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8일 출장에 1억4000만원"…유럽 간 공무원들 '돈 펑펑' [혈세 누수 탐지기⑯]
통일성 없고 불투명한 시스템에
공무원 외유성 해외 출장 계속
체계 강화해 관리감독 강화해야
최근 국정감사에서 체육계, 공기업 등에서 '혈세 낭비'가 파악돼 공분을 샀습니다. 한경 혈세누수탐지기(혈누탐)팀이 국정감사에서 비교적 관심을 덜 받은 공직 사회를 들여다봤더니 바로 심각한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최근에 지방 교육청 공무원들이 '사기 진작'이라는 취지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억을 넘기는 세금을 한 번에 쓴 것으로 확인되면서입니다.
지난해에는 새만금 잼버리 준비와 무관하게 관계 기관 공무원들이 영국 현지에서 손흥민 경기를 직관하거나 크루즈 여행 등을 다녀온 사례가 알려지면서 부적절한 공직사회의 단면이 도마 위에 올랐던 바 있습니다. 혈누탐팀이 왜 이런 사례가 반복되는지 그 원인을 들여다봤습니다.
외유성 출장 만연한 지역 사회
혈누탐팀이 24일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아래 각 학교와 지원청 등 직원 30명은 지난 9월 1~8일 5박 8일간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다녀오는 데 총 1억3590만원을 집행했습니다. 1인당 453만원씩 소요된 셈입니다.
여행 동기 및 배경 첫 줄에는 "교육선진국 탐방 연수기회 부여로 교육행정발전 유공 지방공무원의 사기 진작"이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정표에는 교육과 관련된 일정은 3개 정도고, 나머지는 모두 관광지로 구성됐습니다.
일비, 식비, 숙박비, 항공운임비 등은 규정에 맞게 썼다고야 하지만, '기타'가 굉장히 의아합니다. 1인당 102만원씩 총 3000만원이 넘게 기타로 들어갔는데, 각종 기관 입장료를 1인당 25만원, 현지가이드비(섭외 및 통역 포함)를 1인당 27만5000만원으로 책정한 것입니다. 인솔자 경비도 1인당 7만2134만원, 간식비를 포함한 기타 비용도 6만원 나왔습니다. 청 관계자는 대부분 관광 목적을 다녀온 여행에 숙식비가 아닌 기타 항목까지 지원한 점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기타로 잡은 것"이라면서 "더 신경 쓰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해당 보고서를 쓴 청 공무원분은 그나마 양반이십니다. 이렇게 금액까지 최대한 세부적으로 써 내려가신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금액은 가리고, 어디 다녀왔는지만 '대충' 쓰는 보고서가 허다합니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북교육청 학교 폭력 담당 직원들이 지난 7월 '호주의 학교폭력 예방 및 생활교육 정책 이해'라는 목적으로 호주 출장을 갔는데, 대부분 일정이 관광지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드러나 질타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지역 사회에 굉장히 만연합니다. 강원교육청도 9월 25일부터 10월 4일까지 '강원형 학교 시설' 혁신 방안 모색을 위한답시고 해외 출장은 다녀왔는데, 모차르트 생가 방문, 미술관 문화탐방 등 절반이 외유성이었습니다.
최근 가장 크게 파장이 일었던 것은 전북 부안군에서 지난해 열린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와 관련한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이었습니다. 당시 잼버리 파행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행사 개막에 앞서 관계 기관 공무원들이 100번에 달하는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외유성 출장으로 확인됐고, 일정표도 누락한 보고서도 대거 나왔습니다. 당시 부안군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다녀오면서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경기도 직관하고 왔답니다.
부안군은 그런 일을 겪고도 계속 외유성 출장을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리더 과정'이라면서 35명이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다녀왔습니다. 제1 목적은 '특색 있는 지역 자원을 활용한 관광정책 연구 및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한 현지 정책 조사'였고, 대부분 관광지 방문으로 일정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통일성 없고 불투명한 보고 시스템
이처럼 공무원 출장 보고서를 보다 보면 내용의 문제뿐 아니라 형식의 문제도 많이 확인됩니다. 대체로 다녀온 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 등을 담기보다는 마치 감상평 같다는 인상을 준 보고서도 있고, 어떤 보고서는 사후 보고서가 아니라 사전 계획 보고서만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혈누탐팀에게 한 지방 공무원은 "보고서가 엉망인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공무원은 "모두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체로 다녀온 사람 따로, 보고서 쓰는 사람 따로인 경우가 많다"며 "본인들이 다녀온 후 말단 후배한테 말그대로 '짬처리'시킨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러니까 아무 데서나 긁어서 보고서를 짜깁기하고, 대충 그럴싸하게 올리는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공무 출장을 빙자해 여행을 즐기고 오는 것도, 보고서를 엉망진창으로 쓰는 것도 그런 걸 허락하는 느슨한 규정 탓입니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여비 규정을 두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1조에 '국가공무원이 공무(公務)로 여행을 하는 경우에 지급하는 여비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공무의 원활한 수행과 국가 예산의 적정한 지출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무의 원할한', '적정한 지출' 등 모두 굉장히 모호한 표현처럼 느껴지시지 않나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규정입니다. 되는 것은 많지만, 무언가 안 된다고 제한하는 규정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판명이 날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가이드도 없습니다.
행전안전부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자체 공무원 국외출장 여비 편성 금액은 1506억으로 10년간 40% 늘었습니다. 시도교육청은 이 통계에서 포함되지 않아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얼마나 많은 세금이 해외여행에 쓰일지 제대로 파악할 길조차 없습니다. 한 지역 공무원은 "이런 일이 알려지면 원래 신경 쓰던 공무원들만 더 민감하게 챙기고 아닌 사람들은 계속 막장으로 할 뿐, 달라지는 게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보고 시스템 강화해야"
일각에서는 아예 공무원들의 해외출장 보고 시스템을 강화하면 될 일이라고 제안합니다. 아예 입력하는 시스템부터 모두 통일되게 만들고, 정책에 어떤 걸 녹이겠다든지 등 꼭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공무원이 담아야 할 것 같은 항목과 분량을 적시하고, 모든 공무원이 같은 구성으로 보고하게끔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누가 언제 어떻게 썼는지 단번에 중앙에서 통계로 확인할 수 있게끔 하는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갖추면 보다 면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공직 사회도 괜한 일로 지적받을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처벌 규정까지 더해진다면 이런 일은 아예 사라지지 않을까요.
한 지역사회 공무원은 "현재 어떤 보고서는 어떤 걸 포함하면 다른 보고서는 않는 등 양식이 없기 때문에 다 따로 놀고 불투명한 예산 처리가 많은 것"이라면서 "이런 걸로 욕먹는 걸로 굉장히 피곤해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불필요한 논란이 이따금 터지게 계속 두느니, 시스템 전반을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런 안 좋은 관행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손보지 않으면, 결국 공무원들의 자정 작용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상황이면 누가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데도 "아무 문제 없다"는 의식을 가진 공무원분들은 언제까지 관행을 빌미로 세금을 낭비하고 후배들에게 보고서 '짬처리'를 시키시겠습니까.
공무원이 되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서한답니다. 초심은 언제나 옳습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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