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히 휴머니스트다.”

영화 ‘군체’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이 뜻밖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했다. 작품 속 인간 군상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관계에 집착하며, 끝내 무너진다. 인간을 흉내 내는 좀비들은 점점 더 기괴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집단은 개별성을 삼켜버린다.
공개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연상호 감독은 인간을 얼마나 싫어하는 걸까’라는 반응까지 나왔지만, 정작 그는 인간의 어둠과 이기심, 열등감까지도 ‘사랑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일찌감치 주목받았고, 지난 21일 국내 개봉 후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한번 좀비 장르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인간을 모방하는 존재의 기괴함과 집단 속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불안을 결합했다. 감독에게 ‘군체’는 단순한 좀비 영화가 아니다.
AI와 집단지성, 보편성의 합의 속에서 점점 무력해지는 개별성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간이라는 존재를 끝까지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연상호 감독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보니 인간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어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인간을 싫어한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심이 많은 것”이라며 가장 흥미를 느끼는 대상이 ‘인간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좀비 장르를 택하는 이유가 있나.
“좀비 영화는 그때그때 다르다. 심지어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안에서도 설정이 조금씩 다르다. 그게 참 대단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현대적인 형태의 좀비를 처음 보여줬는데, 당시에는 ‘좀비’라고 지칭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존재가 결국 당대 사회가 가진 잠재적 공포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됐다. 그게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로 변주되는 게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다.
좀비라는 존재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것 같기도 하다. 로메로 감독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만든 존재를 좀비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후 다른 사람들이 좀비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좀비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만약 처음부터 규정이 명확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좀비 영화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거다. 예를 들어 ‘에이리언’ 같은 경우는 저작권이 있는 명확한 존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변형해서 만들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좀비는 어떤 형상화된 존재를 다 좀비라고 부르다 보니 정말 다양한 방식의 장르로 확장될 수 있었다.
결국 좀비는 그 시대 사회가 가진 잠재적 불안과 공포를 형상화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도 자연스럽게 표현이 가능하고, 그런 점이 좀비 장르를 계속 재미있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좀비와 AI, 집단지성을 연결한 것도 흥미로웠다. 어디서 출발했나.
“최규석 작가와 ‘지옥’ 시즌1을 만들 때부터 당대 사회가 가진 집단과 소수의 갈등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는데, 끝까지 가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당시에는 집단성이라는 걸 광기 정도로 표현했는데, 그게 너무 뭉뚱그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원천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다가 AI 이야기가 나왔다. AI의 특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능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결국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보편적인 사고의 총합 같은 것 말이다. 그 지점까지 가다 보니까 오히려 명확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집단적 사고의 총합 앞에서는 개별성이 굉장히 무력해진다는 거다.
집단지성과 싸울 수 있는 개별성은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 다음 사람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무언가와 계속 싸워야 하다 보니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개별성이 점점 소외되는 사회가 돼가는 거다. 우리가 집단주의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의 원천도 결국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들을 ‘지옥’ 시즌1과 2를 거치며 계속해 왔고, ‘군체’를 통해 조금 더 명확해진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걸 보다 직관적인 액션영화 형태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좀비라는 장르로 이어졌다.”

-공개 후 관객들 사이에서 ‘도대체 연상호 감독은 인간을 얼마나 싫어하는 건가’라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인간 군상이 상당히 냉소적으로 그려진다. 감독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 의미인가.
“나는 완전히 휴머니스트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보니까 인간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랑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어둠이나 이기심, 열등감 같은 것 역시 굉장히 사랑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둘 키우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귀여운 이유 역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그러다 보니 그런 부분들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작업을 하는 측면도 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오히려 인간을 싫어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부분들이 인간의 실존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영향을 받았던 실존주의 역시 인간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노력하지 않았나. 프란츠 카프카 같은 작가들의 작업을 봐도 결국 인간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느껴진다. 나 역시 인간을 정말 애정한다.”
-‘부산행’이 횡적인 이동 구조였다면, ‘군체’는 빌딩이라는 수직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대비되는 공간적 설정을 의도한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부산행’을 공포영화로만 봤을 때, 그 작품의 공포를 움직이는 엔진은 결국 딸을 지키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차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군체’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오히려 ‘지옥’의 액션판에 가까운 느낌이 강하다. 물론 공간적인 차이도 있다. ‘부산행’은 달리는 기차라는 설정이지만 안과 밖의 상황이 사실상 같다. 부산이라는 목적지만 다를 뿐, 바깥에도 좀비가 있고 기차 안에도 좀비가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군체’는 빌딩 안 자체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돼 있는 설정이다. 그런 점에서 공간의 구조나 공포가 작동하는 방식 역시 달라졌던 것 같다.”
-좀비가 서로를 업고 이동하는 방식도 굉장히 기괴하게 느껴졌다. 인간을 흉내 내지만 어딘가 어긋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보다 보면 인간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데도, 가끔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손가락이 여섯 개 달린 이미지 같은 것들이다. 엄청나게 인간을 흉내 내는데도 절대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방식의 오류가 발생하는 거다.
저는 거기에서 굉장한 불쾌감이나 거리감을 느낀다. 그런 부분을 좀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이라면 절대 학습하지 않을 행동들을 오히려 학습하는 존재들로 만들고 싶었던 거다. 사람을 업고 이동하는 방식 역시 그런 맥락 안에 있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이건 AI를 형상화한 존재구나’라고 느끼는 이유 역시 결국 그런 지점 때문인 것 같다.”

-속편이나 세계관 확장 가능성은.
“지금 당장 속편을 만들 생각은 없다. 다만 예전부터 영화라는 매체가 영화 안에서 끝나는 게 늘 아쉽다는 생각은 했다. 이걸 다른 형태로 확장해 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게임으로 이어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용상으로는 영화의 후속 이야기에 가깝다. 게임이다 보니 영화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갈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주인공 역시 어린 친구들이다. 다양한 능력을 갖춘 10대 캐릭터들이 중심이 되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다.”
-‘부산행’ 이후에는 늘 비교가 따라붙는다. 부담을 느끼나.
“전혀 없다. 나는 대중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 아닌가. 내게 ‘부산행’은 장범준의 ‘벚꽃 엔딩’ 같은 작품이다. 대중예술가로서 굉장히 크게 유행한 작품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건 오히려 굉장히 든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을 낼 때마다 ‘왜 또 ‘부산행’ 같은 걸 못 만드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부담에서는 이미 꽤 오래전에 자유로워진 것 같다.
나는 장범준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벚꽃 엔딩’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잠이 오질 않네요’를 정말 좋아한다. 물론 ‘벚꽃 엔딩’만큼의 히트를 기록한 곡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난해 ‘얼굴’ 이후부터는 다양한 사이즈와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 작업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성공 자체에 집착하면서 작업하지는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부산행’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다.”

-굉장히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성공이 목표는 아니라고 했는데 계속 새로운 작업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작업마다 다 이유가 있다. ‘군체’는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 극장용 상업영화 시스템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하게 된 거다.
그다음 작품인 ‘가스인간’은 넷플릭스 일본 시리즈인데, 한 번도 안 해본 방식이니까 해보고 싶은 거였다. ‘얼굴’을 함께했던 신생 제작사와도 한 번 더 작업해 보고 싶어서 또 하게 된 거고, 다 이유들이 있다. 계속 같은 걸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이런 걸 해봤으니까 이제는 저런 것도 해보고 싶고, 또 그걸 하다 보면 다른 게 하고 싶어진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계속 생긴다. 그러다 보니 계속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계속 작업을 하려면 이야기와 소재, 아이디어가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원천은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식도 궁금하다.
“사실 요즘은 아이디어 고갈 상태다. 늘 그런 고민이 있다.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작품이면 그만한 규모와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가 필요하고, 작은 작품은 또 작은 작품대로 강한 ‘엣지’가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쓰는 게 점점 너무 힘들다. 요즘은 진짜 우울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없다. ‘이게 마지막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이제 더 나올 것도 없는 것 같고 거의 끝나가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지금 있는 환경이나 패턴에서 조금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림도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유화를 사서 유화 작업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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