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지금 필요한 게 맞아?” 위기의 삼성과 밸류업 프로젝트[비즈니스 포커스]

2024. 10. 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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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28일 서초동 삼성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만큼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다. 성장과 분배다. 최근에도 성장과 분배를 놓고 다투는 시장이 있다. 주식시장이다.


 ‘5만전자’ 삼전?

“밸류업이 무슨 소용이죠?” 최근 삼성전자 주식 투자자들이 모인 네이버 종목 토론방에서는 밸류업 프로젝트가 뜨거운 논쟁 주제다.

정부가 내놓은 ‘K-밸류업 지수’에 삼성전자가 포함되었지만 주가는 신저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7일엔 장중 5만9500원까지 밀렸다. 기대치를 밑돈 3분기 실적에 최고경영자가 나서 사과문까지 썼다.  

최근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보폭을 맞춰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고위 임원들이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섰으나 주가는 끝없는 하방을 향해 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맥쿼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12만5000원에서 6만4000원으로 내리고 투자의견은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했다. 메모리 부문이 하향 국면에 진입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하고 D램 등 메모리 공급과잉에 따라 평균판매단가(ASP)가 내림세로 전환하면서 수요 위축이 실적 둔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전 산업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9월에는 모건스탠리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반도체 겨울론’에 불을 붙였으나 실적 풍향계로 통하는 마이크론의 호실적으로 강력한 AI 수요가 확인되며 반도체 겨울론을 잠재웠다.

삼성전자는 예외다. 맥쿼리는 “상황에 따라 (삼성전자가) D램 1위 공급업체 타이틀을 잃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투자자 사이에선 삼성전자에 지금 밸류업 프로그램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마저 나오고 있다. 앞서 밸류업 지수에 포함됐을 때도 시장은 일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컸다.

맥쿼리는 삼성전자에 대해 “현금이 있는 곳과 현금이 필요한 곳 사이에 큰 불일치가 있어 시가총액 규모를 고려할 때 주주환원 정책을 늘릴 여지는 제한적”이라며 밸류업 지수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 내에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부문과 현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부문 사이에 차이가 생기면 현금의 효율적인 활용이 어렵고 이로 인해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할 여지가 제한된다는 분석이었다.

실제 삼성전자는 고강도 긴축 중이다. 지난 10월 2일엔 삼성전자가 글로벌 인력 감축 계획의 일환으로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에서 해당 지역 인력의 약 10%를 정리 중이며 전 세계 자회사에 영업·마케팅 직원을 약 15%, 행정 직원을 최대 30% 줄이도록 지시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연봉도 삭감한 바 있다. 삼성전자 직원들의 2023년 1인당 연봉은 1억35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11.1% 감소했다. AI 시대의 총성 없는 전쟁은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이란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삼성전자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장기적 관점의 혁신과 투자란 분석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보다 성장 전략의 재정비, 신규 투자 기회 발굴, 재무 건전성 유지 등에 집중하는 것이 주가에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 2600에도 시기상조 밸류업?

기업 경영에서 성장을 위한 재투자와 주주환원을 위한 자본 사용 간의 선택은 언제나 중요한 경영 결정이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기업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줄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려면 다양한 경제지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대표 사례일 뿐이다. 한국 경제의 핵심 지표들이 지금 가리키는 방향은 무엇일까.


 평균 ROE 5.2%

밸류업의 근간이 되는 ROE(Return on Equity, 자기자본이익률)는 기업의 자본 대비 수익률을 나타내는 지표로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데 필수적이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증시 ROE 평균은 5.2%다. 선진국 14.3%, 신흥국 10.8%에 크게 미달한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이 여전히 대규모 장치산업에 집중된 영향이다.

이는 한국 증시가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는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신호다. 선진국과 신흥국에 비해 ROE가 크게 뒤처지는 상황에서는 자본을 투자에 사용해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은 주가를 일시적으로 부양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경쟁력을 개선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부채비율 122.3%

기업대출 잔액도 적신호다. 성장을 위한 투자라면 달가운 소식이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동산 부문으로 기업 대출이 몰리고 있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한은이 조사한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부채는 2023년 말 2734조원으로 2018년부터 6년간 1036조원이나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8.3%)은 연평균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3.4%)의 두 배를 훌쩍 넘었고 그 결과 명목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2017년 말 92.5%에서 2023년 말 122.3%로 치솟았다. 한은은 기업부채 증가 원인을 기업 부문별로 나눠 분석했는데, 우선 201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경기 활황과 함께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부동산업에 대한 대출이 급증했다.

류창훈 한은 금융시장국 과장은 “기업부채가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동산 부문에서 크게 확대된 것은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며 “자본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에 신용이 집중될 경우 전반적인 자본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와 신용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올해도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정부가 총력을 펼치는 사이 기업부채가 크게 늘었다. 국내 5대 은행이 기업에 내준 대출은 올해 들어서만 약 56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822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1~8월 증가분(43조7625억원)과 비교해 27%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폭이 30조원대 초반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가파른 확장세다. 

기업부채가 증가하는 것이 적극적인 투자의 결과라면 좋은 신호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그렇게만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좀비기업 16.4%

전문가들은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업대출을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좀비기업’이 늘 수 있는 불경기에는 더욱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은도 한계기업의 부채 비중이 커지는 등 부채의 질이 떨어지는 사실은 위험 요소로 꼽았다. 한계기업이란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3년 동안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기업이다. 전체 일반기업 차입 부채 대비 한계기업 부채의 비율은 2021년 말 14.7%에서 2023년 말 16.4%로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22년의 15.5%를 뛰어넘은 역대 최대치다.

 기업심리지수 3개월 연속 하락세

시장 심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미국의 금리인하로 훈풍이 불 것 같지만 아직은 싸늘하다. 기업심리지수는 주요국의 경기둔화 우려 등으로 석 달 연속 하락세다. 한국은행의 ‘9월 기업경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91.2로 전월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3개월 연속 하락세로 지난 3월(89.4) 이후 최저치다. 장기평균치(2003년 1월~2023년 12월)를 기준값 100으로 해 100보다 크면 장기평균보다 낙관적임을,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제조업과 비제조업 모두 하락세다. 특히 제조업 기업심리가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이 2.7포인트 하락한 94.1을 기록했다. 지난 2월(91.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소기업도 2.6포인트 떨어지며 90.2을 기록했다. 지난 2020년 9월(86.7) 이후 최저치다. 이들의 경영애로사항은 내수부진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인력난 및 인건비 상승도 기업심리지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제조업 심리 악화는 곧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내수가 살아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공포지수 45.86

투자자의 심리도 마찬가지. 한국의 공포지수(VIX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지난 8월 5일에 45.86까지 치솟았다. VKOSPI가 30을 돌파한 사례는 2011년 8월(미국 신용등급 강등), 2019년 4월(미·중 무역 분쟁), 2020년 3월(코로나19 확산) 등이다. 10월 3일 현재는 25선으로 안정권을 찾아가고 있지만 평균 10선에서 움직인 지난해와 올초에 비하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전 세계를 긴장에 빠뜨리는 ‘두 개의 전쟁’은 최근 긴장감을 더 키우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란은 전면전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빅컷으로 금리인하의 닻을 내린 미국까지도 중동 긴장감에 증시 불안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재채기에 독감을 앓는 한국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경제신문>에 따르면, 세계 주요 20개국과 홍콩, 대만 등 22개국의 올해 1~3분기 증시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지수는 한국의 코스피와 코스닥, 멕시코의 S&P/BMV IPC, 러시아 RTSI 등 4개뿐이었다.

미국 나스닥과 대만 자취안 지수가 20% 이상 상승한 것과는 극명한 차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코스닥지수는 -13.08%로 23개 지수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의 RTSI 지수도 -10.02%로 22위를 차지했다. 사실상 전쟁국보다도 못한 성적이다.

3000을 노래하던 코스피는 현재 2500 박스피에서 보합 중이다.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며 축포를 쏜 것은 2007년 7월 24일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한국 증시는 여전히 2000 시대다. ‘3000 시대’를 열었던 2020~2021 코로나 시대를 제외하면 ‘박스피’ 세월이 근 15년이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 17년의 코스피 수익률은 39.6%였다. 1년에 2.2%씩 오른 셈이다. 평균 물가상승률(3%대)보다 낮다. 저축은행에 넣어 뒀으면 주식에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았을 것이다. 엄청난 ‘디스카운트’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정조준했다. 그게 바로 올해의 화두 ‘밸류업 프로젝트’다. 주식시장의 저평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문제 제기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기에 자본시장도 처음엔 환영이 더 컸다. 그러나 지난 9월 24일 밸류업 지수 발표 후 시장은 돌아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권 공방에 금융투자소득세는 당장 내년 1월 1일 시행될지도 미지수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한국 주식시장은 금투세 포비아로 동력이 상실된 채 해외주식 이민이 급증하고 있다”며 “국부가 해외 시장으로 이탈하고 기업공개(IPO) 시장만 축소되는 초악재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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