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지나면 베란다 한쪽에 호두, 땅콩, 잣이 담긴 봉지가 쌓입니다. 한꺼번에 받은 선물 세트이거나, 많이 사서 남긴 것들입니다. 서늘한 것 같고 통풍도 되는 것 같아 그냥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베란다는 견과류 보관에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낮에는 햇볕에 달아오르고 밤에는 차가워지는 온도 변화, 비가 오면 올라가는 습도, 이 조건이 반복되면 육안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는 견과류 안에 아플라톡신이 만들어집니다. 아플라톡신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곰팡이 독소로, 주된 표적 장기는 간입니다.

아플라톡신이 무서운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눈으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곰팡이 독소는 곰팡이의 외형과 무관하게 생성되며,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곰팡이의 모양만으로는 독소 유무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둘째, 열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플라톡신은 100℃ 이상의 고온에서도 분해되지 않아, 볶거나 끓여도 독소가 그대로 남습니다. 셋째, 안전한 섭취 기준이 사실상 없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식품 독성학자 브래드 라이스펠드 교수는 아플라톡신은 극미량으로도 발암성이 강해 안전한 섭취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고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아플라톡신을 소량이라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간암, 간경변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곰팡이 핀 부분만 제거하면 안전할까요
흔히 곰팡이가 핀 부분만 도려내고 나머지는 먹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곰팡이는 눈에 보이는 표면에만 있지 않습니다. 균사라는 미세한 뿌리 구조가 식품 내부까지 깊이 뻗어 있고, 이미 생성된 독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과육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특히 땅콩은 껍질 안쪽 구조의 틈새에 곰팡이가 특히 잘 자라며, 식약처는 생강에 곰팡이가 핀 경우 곰팡이가 핀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에 독소가 퍼져 있을 가능성이 있어 전량 폐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견과류도 마찬가지입니다. 곰팡이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봉지 전체를 버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견과류에서 쩐내가 나기 시작했다면 이미 산패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산패는 지방이 산화되는 현상으로, 이 시점부터 아플라톡신이 생성될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쩐내가 나는 견과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암 물질인 아플라톡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맛이나 냄새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먹지 말고 즉시 버려야 합니다. 아플라톡신은 간에서 반응성 에폭시드 중간체로 대사되면서 DNA에 결합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간세포를 손상시킵니다. 단 한 번의 섭취가 아니라, 소량이 반복적으로 누적될 때 간암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올바른 보관법이 전부입니다
견과류는 개봉 후 반드시 밀폐 용기에 넣어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해야 합니다. 냉동 보관하면 산패와 곰팡이 번식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어 가장 안전합니다. 개봉하지 않은 제품이라도 베란다처럼 온도와 습도 변화가 심한 공간에 장기간 두면 포장 내부에서 서서히 독소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장마철이나 여름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온 다습한 조건에서 아플라톡신 생성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곡물·견과류의 아플라톡신 오염 위험은 최근 기후 온난화로 아열대화가 진행되면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몸에 좋다는 것과 안전하게 먹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견과류는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슈퍼푸드가 맞습니다. 그러나 잘못 보관된 견과류는 건강에 좋은 식품이 아니라 간을 공격하는 발암물질 덩어리가 됩니다. 명절 선물로 받은 견과류 세트는 베란다가 아닌 냉장고 안에 넣어야 합니다. 이미 베란다에 오래 두었다면, 아깝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십시오. 먹지 않는 것이 안전한지 먹는 것이 안전한지, 이 경우에는 답이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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