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 맡긴 옷을 20년 넘게 안 찾아간 이유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30년 운영한 아버지 세탁소
찾아가지 않은 옷들의 비밀

아버지가 30년간 운영한 세탁소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맡겨 놓고 안 찾아가는 옷이 그래서 항상 스트레스인데, 함부로 처분하기도 쉽지 않았죠. 다른 가게는 보통 3개월쯤 연락이 안 되면 처분한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1년이 넘어도 보관했습니다. 괜한 말썽에 휘말린 적이 꽤 됐거든요.
아버지가 가장 열받아했던 말은 “네 마누라가 입고 다니는 거 내가 다 봤어!”입니다. 그런 일이 없는데 보긴 뭘 봅니까? 주기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아버지도 나름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정했습니다.
①1개월간 연락이 안 되면 처분 구역으로 이동한다. ②3개월이 지나면 처분 공지 대자보에 올린다. ③6개월이 지나면 최종 처분하며 반드시 인증 사진을 남긴다(단 금액이 비싼 옷은 시간을 2배로 적용한다).
아버지는 철저하게 이 원칙대로만 운영했는데, 예외는 있었습니다. 몇 년이든 계속 처분하지 않고 있는 세 벌의 옷 말입니다. 일단 첫 번째 옷은 ‘갈색 점퍼’입니다.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아주머니가 맡긴 옷인데, 이걸 처분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점퍼를 세탁하려다가 안주머니에서 1만원짜리 5장을 발견했습니다. 꿀꺽할 수도 있는 돈이었지만, 아버지는 멋진 행동을 했습니다. 작은 비닐백에 넣어 밀봉한 후 안주머니에 다시 넣어둔 겁니다.
이 옷을 찾아간 사람이 안주머니에서 폴리백에 담긴 5만원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아버지는 본인의 센스에 감탄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세탁물에서 돈이 나올 때마다 비닐백에 담아 다시 보내곤 했죠. 그걸로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고 동네에 소문도 많이 났습니다. 근데, 이 행위를 가장 처음 했던 이 옷의 주인이 나타나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옷을 계속 보관한 겁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옷이니까요.
또 하나는 아버지가 살면서 딱 한 번 봤다는 악어가죽 재킷입니다. 예전에는 거의 자동차 값이라고 들었는데, 도저히 버릴 엄두가 안 났던 거죠. 다만 이 재킷은 아버지 생각에 영영 찾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옷을 맡긴 그 양반이 부도나서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입니다.
마지막 하나가 바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검은색 더블 버튼 양복입니다. 동네에서 본 적 없는 남자가 맡긴 옷인데, 이걸 계속 보관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남자가 지난 20년간 매년 보관료를 입금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왜 안 찾아가느냐고 연락하자마자 먼저 보내준 겁니다. 처음에는 그 사내가 장기 출장이라도 갔나 싶었는데,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자 아버지도 황당한 거죠. 도대체 왜 안 찾아가느냐고 물어도 맨날 바쁘다, 언젠가 찾아갈 거다, 이런 식으로 20년이 지나간 겁니다.
아버지도 중간에 그냥 포기했습니다. 이 남자는 영영 이 옷을 안 찾아갈 거라고요. 그렇지만 보관료를 계속 넣어주니까 처분할 수도 없고, 놔두자니 신경 쓰이고. 아버지 세탁소 운영 최대의 미스터리가 바로 이 옷이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주말, 드디어 그 옷의 향방이 정해졌습니다. 아버지가 30년간 운영하던 세탁소를 정리하기로 했거든요. 동네 단골이 아쉬워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벌써 몇 년째 적자를 왔다 갔다 하는데도 계속하라는 건 공짜로 봉사하라는 말과 똑같았거든요. 아버지는 맡겨둔 옷을 다 찾아가라고 3개월 전부터 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도 바로 연락했죠. 세탁소를 폐업하게 됐으니, 이제 더는 보관을 못 한다고요. 3개월 안에 안 찾아가면 버릴 거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하는 말이 황당합니다.
“세탁소를 접으시는 거면, 댁에서라도 보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미친 사람 아닙니까? 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자 며칠 뒤, 20년 만에, 그 남자가 세탁소를 찾아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아버지는 깜짝 놀랐죠. 그 남자는 “그동안 죄송했다”면서 사과하더니 드디어 맡긴 양복을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궁금함을 참지 못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영영 모를 것 같아 그 남자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요. 그때 처음으로 듣게 된 남자의 사연이 참….
20년 전 남자의 홀어머니가 몇 달째 입원 중이었는데, 병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답니다. 남자는 현실을 부정했지만, 어머니는 준비한 거죠. 그때 남자가 어머니의 입에서 들은 가슴 아픈 말이 “내 장례식에 입을 양복을 준비해야 한다”였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양복을 안 버리고 집에 챙겨뒀으니, 그걸 찾아보라는 말이었죠. 새 양복 살 돈이 없는 사정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남자는 울면서 집 다락을 뒤져 양복을 찾았고, 그걸 우리 세탁소에 맡긴 겁니다. 장례식 전에 찾아가려고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가망이 없다던 어머니가 회복세를 보인 겁니다. 맡겨둔 양복도 잊어버리고 그저 신께 감사하고 있었는데, 저희 세탁소에서 연락이 온 거죠. 양복 찾아가라고요. 그때 남자는 순간적으로 어떤 강박이 생긴 겁니다. 그 장례식용 양복을 찾아가면 어머니가 다시 안 좋아질 것 같다고요. 남자는 일부러라도 그 양복을 외면하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어머니의 건강은 점점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20년이 넘도록 찾지 않게 된 겁니다. 버리자니 부정 탈 것 같고 또 아버지의 유품이기도 하니, 보관료는 계속 내고 말입니다.
사정을 다 들은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는 건강하시냐” 물었고, 남자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남자에게서 양복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세탁소 문을 닫고도 세 벌의 옷은 계속 보관하게 됐습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 옷들은 아버지가 걸어왔던 인생의 증거와도 같으니까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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