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진보다 전기 모터가 더 좋은 자동차가 드디어 등장했다.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국내에 경차가 몇 대 없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레이는 특별하다. 일본 경차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슈퍼 하이트 왜건' 스타일이지만, 국내에는 이 한 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레이에서 그 동안 약점으로 거론되던 것이 바로 엔진이었다. 경차라는 한계로 인해 배기량이 제한되니, 출력도 출력이지만 토크가 약해 아무래도 경쾌한 주행은 힘들었다. 물론 연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레이의 연비는 경차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레이 EV에는 기대를 걸게 된다. 이전에도 레이 EV는 있었지만 그 때는 배터리 용량 때문에 100km도 주행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이 그 동안 배터리 기술이 발전했고, 저렴한 배터리를 찾으면서 가격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과 동시에 주행 거리를 늘렸다. 그렇다면 레이 EV는 과연 기존 엔진 레이와 어떻게 다를까? 동일한 자동차를 전기 모터가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는지, 그 변화는 긍정적인 것인지가 이번 시승의 핵심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레이 EV라고 해도 디자인은 일반 레이와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릴 전면에 있는 충전구 그리고 휠 디자인 정도. 그래서 외형만으로는 구분을 할 수 없다. 그에 비해 실내는 많이 달라졌는데, 풀 디지털 계기판과 깔끔하게 다듬은 에어컨 스위치 그리고 센터콘솔에서 사라진 변속기가 눈에 띈다. 변속기는 스티어링 칼럼 오른쪽으로 위치를 옮겼고, 위 아래로 돌려서 전진 또는 후진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시동 스위치도 여기에 같이 있다.
레이의 장점인 넓은 공간은 그대로 유지된다. 배터리가 들어가면서 바닥이 조금 올라오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제원을 살펴보니 전고가 10mm 높아졌다. 배터리가 들어간 만큼 지상고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레이는 앞좌석도 뒷좌석도 간격이 넓고, 심지어 뒷좌석을 뒤로 밀어 무릎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물론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좌석을 모두 접으면 차박이 가능한 공간도 나온다. V2L 기능은 없어도 에어컨이나 히터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아마 제일 궁금한 것은 주행 성능일 것이다. 레이 EV가 탑재하는 전기 모터는 보그워너에서 공급받은 것이고, 35.2kWh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다. 모터 출력은 약 87마력, 토크는 약 14.9kg-m으로 가솔린 엔진보다 출력도 토크도 높다. 엔진 버전보다 공차중량이 약 250kg 정도 무겁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쾌하기 가속한다. 적어도 엔진 버전에서 느껴졌던 답답한 가속의 느낌은 완전히 사라져 있다.
시동을 걸고 움직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약간의 소음(?)이다. 전기차는 저속주행 시 의무적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데, 레이 EV는 방음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그 소리가 실내에도 들려온다. 그래도 그 속도 구간만 지나면 기본적으로는 조용하다. 물론 주행 속도를 시속 80~90km 이상으로 올리면 바람 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마 레이를 가지고 이 정도로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음악을 듣는 게 더 좋아졌다.

분명히 이야기하자면, 레이 EV가 스포츠카처럼 신명나는 자동차는 아니다. 그래도 가속의 답답함이 사라지고 배터리가 바닥으로 깔리면서 안정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좋은 자동차라고 단언할 수 있다. 주행 거리가 짧다고 말할 이들은 존재하겠지만, 애초에 엔진 버전도 1회 주유로 먼 거리를 가지는 못한다. 그리고 경차는 어디까지나 도심에서 활약하는 것을 전제로 만드는 자동차다. 하루에 왕복 200km 이상을 무조건 달린다면, 다른 차를 구매하는 것이 맞다.

레이 EV는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고, 도심에서 사용한다면 실용성은 충분하다 못해 막대하다. 물론 고속충전이 생각보다 느리고, 겨울에는 주행거리가 짧아지겠지만 그걸 감안할 만큼 가격이 저렴하다. 이 가격이라면 장거리용 엔진차를 하나 사 두고 도심 주행 용도로 레이 EV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싶다. 단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중소 전기차 업체의 생존이다. 고속도로도 마음대로 달리는 레이 EV 가격이 기준이 되어버릴 것이니,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