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규 "부모님 대신 빚 갚아 힘들 때마다 한 이 행동"

스무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우리 집은 어마어마한 채무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나의 첫 개런티는 자연스럽게 빚 갚는 데에 쓰였다. 그 뒤로도 나는 돈을 버는 족족 채무를 변제하기 바빴다.

그러는 동안 억울하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내가 더 잘 된다면, 소위 뜨는 연예인이 된다면 빚도 해결할 수 있고 나도 사고 싶은 걸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만 점점 더 커졌을 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혼자 좋아하다가도 금세 팍팍한 현실이 피부로 다가와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가끔은 큰 빚을 진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왜 내가 참고 견뎌야만 하는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느 순간 울컥, 마음이 힘들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갖고 싶은 물건들을 떠올렸다.


‘나이키 에어맥스 97이 새로 나왔던데. 깔별로 다 사고 싶다! 거평프레야 6층에서 보니깐 리바이스 엔지니어드진이 새로 나왔던데 그것도 사고 싶고….

아! 정말 100만 원어치만 쇼핑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내가 갖고 싶은 것 다 사고도 돈이 남겠지. 아… 정말 너무 좋겠다….’

수입이 있지만 스스로를 위해서 쓸 수는 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위안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왜인지, 이상하게 ‘100만 원’이라는 단위에 유독 집착을 했다.무언가 사고 싶을 때면 무조건 100만 원이 자동으로 머릿 속에 입력됐는데, 딱 그만큼만 쇼핑에 쓸 수 있다면 나의 물욕이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캐스팅 디렉터가 내게 드라마 출연을 제의했다. 평소 나를 눈여겨봤다면서 아주 작은 역할이긴 하지만 내게 딱 어울리는 역할이니 본인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출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조만간 내가 출연한 영화가 개봉할 텐데 굳이 이렇게 작은 역할로 이미지만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정말 돈이 없었다.

100만 원을 향한 절실함이 통했던 모양인지, 아주 작은 역할로 출연했던 《옥탑방 고양이》로 나는 소위 말하는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성공이었기에 스스로도 얼떨떨했다. 마침 《바람난 가족》도 드라마 종영 직후 극장에 걸리게 되었다.

유명세를 얻는 기회가 연이어 주어졌고, 덕분에 집안의 빚을 갚고도 오로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여윳돈까지 생길 만큼 사정이 나아졌다.

나는 큰맘 먹고 은행으로 가 100만 원을 인출했다. 그러고는 곧장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구찌 매장에 들어가서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벨트를 하나 구매했다. 60만 원이 금세 사라졌다. 다음에는 4층으로 올라가 아르마니익스체인지에서 바지 하나와 반팔 티셔츠를 구입했다. 만 원짜리 100장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태어나서 써본 가장 큰 단위의 돈을 가장 빠르게 써버린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근처 아파트 단지 내 한적한 곳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 안정을 취하려했던 나는 한쪽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힘들 때마다 위안을 주었던 100만 원의 꿈이 마침내 이뤄져서 기뻐서였을까? 아니면 막상 이루고 나니 너무 허무해서였을까?

그렇게 한참을 선 채로 울었다.


해야 할 일도 책임도 많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 싶어서

자아, 가족, 어른. 봉태규의 관심사는 한결같다. 스스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일. 배우라는 타이틀로만 살지 않고, 세상과 꾸준히 소통하는 일. 한참 캐스팅이 되지 않아 일을 오래 쉬었을 때, 봉태규는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여전히 노력하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는 봉태규는 자꾸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 채널예스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