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삼계탕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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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올까 싶던 초복, 수천 년을 이어온 여름나기의 지혜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2025 년의 초복이 오늘이다.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三伏)의 첫 번째 날인 초복은 소서(小暑)와 대서(大暑) 사이에 자리하며, 무더위의 서막을 여는 날로 여겨진다.
경일은 십간(十干) 중 일곱 번째인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당시에는 닭백숙을 즐겨 먹었으며, 1900년대 들어 인삼이 대중화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삼계탕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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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올까 싶던 초복, 수천 년을 이어온 여름나기의 지혜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2025 년의 초복이 오늘이다.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三伏)의 첫 번째 날인 초복은 소서(小暑)와 대서(大暑) 사이에 자리하며, 무더위의 서막을 여는 날로 여겨진다. 많은 사람이 복날이면 으레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찾지만, 그 유래와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경우는 드물다. 복날의 전통은 음식 문화를 넘어,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복날의 ‘복(伏)’ 자는 ‘엎드리다’는 뜻을 가진다. 가을의 서늘한 금(金)의 기운이 여름의 뜨거운 화(火)의 기운 앞에 굴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사람이 더위에 지쳐 마치 개처럼 엎드려 지낸다고 해서 복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초복을 포함한 삼복의 기원은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따르면, 중국 진나라의 덕공 2년(기원전 676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에는 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벌레를 쫓는 주술적인 의미로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액운을 막고자 했다.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복날의 날짜를 정하는 방식은 천문과 관련이 깊다. 초복은 24절기 중 하나인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로 돌아오는 경일(庚日)이다. 경일은 십간(十干) 중 일곱 번째인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하지가 지난 후 약 20일 뒤에 초복이 찾아오며, 보통 양력 7월 11일에서 20일 사이에 든다. 중복은 하지 후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 후 첫 번째 경일로 정해진다.
한국에서 복날 풍습이 정착한 것은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삼복이 되면 더위를 이겨내라는 의미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얼음과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 당시 얼음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빙표’라는 증표를 가진 관리만이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갈 수 있었다. 민간에서는 더위로 떨어진 식욕을 보충하기 위해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
농경 사회였던 과거에는 여름철 농사일로 지친 체력을 보충하는 일이 중요했다. 선조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를 발휘해 뜨거운 보양식을 먹으며 지친 몸을 회복했다. 당시에는 닭백숙을 즐겨 먹었으며, 1900년대 들어 인삼이 대중화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삼계탕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닭고기는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안정시키고 몸의 저항력을 키워주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복날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삼계탕 외에도 추어탕이나 장어 등도 대표적인 복날 보양식으로 꼽힌다.
복날에 내리는 비는 지역에 따라 길흉의 의미가 달랐다. 전남 지방에서는 복날의 비를 ‘농사비’라고 부르며 풍년을 기대했고, 충북 보은 지역에서는 복날에 비가 오면 대추 농사가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었다.
오늘날 초복은 전통적인 의미를 넘어 가족, 친구들과 함께 건강을 챙기는 날로 자리 잡았다. 무더운 여름, 선조들이 더위를 이겨내던 지혜를 되새기며 건강한 여름나기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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