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보기에 부끄러워"·"단순 유행일 뿐" 젊은 층 의견도 엇갈려
"여기가 도쿄인지 서울인지 모르겠네요."

서울 번화가에 나가면 어렵지 않게 일본식 술집 ‘이자카야’ 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샌가 국내 외식 분야를 휩쓴 일본 음식들은 이제 그럴싸한 외관까지 갖춰 거리 곳곳을 점령했습니다.
이자카야는 나무탁자를 두고 서서 간단히 마시는 술집으로, 일제강점기 등장한 식민지 문화입니다. 당시 분들은 어묵과 단무지를 주는 술집을 이자카야라 불렀다고 합니다. 1960년대까지 잔존하다 쥐도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던 이곳은 , 최근 불어닥친 ‘일본감성’ 열풍으로 다시 강력하게 부활했습니다.

20~30대들이 자주 방문하는 서울 합정, 강남, 종로 등의 번화가에 들어서면 ‘한 집 건너 한집’ 꼴로 이자카야와 일식집이 보입니다. 일본어 간판을 내건 곳은 물론 아예 3~4층 규모의 일본식 목조 건물을 이자카야로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에 8,000곳이 채 되지 않았던 일식전문점은 2023년 20,000곳으로 2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광복절 당일인 15일 서울 최대 상권 중 하나인 서울 성수동. 이곳에서도 최근 가장 '핫플'로 꼽히는 젊은이들의 거리인 '전포 사잇길'. 알록달록한 색깔, 큼직한 일본어, 사진과 포스터를 활용한 디자인 등 일본 간판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술집과 밥집이 즐비했습니다.
한국어는 보기 힘든 일본풍 가게

이들 가게의 특징은 일본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닙니다. 간판에서 한국어를 완전히 지우고 인테리어는 일본 현지 느낌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 과거 일식집이라고 상호를 달고 있어도 상당히 현지화된 한국스타일 일식을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면, 요즘은 분위기도 맛도 일본 현지와 거의 차이가 없는 본격적인 가게들이 주류가 된 느낌입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점원들은 귀청이 떨어져라 ‘이럇사이마셰(어서오세요)’를 외칩니다. 메뉴판을 펼치면 어묵탕이 아닌 ‘오뎅탕’, 회 대신 ‘사시미’, 정종이 아닌 ‘사케’가 자리합니다. 기본안주 대신 ‘스키다시’, 일식 코스요리를 가리키는 ‘오마카세’, 튀김 덮밥인 ‘텐동’ 등의 일본어가 난무합니다. 곳곳에 짙게 물든 왜색으로 이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실제로 2014년에 8,000곳이 채 되지 않았던 일식전문점은 2023년 20,000곳으로 2배이상 증가해있었습니다.
부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문제는 부산 최대 번화가이자 유행을 선도하는 MZ가 가장 많이 찾는 서면과 광안리 상권에 일본풍 가게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부산 고유의 문화가 점차 희미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엇갈린 누리꾼 반응

일본풍 가게를 적극적으로 찾는 젊은 층 의견은 다소 엇갈렸습니다.
김정식(31)씨는 "외국에 가지 않아도 일본의 문화와 음식을 쉽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며 "문화를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유행 수준인데 이것을 억지로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김희정(21)씨는 "가게마다 각각의 콘셉트나 매력이 있는 건 좋지만, 일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일본풍 가게가 과도하게 자주 보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과거 역사적 관계를 돌이켜봐도 하필 일본 문화에 이 정도로 열광해야 하나 싶다"며 "특히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산을 대표하는 상권인 서면이나 광안리를 찾아 마치 일본을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한 전문가는 일본의 문화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지만 단순히 유행으로 소비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아무리 한일관계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본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도 많다"면서 "일본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소비자 입장에서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과잉된 측면이 있고, 업주 입장에서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문화는 한국인의 일상에 파고들었습니다. 이참에 한국 내에 불고 있는 일본풍을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한편에서는 일본 불매운동과 반일 여론의 영향으로 일본 문화 소비를 꺼리게 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자카야 안 가요"… '일본 문화'도 불매하던 사람들의 현재

2019년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맞물려 이자카야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거리에는 일본 간판 위로 ‘저희 점포는 대한민국을 지지합니다’, ‘국내산 재료 사용’, ‘한국인 점원만 일하는 곳’ 등을 써 붙인 진풍경이 연출됐습니다. 불매운동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지만, 지금껏 일본 문화를 팔아왔으면서 과연 일본과 무관하다고 외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일본과 정치·역사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민 통치를 겪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공유해왔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죄 없는 문화·예술은 과거사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나친 반일정서’라거나 ‘그냥 좀 먹으면 어때’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자카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식민지의 비애는 어떠했는지, 사라졌던 주점이 다시금 생겨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념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쿨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이 번쩍이는 이자카야 거리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반발임을 기억합시다. 불매운동의 영역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지만, 역사와 정치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순 없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이자카야 거리를 형성하고 즐긴 것이 정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 분위기를 흉내 내는 것을 넘어, 한국만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