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야생성의 실종, AMG GT 55 4Matic +

<카매거진=최정필 기자 choiditor@carmgz.kr>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 고성능 모델이라는 것은 늘 자존심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여러 전통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고성능 브랜드를 운영해왔다. 이는 모터스포츠의 역사이자, 제조사들의 자부심이다. BMW에게는 M, 메르세데스-벤츠에게는 AMG가 그렇다. 현대차가 뒤늦게 N 브랜드를, 제네시스의 마그마 레이싱을 만드는 것은 이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다.

AMG GT는 메르세데스-벤츠에게 있어 자존심이다. AMG 를 자회사로 흡수, 메르세데스-AMG로 새롭게 브랜딩을 했다. 그렇게 AMG 전용 모델로서 선보인 것이 GT다. 물론 헤일로 모델은 그 전에도 존재했다. SLR-매클라렌이 그랬고, SLS가 그랬다. 약 10여년 전, 당시 한국 담당자가 “AMG GT에 비하면 SLS는 쓰레기죠”라며 거칠게 힐난했던 순간을 잊기 어렵다. 그만큼, GT에 대한 자부심은 강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제조사는 ‘팔아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은 냉철하기에 자부심과 자존심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AMG GT에겐 AMG GT 4도어 모델이 그랬다. AMG의 고성능과 감성을 재료로 GT의 자부심을 담았다. 거기에 시장을 유혹하기 위한 뚱뚱한 세단형 몸매를 입혔다. 덕분에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를 향해 ‘잘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리고 10년. 2세대로 돌아온 AMG GT는 1세대에서 경험한 자본주의의 맛을 놓지 못했다. 2도어 2시트, 프론트 엔진 리어 휠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롱노우즈 숏데크의 형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폴딩이 되는 2열 시트가 적용됐고, 엉덩이 밑에서 놀던 뒷바퀴는 저 멀찍이 떨어졌다.

먼저 선보이고, 시승한 차가 4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을 탑재한 55 4Matic + 모델일 뿐, 전동화의 바람도 피하지 못했다. 연내 출시될 AMG GT 63 S E는 PHEV 파워트레인을 탑재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순수 고배기량 고성능 내연기관의 도파민은 이제 정말로 종말을 고했다는 뜻이다.

전동화가 됐을지라도 빠른 차는 여럿 있다. 하지만 그게 곧 짜릿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마니아의 마음에 불을 지펴야 하는 시장이다. 단순히 빠른 것보다는 짜릿함을 중요시하는 이들을 매료시켜야 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2세대 AMG GT는 분명 빠르다. 55라는 숫자가 붙었지만 전작의 63과 동등한 수준이다. 주행 환경에 따라 기민하게 변화하는 유압 서스펜션은 상체는 가급적 평온하게, 하체는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게 해준다. 약 2.5도까지 꺾이는 후륜 조향 시스템은 차의 거동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최고출력 476마력 최대토크 71.4kgf.m의 힘은 4매틱 사륜구동 시스템을 통해 지면으로 고스란히 뿜어져 나간다. 이를 세우기 위한 수단은 론치 에디션의 세라믹 브레이크가 아니어도 좋다. 브레이크 양에는 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AMG 스피드웨이의 가장 긴 직선주로 구간에서 시속 200km 넘게 달려도 그 뿐이다. 서킷에서의 모든 주행을 마치고 나와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나는 주행이 아니다. 편안하게 시뮬레이터를 타고 내린 듯한 편안함이 온 몸을 지배한다.

이런 성향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 접근의 벽을 낮출 것이고, 이는 곧 판매로 연결될 것이다. 로망이었던 차가 모두에게 열리게 되는 셈이다. 마이바흐가 더 이상 하이-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것처럼, AMG 역시 더 이상 하이-퍼포먼스 브랜드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성이 잘못된건 아니다. 하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다.

이런 기조는 AMG GT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출시된 모든 AMG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다만, 가장 위에 자리한 헤일로 모델에서도 이런 모습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고성능 브랜드인 AMG에게서, 야생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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