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는 2026시즌을 두 개의 불펜 서사로 시작했다. 하나는 붕괴였고, 하나는 복귀였다. 두 서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민우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전직 마무리 김서현이 롤러코스터를 타다 2군으로 내려갔고, 6주 임시 계약으로 뒷문을 틀어막은 잭 쿠싱마저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5월 중순, 한화의 마무리 자리는 공석이었다. 김경문 감독이 낙점한 이름은 이민우였다.
이 결정을 이해하려면 이민우의 올 시즌 궤적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는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시범경기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었다. 지난 4월 12일 1군에 합류한 뒤 14경기(17⅓이닝)에 나서 평균자책점 2.08을 기록했다. 4홀드. 수치만 보면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 안에 경기를 정리하는 능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 한화 벤치의 판단이다.

이민우가 마무리 후보로 부상한 결정적 장면은 지난 8일 LG 트윈스전에서 나왔다. 3⅓이닝을 막아낸 그날 등판은 단순한 롱릴리프가 아니었다. 위기를 수습하는 방식, 타자를 압도하는 투구 밀도가 벤치에 각인됐다. 마무리는 단지 9회를 막는 포지션이 아니다. 팀이 가장 불안한 순간에 등판하는 투수가 마무리다. 이민우는 그 기준을 이미 충족하고 있었다.
그의 투구 철학은 단순하다. 스트라이크를 먼저 던진다.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방식은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고, 타자가 방망이를 먼저 움직이게 만든다. 구위가 압도적이지 않아도 유효한 전략이다. 실제로 올 시즌 이민우의 등판에서 볼넷보다 스트라이크 비중이 높았고, 타자들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 결과가 평균자책점 2.08이다.

이민우가 마무리 낙점에 반응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부담되지 않는다. 그냥 똑같은 1이닝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던지면 된다." 이 발언은 겸손의 수사가 아니다. 마무리 투수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조건, 즉 상황을 단순화하는 능력을 그가 갖추고 있다는 신호다. 9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가 9회임을 먼저 의식하는 순간, 그 투수는 이미 불리한 위치에 선다.
지난해의 결핍도 지금의 동력이 됐다. 2025시즌 이민우는 단 한 경기도 1군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팀은 그해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올라갔다. 그 자리에 이민우는 없었다. "거기에 내가 없어서 아쉬웠고, 동기부여도 됐다"는 말은 비시즌 훈련의 밀도를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준비의 총량이 달랐다는 것은 올 시즌 1군 복귀 후 14경기 무실점에 가까운 흐름이 증명하고 있다.

한화의 불펜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민우의 역할은 단순히 쿠싱의 대체가 아니다. 윤산흠, 이상규와 함께 구성된 현재의 필승조는 각자 역할이 명확하다. 이민우는 그 구조의 정점에 놓인다. 김경문 감독이 "좋은 공을 가진 투수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불펜진 전체가 리듬을 찾고 있다는 의미다. 마무리의 안정이 선행되어야 앞선 이닝을 던지는 셋업맨들도 역할이 선명해진다. 이민우가 9회를 단단하게 닫는다면, 7·8회를 던지는 투수들의 부담도 줄어든다.

다음 4주가 관건이다. 이민우가 마무리로서 안착하려면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과 1사 이후 주자 있는 상황 처리 능력이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스트라이크 선취 비율이 높더라도 장타에 노출되는 순간 마무리의 신뢰도는 순식간에 흔들린다. 지금의 평균자책점 2.08은 14경기 샘플이다. 30경기를 지나도 이 수치가 3점대 초반 안팎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진짜 질문이다.
한화가 후반기에도 상위권 경쟁을 이어가려면 불펜의 안정은 필수 조건이다. 이민우는 지금 그 조건의 핵심에 서 있다. 그가 스스로 말한 대로, 마무리는 '똑같은 1이닝'이어야 한다. 그 단순함을 9월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숫자는 다시 한번 그의 편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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