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8년 일기 속 ‘냉면’이 과연 그 냉면일까? [.txt]

최재봉 기자 2025. 10.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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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헌·광고·기사로 본 냉면의 발전사
우리에게 익숙한 냉면이 나타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을 떠나 외국에 오래 머무는 이들이 그리워하는 음식을 꼽을 때 냉면은 거의 빠짐없이 포함되곤 한다. 한국적이라 할 맛과 정서가 냉면에 들어 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냉면을 먹었던 것일까. ‘냉면주의자’를 자처하는 한문학자 강명관 교수가 신작 ‘냉면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 나섰다.

“냉면은 국수틀을 눌러 뽑아 만든 메밀국수를 동치밋국에 말고 김치(무와 배추)를 얹고, 거기에 돼지고기 편육을 올려서 만든 차가운 국수다.”

이런 정의에 들어맞는 냉면이 하루아침에 겨레의 식탁에 오른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냉면이 나타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강 교수는 옛 문헌들과 일제강점기의 신문 기사 및 광고 같은 자료를 통해 냉면의 출현과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 냉면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곁들인다.

신라 진흥왕이 어느 여름날 북부 국경 지대로 순찰을 나갔다가 화전민의 음식인 메밀국수에 얼음을 띄워 먹은 게 냉면의 시초라는 설이 있지만, “이는 20세기 후반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필자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강 교수는 바로잡는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 사람들이 국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재료와 조리법, 형태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고려 말 이색의 시 ‘하일즉사’에 나오는 괴엽냉도(槐葉冷淘)라는 음식을 냉면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회화나무 잎사귀의 즙을 짜서 밀가루 반죽을 한 뒤 국수로 만들어 찬물에 헹군 이 음식은 두보의 시 ‘괴엽냉도’에 처음 보인다. 강 교수는 이 음식이 찬 국수이기는 하지만 냉면과 연결 지을 구체적 근거가 없는데다 고려 말 이후 괴엽냉도를 먹었다는 기록을 달리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냉면과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함흥냉면은 매운 비빔국수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20세기 전반 함경도에서 감자전분으로 만들어 먹던 농마국수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전해지면서 붙은 이름일 뿐, “조선 시대의 함경도 냉면은 평양냉면과 같은 유형의 동치밋국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였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조선 세종조의 조리서 ‘산가요록’에 국수 만드는 법이 등장하고 이후 여러 문헌에 변형되면서 전승된다. 이문건이 쓴 ‘묵재일기’ 1558년 4월20일자의 “낮잠을 자다 깨어 곧 냉면을 먹었더니 발바닥이 차가워졌다”는 문장이 한국 음식사에서 ‘냉면’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냉면이 지금 우리가 먹는 냉면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재료가 밀가루인지 메밀가루인지부터 불확실한 것이다. 장유가 17세기 초에 쓴 시 ‘자줏빛 장물에 말아 낸 냉면’에 다시 ‘냉면’이 나오지만, 이 역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냉면인지 아닌지는 불확실하다.

강 교수는 중국을 다녀온 사신단을 통해 메밀국수와 국수틀이 조선에 전해졌고, “사신단의 상인과 하인의 대다수가 평안도 사람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평안도에서 냉면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헤아린다. 유득공이 1773년 평양을 유람하고 쓴 시 ‘서경잡절’에 냉면 이야기가 나오고, 18세기 말 홍경모의 장편시 ‘의초’(擬招)의 주석에도 동치미 국물에 만 평안도 국수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이 자료들을 근거로 강 교수는 “18세기 중반 평안도 일대에서 동치밋국에 말아 낸 냉면이 이미 널리 알려진 음식이 되어 있었”다고 추정한다.

유득공에 앞서 1768년 황윤석이 서울에서 냉면을 먹었다는 기록이 그의 일기 ‘이재난고’에 나오는데, 이것이 동치밋국에 만 메밀국수였을지는 역시 불확실하다고 강 교수는 짚는다. 그러나 “거의 모든 학문적 주제를 다루고, 또 세상의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언급한” 정약용의 시들에 언급된 냉면은 우리가 아는 냉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냉면은 평안도에서 황해도로, 다시 경기도 혹은 서울로 확산되면서 점차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18세기 말 평양 성내를 그린 지도인 ‘기성전도’에 냉면을 파는 가게 ‘냉면가’(冷糆家)가 보이며, 19세기 초 서울 시내에도 냉면 가게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유원의 ‘임하필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가운 국물에 말아 먹는 평양냉면과 달리 함흥냉면은 매운 비빔국수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20세기 전반 함경도에서 감자전분으로 만들어 먹던 농마국수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전해지면서 붙은 이름일 뿐, “조선 시대의 함경도 냉면은 평양냉면과 같은 유형의 동치밋국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였음이 분명하다.” 이용기의 조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는 깻국냉면과 콩국냉면이 나오고 구한말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승희는 ‘밀국수냉면’의 조리법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지방의 막국수는 메밀국수를 김칫국물에 말아서 먹는다는 점에서 평양냉면과 같은 부류임에도 냉면으로 불리지 않는다. 냉면 세계의 오묘함과 까다로움을 알게 하는 사례들이다.

냉면의 역사 l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만8000원

책의 뒷부분은 일제강점기의 냉면점과 배달 노동자, 면옥노동조합 활동, 냉면 식중독, 냉면의 해외 진출 등 냉면을 둘러싼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할애된다. 냉면의 역사와 발전. 몰라도 먹는 데에 지장은 없겠지만, 알고 먹으면 그 고유의 맛을 한결 잘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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