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담했던 패장의 소감
경기 직후다. 그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된다. 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소회를 밝힌다. (22일 대구 라이온즈 파크, 삼성 라이온즈 – 한화 이글스 플레이오프 4차전)
기자 “아쉬운 패배였습니다. 오늘 경기 총평 부탁드립니다.”
달감 “오늘은 뭐 전적으로 감독이 투수를 잘못 써 가지고, 모든 건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말씀하신 대로 폰세 선수의 투입 시기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을 고려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달감 “음… 6회를 넘어가고, 만약 7회까지 불펜이 막았더라면, 8회를 준비했습니다.”
기자 “김서현 선수가 아직 부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후 활용 방안에 대해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
달감 “오늘 김서현 선수가 맞았지만 볼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구가 한 경기, 두 경기는 김서현 선수가 없어도 이길 수 있지만 더 큰 목표를 한다면 저는 김서현 선수가 일어나야 우리 한화가 우승을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음 경기는 김서현 선수가 마무리로 나올 겁니다.”
기자 “이제 마지막 5차전입니다. 어떤 각오로 임하실 거고, 혹시 선발 투수를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달감 “뭐 오늘 끝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홈으로 돌아가서 팬들과 마지막 경기를 재미있게 해보고 싶습니다.”

“기죽지 말라고 한 말이겠지”
길지 않은 인터뷰 내용이다. 얼추 2개의 단락으로 구성된다. ‘자책’, 그리고 여전한 ‘신뢰’다.
일단 패배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모든 건 제 잘못”이라는 부분이다. 이유도 분명히 밝혔다. “투수를 잘못 써서”였다.
여기까지는 깔끔하다. 누굴 탓하지 않는다.
그다음이 문제다. 김서현 부분에 세상이 술렁인다. 이런 논리 전개다.
‘볼 자체는 괜찮았다 → 우승을 위해서는 결국 김서현이 일어나야 한다 → 그래서 5차전에도 마무리로 쓰겠다’.
다 맞는 말이다. 교과서 그대로다. 위력은 나쁘지 않았다. 150㎞ 후반의 빠르기도 보여줬다. 다만 상대가, 특히 김영웅이 너무 잘 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운이 없었을 뿐이다.
목표는 플레이오프가 아니다. 한국시리즈다. 그러자면 어쩔 수 없다. 마무리 투수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믿고 기용하겠다.
상당수 팬들은 진심은 아닐 것이라고 해석한다. 대외적인 멘트라는 뜻이다. 달 감독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다. 선수 기를 살리기 위해서 한 배려라는 뜻이다.
이순철 해설위원도 비슷한 견해다. 팀 분위기나, 기세 등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한 얘기가 아니겠냐. 그런 설명이고, 짐작이다.

빈말하는 성격 아니라는데
하지만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 달 감독 모르냐. 절대 빈말하는 성격 아니다. 그런 주장이다.
예로 드는 ‘사건’이 있다. 2015년 플레이오프 때다. NC가 정규 시즌 2위였다. 두산은 준PO를 거쳐 올라왔다. 시리즈 앞둔 미디어 데이 때 달 감독이 깜짝 발표를 한다.
“나성범을 투수로 등판시키겠다.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팬들을 위해 색다른 볼거리로 선물을 드리겠다.”
모두가 ‘설마’했다. 그런데 현실이 됐다. 5차전 때였다. 9회 초 2사 후에 타임을 부른다. 그리고 마운드에 나성범을 올렸다. 대타 데이빈슨 로메로에게 안타를 맞고, 다음 오재원을 3루 땅볼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기가 막힌 것은 상황이다. 데스 매치였다. 지면 탈락하는 최종전이다. 당시는 다이노스가 4-6으로 뒤진 상태였다. 그런 대목에서 깜짝 이벤트가 실현된 것이다. ‘팬들과 약속이다. 말한 것은 꼭 지킨다.’ 그 점은 명백했다. (게임은 그대로 끝났다.)
어디 그뿐인가. 그만의 캐릭터가 있다. 뚜렷한 소신이다. 그야말로 ‘한다면 한다.’ 베이징 올림픽 때 이승엽 기용이 그랬다.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감독은 꿈쩍하지 않는다. “중요할 때 한 번만 해주면 된다.” 그러면서 붙박이로 기용한다. 결국 찬란한 금메달로 돌아왔다.
올시즌도 마찬가지다. 노시환이 긴 시간 슬럼프에 빠졌다. 타선의 혈이 매번 거기서 막혔다. 그래도 요지부동이다. 4번 타자 자리는 늘 변함없다. (7월 4일 딱 하루 6번으로 내려갔다.)

월드시리즈 BK의 악몽
벌써 25년이 지났다. 2001년 월드시리즈가 떠오른다. 다이아몬드백스와 양키스의 대결이었다.
4차전 때다. 스코어 3-1이던 8회 말이다. 앞선 D백스가 일찌감치 마무리를 투입한다. 김병현이 아시아 최초의 WS 등판이라는 영예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9회 말에 문제가 생긴다. 2사 후에 동점 투런(티노 마르티네스)을 허용한다. 오기의 BK는 10회에도 출격했다. 그리고 역시 2사 후에 끝내기 홈런(데릭 지터)을 맞고 말았다.
다음 날이다. 또다시 2-0으로 앞선 9회 투 아웃이다. 이번에도 2점포(스콧 브로셔스)에 당했다. 끝내 마운드에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결국 감독(밥 브랜리)이 교체하러 올라온다. 그리고 BK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머리 숙이지 마.”
시리즈는 7차전까지 갔다.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D백스는 모든 투수를 갈아 넣었다. 심지어 전날 7이닝을 던진 랜디 존슨에게 8~9회를 맡겼다. 유일하게 BK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애리조나가 3-2로 역전, 첫 우승)
다시 베이징으로 가자. 올림픽 준결승(한ㆍ일전)이 끝난 뒤였다. 이승엽이 달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왜 저를 교체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널 바꾸는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지는 거야.”
이번에도 비슷한다. 이승엽이 김서현으로 바뀐 것뿐이다.
“김서현이 일어나야 우리가 우승할 수 있다. 5차전에도 마무리로 내보내겠다.”
너무나 뚜렷하다. 확고한 소신이다.
그런데 일부(라고 해 두자) 팬들은 걱정이 한가득이다. ‘설마’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