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소니 a58 공짜로 얻었다

나는 평생 사진을 싫어하고 살았었다.

왜 싫어하게 되었는 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너무 어릴 때부터 싫어했어서 그러려니 함.

나는 내가 사진에 찍히는 것도 싫었고,

내가 찍는 것도 싫었으며,

옆의 누군가가 찍고 있는 것을 보기도 싫었다.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도 싫고, 사진을 찍는다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싫어서 가족 여행 마저 가본 적이 없다. 여행에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길래, 사진이 싫어서 여행을 안 가버렸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안에는 가족 사진 조차 없으니 어지간히도 사진을 싫어하고 살았다.

그러다 군 전역을 하고... 얼떨결에 올해 3월, 방영과에 입학을 했고

처음으로 영상이랑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남들은 어느 정도 보정이나, 구도에 대한 걸 조금이라도 아는 상태였는데

나는 아예 문외한이었다. 나는 폰을 바꿀 때마다 연락처만 옮기면 될 만큼, 갤러리에는 든 게 없었다. 안 까먹으려고 서류 같은 거 찍어둔 사진 몇 장... 그게 갤러리에 있는 사진들의 전부였다.

막상 입학해서 사진과 영상에 관하여 배우는데... 나는 흥미도 생전 느껴본 적이 없는 분야에 대해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름의 재미를 느꼈었다.

과제도 뭔 뮤직 비디오 제작, 다큐멘터리 제작, 타이포그래피 제작 같은 것들이라서 촬영도 많이 다니고, '단 한 장으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사진'을 촬영해서 오라는 과제 같은 것들도 있어서 첨으로 재밌었다고 생각했던 거 같음. (다리 위에 신발 두 켤레 가지런히 놔두고 우산 내팽개친 사진 찍어서 갔음 ㅋㅋ)

특히 나는 생동감 있는 영상에서 딱 한 프레임을 떼어내면 그게 사진이 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한 개의 프레임 안에, 내가 느꼈던 바를 모두 집어넣는 것. 그게 사진이구나! 정말 이 얼마나 절제되고 단아한 매력인가...

하튼 그렇게 재미를 조금씩 느끼며 올 여름에 폰으로 프로 설정을 켜서 난생 첨으로 사진을 조금 찍고 다녔다.

아래는 그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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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는 여름 방학에 군 입대 전까지 일했던 전기 노가다 회사에 다시 잡부로 들어가서 일했다. 등록금도 내야 하고, 한 학기 생활비도 벌려면 빠르게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시작하는 게 중요했었으니까 ㅇㅇ

그러고 근 3년 만에 뵌 사장님과 대화를 하다가 내 사정(대학 입학)을 알게 되셨고

내가 '근래에 사진이 좀 재밌어서... 카메라 한 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좀 하는데 값이 만만치 않네요 ㅋㅋ' 라는 식으로 흘러가듯이 말했는데도

나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에 사무실에 거의 3년 정도 방치되었던 카메라인데

들고 가서 충전 좀 시켜보고, 안 되면 그냥 버리라며 대뜸 a58을 주셨음...

진짜 방치된 거 같긴 하드라 먼지도 자욱하고 서랍을 거진 뭐 15분 동안 뒤져서 겨우 찾아서 주시던데

넘 감사해서 넙죽 받고는 집에 와서 충전시키고 켰더니... 대박 멀쩡하더라 ㅋㅋ

이후 2학기는 또 넘 바빠서 사진기 쓸 틈 없이 살다가

이제야 종강하고 a58 갖고 동네 한 바퀴 걸으면서 이것저것 찍어봤다 ㅋㅋ

DSLT라는데 뭔가 조작법이 조금 달라서 버튼 만지작 거리며 애 좀 먹음.

그래도 뭔가 내 사진기가 생겼다는 마음에 좋아서 올려본다...

여기 글 쓱 보니까 다들 실력 너무 좋던데 솔직히 내 사진 올리는 거 좀 부끄럽긴 하네; 폰으로 찍기도 했고... 약간 부처님 앞에서 경 읽는 느낌 ㅋㅋ

하튼!!!! 이제 a58로 찍고 다니면서 사진 올리러 올게용 다들 성탄절 잘 보내~~
봄날 조각구름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