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어 공부에서 바라는 것 [이제야 공부합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남편이 아팠다. 며칠을 밥을 잘 먹지 못하더니 종내에는 퇴근하면 누워서 골골거렸다. 늘 잘 먹고 쉼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병원에 가 보라고 해도 이러다 말겠지, 하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쓸개가 원래 크기의 두 배로 퉁퉁 부어올랐다고 했다. 수술 후 퇴원하고 나서도 밤마다 미열이 난다며 뒤척거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 된다고 하면서도 작은 증상에도 불안해하고 무슨 일만 있어도 나를 불렀다. 난 분명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어느새 아들이 둘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영어 공부를 했다. 매일 앱으로 말하기 연습을 하고 게임을 통해서 단어와 문장을 익히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드를 보고 화상 영어를 했다. 어떤 사람은 뭐 그런 상황에서까지 무리해서 영어 공부를 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영어 공부는 나에게 탈출구였다. 현실에 숨통이 조이고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 들 때, 영어 한 문장이라도 외워서 말하면 내가 그래도 이만큼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학창시절에는 그토록 싫어했던 영어 공부가 이 나이 먹어서 내게 위로를 주는 것이었다.

아직 시작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단 5분이라도 영어로 말하고 듣는 훈련을 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늘겠지 생각했는데 정말 ‘조금’밖에 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영어로 줄줄 말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더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여야 할 듯하다. 그래도 이제는 미드를 보면 가끔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온 것처럼 귀에 쏙 들어오기도 한다. 언젠가는 한 상점 앞에 서 있다가 팝송 가사들이 들리는 것을 느끼고 신기해한 적도 있다. 아직도 잘 하려면 멀었지만, 이렇게 이전보다는 나아진 실력을 확인하면 더 영어 공부에 욕심을 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멈춰 있는 나’를 견디지 못해서인 것도 같다. 집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가끔은 하루하루가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영어 공부를 하면서 어제 몰랐던 단어를 오늘 알게 되고, 어제는 해석이 어려웠던 문장을 오늘은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시기를 좀 더 길게 가지면 그 발전하는 모습은 확연히 보인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영어를 할 때 단어만 툭툭 내뱉는 정도였다. 같이 외국 여행을 간 친구가 “Could you ~ ” 로 하는 질문을 듣고 깜짝 놀라서 세상에 문장을 말하다니 이렇게 놀라울 수가 하고 속으로 감탄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문법적으로 틀려도 일단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내게 대체 왜 영어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요즘은 휴대폰 번역 앱으로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외국어로 된 글은 AI를 통해 바로 번역이 가능하다. 하지만 번역 앱이나 AI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어를 배우면서, 내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을 때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AI라도 감정을 대신 느껴주지는 않는다. 솔직히 영어를 활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배우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이다. 속도도 더딘 데다가 노력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작은 희열 때문에 나는 영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것이 삶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작은 스위치가 온 방을 밝게 하듯이 우리의 삶에도 그런 ‘스위치’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오늘 병원에 다녀온 남편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다소 안심을 한 눈치다. 재밌는 것은, 그 똑같은 말을 내가 남편에게 이미 했다는 것이었다. 밤마다 미열이 나지만 그것이 38도가 넘어가는 고열이 아니기에 괜찮을 것이고, 소화는 잘 되고 있기에 나쁘지 않으며, 수술을 한 몸이 당장에 바로 좋아지지는 않아서 적응을 하는 과정이니 좀 더 기다리자는 소리를 남편은 의사에게 들었다며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해준 말을 다 잊어버린 모양으로. 남편의 몸이 나아지는 것처럼, 나 역시 발전하고 있다. 몸은 쇠락하고 노화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겠지만 내가 전보다 무언가 나아졌다고 믿는 어떤 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작은 스위치를 눌러서 몸의 불을 켜고서 다들 사는 것이 아닐까.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살아갑니다. 학창시절에는 늘 시키는 것만 잘했는데, 이제는 안 시키는 것도 찾아 보고 해 보면서 삶이 이런 온도였는지를 새삼 매일 알아가고 있습니다.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 지식토스트

Copyright © 해당 글의 저작권은 '세상의 모든 문화'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