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지고 있다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정의길 기자 2024. 10. 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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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시야흐 지역의 한 건물에서 4일(현지시각)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한국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신화는 여전하다. 불량한 거인 골리앗에 맞서는 ‘정의롭고 강력한 다윗’이라는 프레임의 신화다.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 국민들은 국외에 있다가도 귀국해 참전하는데, 아랍 국가 국민들은 도망가기 바쁘다는 얘기를 학창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정의롭고 강력한 다윗’ 프레임에서 ‘정의롭다’는 수식어는 이제 많이 희석됐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쫓고 건국됐고, 지금도 그 주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현실을 한국에서도 눈감을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력’하다는 신화는 여전하다. 인구가 몇십배 되는 주변 국가와 전쟁할 때마다 승리하니 우리도 이스라엘을 배워야 한다며 여전히 경외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방공망에 대한 찬탄이다. 국제 문제를 다루는 기자 생활을 제법 오래했는데, 이스라엘이 전쟁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기사가 있다. 아이언돔을 포함한 다중 방공망이 철통 방어망이라는 소개 기사이다. 이번 가자전쟁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스라엘 방공망은 이번에 많이 뚫렸다.

가자전쟁을 촉발한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때 수천발의 로켓포가 동시에 발사되자, 이스라엘 방공망은 무력했다. 지난 4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 때도 뚫렸다. 이란이 공격한다고 주변 국가에 미리 알려줬고, 미군과 요르단이 합세해 요격했는데도, 몇발의 미사일이 군 기지 주변에 떨어졌다. 지난 1일 이란이 주변국에 알리지 않고 180발의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을 때에는 최소 32발의 미사일이 이스라엘 군 기지 등을 타격했다. 이스라엘은 모두 요격했다며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으나, 거짓말이다.

F-35 스텔스 전투기가 있어서 가장 중요한 네바팀 공군 기지의 격납고는 파괴됐다. 그 유명한 모사드 본부 인근도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중동의 미군이 요격에 가담했는데도 이런 피해를 입었다. 지난 12일에는 헤즈볼라의 저성능 드론으로 하이파 일대가 공격받아서, 이스라엘 병사 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과 이란의 재반격이 오고간다면, 이스라엘의 방공망이 견뎌낼지 의문이다.

이란 핵 시설이나 석유 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이스라엘이 이란 군 시설을 보복 공격하겠다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밝혔다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종말단계고고도지역방어(사드) 시스템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보복 공격할 때 이스라엘의 안보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서 나온 대책들이다.

지상전에서도 마찬가지다. 10월 들어서 시작된 헤즈볼라의 지상전은 레바논 남부에서 교착상태다. 앞서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와 베이루트 등에 대대적인 폭격과 공습을 가해서 제2의 가자로 만들었다. 레바논 국민 6명 중 1명인 100만명이 난민이 되고 12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러고 나서,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가 지상전에 들어가 첫 교전에서 이스라엘군 8명이 전사했다. 헤즈볼라는 날마다 로켓포와 드론으로 이스라엘 북부를 때리고 있다. 애초부터 군사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능력을 결코 파괴할 수 없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국경을 넘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몇주 내로 레바논 지상전을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그럴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내세웠던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척결과 이스라엘 북부 주민의 안전한 귀가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는 거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의 군사교리는 ‘적의 영토에서 단기전으로 결정적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신화는 이스라엘이 1978년 처음으로 레바논 침공을 시작한 이후 깨졌다. 1982년과 2006년 레바논 전쟁은 결정적 승리나 목표 달성 없이 장기화됐다. 특히 2006년 레바논 전쟁은 이스라엘 정부의 조사위원회에서도 ‘전략적 실패’로 규정했다.

가자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을 1년 이상 끌고 있고, 다중 전선에 처하고 있다. 이제는 유엔평화군도 공격한다. 중동 분쟁은 결국 정치적 해결이 나와야 한다. 이스라엘은 지금 정치적 해결책 없이 군사력에만 기대고 있다. 무엇보다도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정부의 권력 유지를 위해 확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전쟁은 이길 수가 없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는 말이다. 국제사회에서 비등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을 보면,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에서 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각) 레바논 남부 마르자윤에서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마르자윤/로이터 연합뉴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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