 정보계장(경감·사망), 해밀톤호텔 대표 등이다. 류 전 과장을 제외한 6명의 주된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전 안전사고의 위험을 인식하고도 대책을 수립·이행하지 않는 등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혐의다.
사전에 위험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이와 관련한 여러 정황은 이미 나온 상태다. 우선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압사’ 등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내용의 112신고가 11차례나 접수됐다. 또 용산경찰서 정보과는 참사 사흘 전 “핼러윈 기간 대규모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취지의 정보보고서를 작성해 내부망에 올렸다. 해당 보고서는 참사 이후 삭제됐다. 특수본은 삭제 경위가 석연찮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용산경찰서는 2020년 핼러윈을 앞두고 안전사고에 대비하면서 압사 발생도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됐다. 임호선 민주당 의원이 용산경찰서에서 제출받은 ‘2020년 핼러윈 데이 종합치안 대책’ 문건에는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 “112타격대 현장 출동해 PL(폴리스라인) 설치 및 현장 질서 유지”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올해 대책 문건에선 빠졌다.
용산경찰서가 올해 핼러윈을 앞두고 대규모 인파에 따른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투입을 요청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지난 11월 16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지원을 두차례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서울청이 당일 집회·시위가 많아서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이 왔었다”라며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재차 검토했지만 집회·시위 대비 경력이 부족해 안 된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 청장도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불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2주 전 같은 지역에서 열린 ‘지구촌 축제’ 때는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지역 상인회 등이 사전에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해 362명을 현장에 배치했다. 용산구청 직원이 150명이었다. 이번 참사 당일 구청 직원은 8명뿐이었다. 안전관리 계획에는 ‘넘어짐 사고’에 대비하는 내용도 담겼다. 특수본은 용산구청에 이어 지난 11월 17일 서울시 등을 압수수색했다. 지자체의 부실 대응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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