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리포트] ‘적대적 M&A’ 낙인 찍힌 고려아연 싸움… 실제로는 ‘합병’ 아닌 ‘지분·지배권 전쟁’

이지은 기자 2026. 5. 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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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M&A’ 프레임 남용 땐 오해 커져…‘합병’은 원칙적으로 합의의 산물
잘못된 용어 설정이 오해를 부를 수 있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고려아연 제공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아니라 정확히는 ‘지분·지배권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합병’은 양측 ‘합의’를 전제로 하는 만큼 현 단계에서 합병 국면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표현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통상 자본시장에서는 주식·자산 인수까지 포괄해 M&A라는 용어를 쓰지만, 이를 두고 일괄적으로 ‘적대적 M&A’로 호명하는 방식은 경영진 방어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려아연 분쟁의 경우 고려아연, 영풍·MBK, 소액주주가 사용하는 언어가 엇갈린다. 고려아연은 지난 2024년 9월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사전 협의 없이 공개매수를 발표한 직후 보도자료 등을 통해 경영진이 이를 적대적 M&A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반면, 영풍·MBK 측은 ‘대주주의 정당한 주주권 행사’와 ‘거버넌스 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소액주주 일부는 ‘경영권 탈취’가 아닌 ‘투자 의사결정의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 상법·지배구조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일괄적으로 적대적 M&A로 부르는 데는 개념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상법상 합병은 양측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야 성사되는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현재 논의되는) 적대적 인수 프레임은 경영자 개인에게 적대적인 것일 뿐인데, 회사 전체에 적대적인 것처럼 초점을 이동시킨다”며 “회사를 살리려는 활동조차 공격으로 오해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고려아연 사례는 양측 기업의 합병 절차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여론 일부에서 적대적 M&A로 통칭되면서 공개매수·지분 인수·주주권 행사 등 서로 다른 행위들이 한데 묶여 논의되는 용어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고려아연 측은 “이사회와 경영진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외부 세력이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는 것은 통상 ‘hostile takeover’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사전’, 미국 코넬대 로스쿨(Cornell Law School)의 정의 등에서도 적대적 M&A를 대상 기업 대주주의 협의나 이사회의 승인 없이 이뤄지는 기업지배권 탈취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용어 프레이밍이 실제 시장에서 힘을 갖는 배경에는 국내 기업들의 폐쇄적 지배구조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집단은 평균 62.4% 내부지분을 가진 ‘철옹성’ 구조다. 그러나 실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기업들의 대주주 지분율은 26.1%에 그쳤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견고한 지분 방어막을 가진 대기업들이 앞장서 ‘적대적 공격’ 프레임을 내세울수록 지분 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업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견제·감시 시도들까지 일괄적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잘못된 용어 설정이 주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회사를 살리려는 주주 활동이 회사를 해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일반 주주들이 정당한 주주권 행사에 동참하지 못하고 경영진의 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회사를 공격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어느 주주가 그 편을 들겠나”라며 “잘 모르는 주주들은 (프레임에 의해) 경영자 편을 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j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