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을 직접 현장에서
몸소 겪고 민생을 안정화하는 데 주도했던 광해군은
무엇보다 임진왜란이라는
7년의 지옥의 전쟁이 끝난 후
그 피폐해진 사회를 다시 재건해야겠다는 열의가 컸습니다.

광해군 즉위년이었던 1608년
한국사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대동법을 시행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세금이 있을 게 아닙니까.
조선시대가 이전
아주 먼 저 옛날부터
국가에 내는 세금 중에
고을 단위 마을 단위로
그 지역의 특산물을 납부하는 세금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특산물 선정 기준이 애매하고 제멋대로라
특산물이 아닌데도
다른 지역에서 특산물을 몇 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사와
세금을 메워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영화 <광해>를 보시면 심은경 배우가 연기했던 ‘사월’이란 역할이
농부였던 아비에게 전복을
세금으로 요구하자
이를 들어주지 못해
곤장을 맞고 가족은 노비로 전락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정도는 평범할 정도였는데

임진왜란 이후로
국토가 쑥대밭이 되자
정말 특산물 세금납부가 어렵다는 중론이 모아져
광해군은 몇몇 신하들의 건의로
특산물 대신
그냥 보유하고 있는 재산만큼
쌀로 대체하라는
대동법을 내린 겁니다.

이 뜻은 재산이 없으면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며
재산이 많은 만큼
세금을 내라는 법안이죠.

이래서 재산 많은 양반들이
들고 일어났고
별 수 없이 광해군은 대동법의 범위를 경기도에만 국한시켰으나

그럼에도 백성들의 고통을 더는
파격적인 개혁을 처음 시행했다는 의미는 있죠.

더불어 전후
위생 보건상태가 엉망이라
광해군은 허준을 물심양면 지원하여
1612년 (광해군 4년) <동의보감>이 완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재위 초반에는
임해군 사건을 제외하곤
최대한 정치적 혼란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북인이 주도적인 집권여당이었음에도
남인과 서인도
최대한 많이 등용해주는 등
균형있는 정치력을 진두지휘하는 유능한 군주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