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덕후 어린이에서 농업회사법인의 대표로, 파이토리서치 김연준 대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첫 단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속담이다. 시작이 잘못되면 나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은 농사에서도 통한다. 작물을 처음 심을 때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모종, 일명 ‘무병묘’를 쓰면 병충해 예방은 물론 과실의 품질 향상, 수확량 증대까지 얻을 수 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 배양(식물의 조직·세포를 무균 상태에서 배양해 완전한 식물체로 재생하는 기술)’ 기술은 높은 진입장벽이다.
농업회사법인 파이토리서치 김연준(26) 대표는 이 문제를 특허받은 감염 차단 기술로 해결했다. 무균실, 방제복 같은 통제된 환경을 갖추지 않아도 ‘무병묘’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파이토리서치는 그렇게 무병묘 생산 스타트업이 됐다. 지속 가능한 종자 생태계를 꿈꾼다는 김 대표를 만나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들었다.
◇식물 덕후가 식물을 제대로 배웠을 때

어려서부터 ‘식물’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정확한 계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농촌에서 자란 것도 아니에요. 당장 떠오르는 식물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1~2학년쯤 양재꽃 시장에서 다육 식물을 샀던 날입니다. 양재 외에도 헌인릉·과천 등을 다니면서 식물을 구경하곤 했죠. 중학생 때부터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했는데요. 마침 농대 교수였던 이모부께서 앞으로 식문화가 다양해질 테니 허브 같은 특수 목적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가 되길 권하셨어요.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원농생명과학고에 진학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조직 배양’을 처음 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기 여주에 있는 할아버지 댁 농막 창고를 개조해 조직 배양 연구실을 만들었어요. 식물을 하나씩 정해서 직접 조직배양을 해보고, 필요한 조건들을 찾아내는 일이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는 것처럼 짜릿했죠.”

조직 배양이 바이러스 없는 모종, 일명 ‘무병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식물은 사람처럼 자가치유능력이 없어요. 바이러스에 걸리면 완전히 점령 당해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곧 죽고 말죠. 대신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보다 식물이 자라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식물이라도 이파리 끝(생장점)엔 바이러스가 없어요. 그 끝을 절취해 복제하면 무병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고등학교 졸업 때쯤 식물 마니아 사이에서 관상용으로 유명한 ‘무늬 바나나’를 조직 배양해 3000만원을 번 적이 있어요. 수천 주를 비행기로 실어 네덜란드로 수출까지 했죠. 이런 경험이 ‘창업’의 꿈을 키우게 만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더 배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그렇게 2019년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농민과 상생하는 길

3학년 1학기부터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하고 스타트업 관련 책을 읽으며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기업명은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이토(Phyto)’에 ‘리서치(Research, 연구)’를 합쳐 만들었어요. 중소벤처기업부의 ‘생애최초 청년 창업’ 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전국의 논밭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농민들은 조직 배양 전용 ‘컨테이너’보다 ‘무병묘'에 더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잎이나 줄기·뿌리를 잘라 개체를 늘리는 ‘영양 번식’이 보편적인데요. 이 과정에서 공기·토양에 있는 수많은 바이러스가 대를 물려 퍼지게 됩니다. 무병묘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과일 생산량은 평균 30% 늘고, 고구마 수확량은 최대 2배까지 증가할 수 있어요. 농가 소득 확대를 위해 작물 별 무병묘를 보급하는 일이 우선순위에 올랐습니다.”

관련 기술을 개발해 특허까지 등록했다. “조직 배양을 할 때 배지(세포·식물 등을 증식시키기 위한 액체·젤 형태의 영양원)를 무균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배양실에 들어갈 때 하얀 무균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써야 할 정도로 민감하죠. 저희 기술의 집약체는 배지에 넣는 첨가물, 일명 ‘PDS’라는 물질입니다. 배지 1L에 PDS를 1mL만 넣어도 식물에겐 해를 주지 않으면서 세균·곰팡이를 원천적으로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무실이나 교실, 심지어는 야외에서도 조직 배양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2022년부터는 신품종 개발로 발을 넓혔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 과일인 ‘딸기’를 먼저 정복하기로 했습니다. 구할 수 있는 딸기의 품종을 죄다 구해 조직 배양을 하면서 돌연변이를 유도했어요. 다양한 색상과 향, 병저항성을 얻기 위해 전 직원이 매달렸습니다. 최종적으로 3가지 색의 딸기 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어요. 2026년에 국립종자원에 품종으로 등록할 계획입니다.”
무병묘, 신품종까지 개발했지만 농민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딸기의 경우 일반 모종은 개당 800~1000원인데 무병묘는 최대 1500원으로 비용 차이가 큰데요. 좋은 종자를 심으면 병충해 예방은 물론이고 딸기의 품질, 전체 수확량 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고 설득합니다. 농가의 목소리를 많이 들으려고도 합니다. 농민 분들이 재배 분야에서는 잔뼈가 굵은 분들이기 때문에 배울 점도 많아요. 좋은 기술을 아무리 개발해 봤자 농민과 상생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죠.”
◇K-딸기 모종을 수출하는 날까지

파이토리서치는 2024년 7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25년 4월에는 경북 상주의 스마트팜 밸리에 국내 최초 조직 배양 육묘 컨테이너를 설치하기도 했다. “전체 육묘장은 1652㎡(약 500평) 면적으로, 육묘 20만주를 동시에 키울 수 있는 규모입니다. 최근엔 상장사인 엑셀세라퓨틱스와 업무 협약을 맺고 고기능성 식물 소재를 함께 개발하고 있어요. 식물 유래 성분을 활용해 기능성 화장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죠.”
딸기 계의 제스프리를 꿈꾼다. “제스프리는 뉴질랜드의 키위 브랜드인데요. 뉴질랜드에서 육종·육묘해 유럽·북미·아시아 등 전역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산해 유통되는 키위의 규모가 연간 2조원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의 딸기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파이토리서치가 종자 육종과 종묘 공급, 마케팅, 유통을 담당하고 농민들은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려고 합니다. 딸기 수출국에서 딸기 종자 수출국이 되는 그날까지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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