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땀으로 키웠는데, 이젠 역차별 받네요”…중견 vs 중기 싸움 난 이유
담합·품질 저하로 취지 무색
올해 말 품목 재지정 앞두고
아스콘·PVC·수도관 등 12개
산업부, 지정 제외 의견 제출
중견련 “기업성장 가로막아”
중기 “최소 안전망 확대를”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제조업을 바탕으로 2009년 설립된 B사는 품질 개선과 신제품 개발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설립 7년 만에 국내 아스콘 시장 1위를 꿰찼다. 2018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B사는 2020년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급속한 성장이 오히려 회사에 독이 됐다. 아스콘이 경쟁제품으로 지정된 탓에 관급 시장에서 수주가 뚝 끊긴 것이다. B사 관계자는 “제도적 장벽에 막혀 매출이 급감했다”며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중소기업 보호와 기업 규모 위주 정책이 시장 왜곡과 산업 경쟁력 저해 같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순간 중기 간 경쟁제품 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같은 각종 규제 대상이 되고 정책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되면서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민경제 기여도가 높은데도, 오히려 차별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공공기관이 해당 제품의 조달 계약을 체결할 때 중소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대기업 또는 수입 유통업체 등에 의해 판로가 축소된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2007년 도입됐다. 중기부는 기존에 지정돼 있는 200여 개 제품이 올해 말로 효력이 만료됨에 따라 내년부터 3년 간 새롭게 적용될 제품을 검토하고 있다. 10개 이상 중소기업(신산업 제품은 5개 이상 중소기업)이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을 요청하면 해당 제품 분야 육성, 판로 지원 필요성 검토, 이해관계자(관계부처와 대기업·중견기업 등) 협의를 비롯한 절차를 거쳐 오는 11월 말 최종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문제는 일부 제품에서 제도 도입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 년간 경쟁이 제한되면서 참여 기업의 기술 부족과 담합 같은 도덕적 해이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관급 시장 거래 비율이 높은 아스콘이 대표적이다. 아스콘은 공급권역이 한정돼 소규모 다수 업체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공공조달 시장의 95%가 조합 중심의 독점 공급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500여 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최근 중기부에 아스콘 업종을 내년부터 3년 간 다시 지정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아스콘은 지난 2007년부터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아스콘 업체들은 공공조달 입찰에서 조합을 통해 물량을 배정받아 왔다. 2022년 정부는 아스콘을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 한해 제한적으로 중견기업에게 문호를 열어준 상황이다.
반면 중견기업연합회는 내년부터 아스콘을 경쟁제품 지정에서 완전히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양균 중견련 정책본부장은 “아스콘 공급이 조합 중심 독점 구조로 기업 간 경쟁이 제한돼 품질 개선과 신기술 개발 등 관련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입찰 담합과 부실 납품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를 보완하고 있지만 여전히 담합이 반복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리와 콘크리트 파일은 과거 중소기업 간 담합이 적발되면서 경쟁제품 지정이 철회된 바 있다.
중소기업 보호 목적보다 안전성 개선과 해외 시장 경쟁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기차 충전장치의 경우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술력에 기반한 시장경쟁 체제가 필요하다는 게 산업부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원활하게 커갈 수 있는 성장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수십년 간 중소기업 보호·육성 정책을 추진했지만 중소기업이 99%를 차지하고 중견기업과 대기업 비중은 1%에 불과한 기형적 생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정책을 ‘생산적’ 정책으로 전환해 중소기업이 경쟁력 제고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제품에 대해 중소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일정한 계약금액 이하로 대기업과 중견기업 참여를 일부 제한하는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 제도는 공공조달 시장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민수 시장에 경쟁할 체력을 기르는 게 취지”라면서 “지난 10년 간 성장이 정체됐다면 단계적으로 지정 범위를 축소해 스스로 경쟁력을 기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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