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전 행정관이 ‘고백’한 ‘고발사주’ 정황 [언론 장악 카르텔 추적⑦]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 기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 지명은 그 정점에 있습니다. 〈시사IN〉과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5개 언론사는 각사 울타리를 넘어 진행하는 ‘진실(진짜 저널리즘 실천) 프로젝트’ 첫 기획으로, 현 정부의 언론 장악 실태를 추적 보도하는 ‘언론 장악 카르텔’ 시리즈를 함께 취재, 보도합니다.
대통령실 소속 선임행정관이 보수 시민단체로 하여금 특정 언론사와 언론인을 고발하도록 사주한 정황이 확인됐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과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소속 이명수 기자 사이 전화 통화 내용이 담긴 5시간30분 분량의 녹음파일에서다. 지난해 특정 시민단체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 비판적인 언론사· 언론인 등을 고발했는데, 녹음파일에서 김 전 행정관은 자신이 대통령실 재직 시절 시민단체에 고발을 지시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 전 행정관이 이 녹취파일에서 김건희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다고 말한 내용이 언론 보도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김 전 행정관 본인이 보수 시민단체를 부추겨 서울의소리 등을 고발하도록 했다고 밝힌 대목은 당시 다뤄지지 않았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야 니네 백은종(서울의소리 대표)이 하고 있지, 그 서울의소리 니네 고발하고 막 이런 거 있잖아 시민단체…. 국힘(국민의힘)에서, 국힘에서 한 것보다도 여기 시민단체에서 한 게 몇 개 있어.”
이명수 기자: “그렇죠. 예 알고 있어요.”
김대남 전 선임행정관: “그거 다, 그거 다 내가 한 거야.”
이명수 기자: “형님이?”
김대남 전 선임행정관: “야, 그러니까 봐라. 내가 용산에 있을 때 너 우리 새민연이라고 그 진짜 정말 솔직히 우리 보수 우파 플랫폼인데, 신문에도 광고도 많이 나가는데. 그렇게 그 난리를 치면서 그렇게 고발도 해주고 백은종이도 고발해야지, 그다음에 또 여사(김건희 여사) 난리 쳤던 놈들도 내가 몇 군데를 고발을 해줬는데, 그런 나를 부수고 이렇게 밀어내?”
2024년 4월3일 김대남 전 선임행정관과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전화 통화 녹음파일 중 일부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이날 이명수 기자와 30분간 통화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할 당시 특정 시민단체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비판적인 언론인과 언론사 등에 대해 고발을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공동취재팀이 녹음파일 속 김대남 전 행정관의 발언을 검증한 결과, 그의 발언은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김대남 전 행정관이 녹취록 속에서 언급한 단체는 사단법인 ‘새로운민심 새민연(새민연)’이다. 새민연은 2022년 7월9일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9월22일 행정안전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았다. 새민연 이사로 활동한 관계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소개 글을 보면, 이 단체는 2021년 4월 ‘윤석열정권교체 행동연대’에서 출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윤석열 충북지지연대’로 활동 중 해산했다가, 남은 회원들이 ‘민주법치사수 국민연합’으로 운영하고, 이후 전국 조직이 연합해 새민연으로 출범했다.
김대남 전 행정관과 그가 소속된 대통령실은 새민연을 각별히 챙겨왔다. 2022년 11월17일 새민연은 대통령실 인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는데, 김대남 전 행정관과 함께 현재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인 강승규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축하 화환을 보냈고, 강승규 당시 수석은 축사를 했다. 그 밖에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 전 행정관은 대통령실 재직 당시부터 올해 2월까지 새민연 지역 지회 창립대회, 토론회 등에 꾸준히 참석했다.
김대남 전 비서관이 녹음파일에서 “내가 (새민연을 통해) 한 거야”라고 밝힌 고발에 대해, 서울의소리 측은 “실제 새민연에서 백은종 대표를 고발했다”라며 “다른 고발 건이 많고 고발인도 가려져 있어 새민연 고발과 관련해 구체적인 날짜와 내용을 확인 중이다”라고 말했다.
새민연의 다른 언론사 고발 건도 확인된다. 이 단체는 2022년 9월26일 MBC와 박성제 당시 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새민연은 MBC의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보도를 문제 삼았다. 단체는 이날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작, 왜곡 보도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허위, 조작, 가짜뉴스를 일삼는 MBC는 해체하라, 대통령의 사적인 대화를 방송에 내보내 국가 망신을 시킨 기자들을 퇴출하라”고 주장하며 MBC와 박 당시 사장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 전 행정관의 “(새민연이) 그 난리를 치면서 고발도 해주고” 발언과 관련해선 그와 새민연을 연결 고리로 한 ‘관제데모’ 의혹도 함께 제기된다. 새민연은 고발 사흘 전인 9월23일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MBC 정문 앞에서 규탄 대회를 열었다. 고발 당일부터 한 달여간은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실 매국 MBC 기자를 즉각 퇴출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후 고발장 제출 당시 참여한 새민연 관계자는 같은 해 11월24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서울경찰청에서 2시간 동안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국가 발전과 사회 통합 걸림돌이 되고 있는 MBC!!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시민사회수석실의 1인자와 2인자
새민연이 ‘신문에도 광고가 많이 나간다’는 김 전 행정관의 주장대로, 이 단체는 실제 〈조선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등에 광고를 다수 게재했다. 공동취재팀이 새민연 발기인 총회 이후부터 최근까지 앞서 언급된 신문사 지면 광고를 전수조사한 결과, 2022년 8월10일자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새민연이 주최한 광복절 77주년 기념 행사 광고가, 12월9일자 〈서울신문〉에는 “윤석열 정부는 민노총과 화물연대의 불법행위에 강력하게 대처하라”는 내용과 함께 새민연 회원 모집 광고가 실렸다. 2023년 5월10일에는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같은 해 9월13일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는 이상훈 예비역 육군대장(27대 국방부 장관) 애도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새민연의 이름으로 게재됐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 조직위원회에서 조직국장으로 활동했다. 캠프 소속 전국 각 분야별 특별위원회 조직 업무를 김 전 행정관이 책임졌다. 2021년 출범한 윤석열 국민캠프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가 2022년 초 선거대책본부(선대본)로 재편된 이후에도 김 전 행정관은 조직국장에 그대로 재지명됐다.
윤석열 캠프 선대위 조직총괄본부 부본부장은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강 의원도 선대본으로 재편된 직후 캠프에 그대로 남아 조직본부 특별위원회 조직강화단장으로 보임됐다. 윤석열 당시 후보 캠프 조직본부는 꾸준히 ‘강승규-김대남 투톱 체제’로 운영된 셈이다. 이 체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에서도 이어졌다. 강승규 의원은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으로 발탁됐고, 김대남 전 행정관은 시민사회수석실 산하 시민소통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사실상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1인자와 2인자로 통했다.
강승규 의원도 지난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재직 시절 시민단체에 집회를 요청한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이 공개돼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2023년 9월5일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가 공개한 강승규 의원과 A씨의 전화 통화에서다. 통화 시점은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비속어 논란’이 확산된 시점이었다. 통화에서 당시 대통령실 수석으로 근무 중이던 강승규 의원은 A씨에게 “MBC 저놈들 어떻게 해야 돼요? 저거 저거 완전히···”라고 말했다. A씨가 “MBC 앞에 가서 우파 시민들 총동원해가지고 시위해야 해요”라고 주장하자, 강 의원은 “그래요. 주변에 좀 그렇게 해주세요. 주변에 그렇게 좀 전하세요”라고 답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강 의원은 이에 대해 “지인이 물어본 것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강승규 의원의 2022년 ‘관제데모 사주’ 정황과 김대남의 이번 ‘고발사주’ 정황을 종합하면, 대통령실 소속 관계자들이 사실상 같은 목적으로, 시민 여론이라는 외피를 쓰는 부적절한 방식을 동원해 ‘비판 언론 죽이기’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진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대통령실 입성 전, 2022년 6월 강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마했다. 올해 4월 총선에서도 낙천했다. 2023년 10월20일 대통령실에 사직서를 내고 일찌감치 경기 용인갑 출마를 준비했으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2024년 2월26일 이원모 대통령실 전 비서관을 이 지역에 우선 추천(전략공천)했다. 김 전 행정관은 이후 이원모 전 비서관의 선거를 지원했다. 2024년 8월 김 전 행정관은 준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인 서울보증보험의 상근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
“이원모 따까리 노릇 하고 있다”
김 전 행정관이 시민단체에 고발을 지시한 발언이 담긴 녹음파일 전체를 들어보면, 이날 전화 통화는 “어떻게 지내냐”는 이명수 기자의 안부 인사에 김 전 행정관이 “마지못해서 여기서 이원모 따까리 노릇 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라는 대답으로 시작한다. 이후 김 전 행정관은 계속해서 공천 실패에 대한 강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내비쳤다. 김 전 행정관은 이명수 기자의 “(이원모 후보자) 지지율이 안 나와서 어떡하느냐”라는 질문에 “지지율이 안 나올 수밖에 없지. 이게 되겠어? 이렇게 해가지고”라며 “구조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김 전 행정관의 ‘구조가 잘못됐다’는 발언은 공천을 주지 않은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을 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행정관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용인갑에 출마한 이상식 당시 후보자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상식이가 경찰 출신 아니냐. 걔는 맨날 여기 2~3년 동안 정권 심판을 부르짖고 저 난리를 쳤다. 근데 이제 내가 6개월 전에 나와갖고 얘가 정권 심판을 떠들 동안에 내가 오자마자 무슨 도로를 닦아주니, 집안에 뭘 해주니, 다리를 내가 만들어주니, 수변 구역에 환경부 가서 해제해주니, 내 막말로 도시계획 전공자잖아. 그러니까 이런 기술자를 여기 우리 지역에서 필요하지 무슨 정권교체는 저기 서울이나 다른 데 가서 얘기해 이럴 거 아니야. 그게 먹혔단 말이야. 나는 이상식이하고 할 때 내가 압도적으로 이겼어. 안 되거든 게임이. 그리고 또 비주얼도 내가 압도적으로 항상 저걸 하니까.”
김 전 행정관은 이어 이원모 후보자가 등장하면서부터 판세가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원모가 딱 오니까. 그다음부터는 이게 과가 검사 출신 아니야 이원모. 그러니까 이원모하고 이상식이하고 딱 비교하니까 검경 프레임이 딱 되자마자 그냥 정권심판론 말발이 먹히는 거지. 그동안 나이가 40대 중반에 뭔 준비를 했겠나? 지금 준비 안 돼 있다가 이제 이렇게 딱 된 거지. 대통령 지지율이라도 있으면 거기에 편승해서 좀 달려갈 수 있지. 근데 그것도 안 되고. 그래서 지금 나는 그냥 이게 또 여기 이원모 마누라가 또 청 여사님(김건희 여사)하고 가깝지 않아? 그래서 여기 눈치 봐가면서 여기서 지금 저거 하고 있어. 어떻게든 어디 공기업이라도 들어가려고 잘 보이고 있지.”
앞서의 ‘새민연 고발 지시’는 이 대화와 연결되지 않고 갑작스럽게 나왔다. 경기 용인갑 지역 선거 판세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김대남 전 행정관이 이명수 기자에게 “지금 이럴 때 네 몸값을 키워, (총선 관련 보도 안 하고) 왜 가만히 있어?”라고 묻자, 이 기자가 “제가 보도만 하면 고발하고 조사받으러 가야 하고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했다”라고 대답했다. 김 전 행정관의 “그거(고발) 다 내가 한 거야”라는 앞서 설명한 발언은 그 직후 나왔다. 이명수 기자가 묻지 않았는데도 김대남 전 행정관이 먼저 ‘고백’하듯 말을 꺼낸 것이다. 이후 둘의 대화는 이명수 기자가 “우파 쪽 유튜버들이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 연락이 왔다”라고 말하면서 다른 화제로 전환됐다.
김대남 전 행정관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가 대기업 자금을 동원해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도록 하고 ‘관제 데모’를 비롯해 야당 정치인 낙선운동을 하도록 배후 조종했다는 의혹,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과도 겹쳐진다. 검찰은 2017년 11월6일 단체를 지원한 것으로 의심받은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허 전 행정관은 이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아 2019년 10월1일 만기 출소했다. 허 전 행정관이 근무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은 김대남 전 행정관이 근무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산하 시민소통비서관실의 전신이다.
9월23일 서울의소리가 김대남 전 행정관 녹음파일 공개를 예고하자, 김 전 행정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사적인 통화에서 넋두리를 하며 실제와 다른 과장된 표현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공동취재팀은 9월25일 김대남 전 행정관, 김흥수 새민연 부회장(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의 추가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실에도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언론 장악 공동취재단: 문상현(시사IN)·박종화·연다혜(이상 뉴스타파)·박재령(미디어오늘)·신상호(오마이뉴스)·최성진(한겨레) 기자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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