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제모하기 시작했을까? (제모의 역사)
많은 사람이 제모를 합니다. 제모하는 이유는 위생, 미용, 개인적 선호, 종교, 문화, 사회적 인식 등 다양한데, 제모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참 많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제모의 역사에 관해서 알아보고, 제모와 관련한 이야기도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체 털을 위생과 밀접하게 생각해 제모가 행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모는 부유함의 상징이었고, 특히 상류층 여성들은 털을 제거하는 것이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상징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이유에서의 제모를 많이 했는데, 종교 의식을 시행하는 사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몸 전체에 대한 제모를 했고, 방식은 아몬드 오일이나 호호바 오일, 참기름 등 오일류를 바른 후에 면도칼과 족집게 등을 사용해서 제거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클레오 파트라는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하고자 설탕과 벌꿀을 혼합한 제모제를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참고로 해당 방법은 오늘날에도 '슈가링(Sugaring)'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고대 이집트에서는 성별과 계층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눈썹을 제모했으며, 제모 후 안티모니(Antimony) 가루나 방연광(≒검은 납)으로 만든 코올(메이크업 먹)로 눈썹을 그렸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로마에서는 목욕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제모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는데, 목욕의 마지막 순서가 잔털 제거와 안마였습니다.
피부를 매끄럽고 아름답게 가꾸는 목적이었고, 제모용 도구와 크림 등의 사용도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제모가 유행이어서 가슴과 팔, 겨드랑이, 다리, 인중, 심지어 코털까지 제거했습니다. 이렇게 문화적인 측면에서 제모가 관행적으로 행해졌는데, 종교적인 측면과도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신체의 청결과 정결이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므로 종교 의례나 의식에 참여하기 전에 목욕과 함께 제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힌두교 수도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삭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제모를 통해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종교적 순수성과 경건함을 나타내고자 한 행동입니다.
불교도 비슷합니다. 삭발하는 것도 제모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무상과 무아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물질적인 집착을 버리는 상징적인 종교 행위로 여겨집니다.
문화적, 종교적 의미로 행해지던 제모는 중세시대를 기점으로 변화를 보입니다. 중세 유럽의 경우 종교적 보수 주의가 팽배한 시대였기에 신체 노출이 거의 없었고, 이에 따라 제모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에 다시 제모가 주목받기 시작하는데, 예술과 미의식이 다시 중요시되면서 신체 털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우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제모가 미용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중 16세기에는 높은 이마가 미의 기준으로 여겨지면서 이마를 높게 보이기 위해 앞머리와 눈썹을 깎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리고 18~19세기에 들어오면서 드레스에 팔다리 노출이 많아짐에 따라 팔다리의 제모를 중요하게 했고, 19세기 산업 혁명과 함께 킹 캠프 질레트(King C. Gillette)가 안전 면도기를 발명하면서 제모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20년대부터는 할리우드에서 여성들의 드레스가 점점 짧아지면서 다리와 겨드랑이 털 제모가 유행했고, 미의 기준이 되면서 일반화됐습니다. 특히 베티 그레이블(Betty Grable)과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제모한 다리를 드러낸 포스터가 인기를 끈 것이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요? 선사시대부터 이야기해보면 정확한 문헌이 없으니 확답하기 어려우나 채협총에서 출토된 채화칠협에 나타난 인물상을 살펴보면 머리가 정돈되어 있고 이마를 넓히기 위해 머리카락을 뽑은 흔적이 있습니다. 또 눈썹이 굵고 진하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그 시대에 머리와 털에 관한 어떠한 미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은 해볼 수 있습니다.
신라시대 때는 얼굴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해 곡식의 분말이나 백토·활석의 분말인 백분을 사용했는데, 얼굴에 잘 부착되도록 하기 위해 분을 바르기 전에 족집게나 실면도로 안면의 솜털을 일일이 제모한 후에 백분을 물에 개어 발랐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족집게로 눈썹 모양을 가다듬거나 일부를 뽑기도 했고, 이마를 넓게 보이기 위해 잔털을 뽑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미용 목적의 제모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대처럼 몸에 있는 털을 제모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유교 사상이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면서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어 제모에 부정적이었습니다.
특히 상류층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심했는데, 고종 32년에 내려진 단발령에 대해 유생 면암 최익현의 상소를 보면 당시 털에 대한 인식과 집착을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제모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제모에 대한 인식은 20세기에 들어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크게 변했는데, 특히 1980년대 이후 서양의 미용 기준과 유행하는 의상들이 유입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다리와 겨드랑이 털 제모하는 것이 일반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제모 방식은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최근에도 면도기나 제모기를 이용하거나 왁싱 등의 방법을 사용하나 가장 달라진 방법에 특정 파장의 빛을 이용해 모낭과 털의 줄기세포를 파괴하는 방식인 레이저 제모가 있습니다.
원리를 간략히 설명해보면 레이저의 에너지가 털의 멜라닌 색소에 흡수된 후 열에너지로 전환되고, 열이 모낭과 모낭 주위 줄기세포에 전달되어 털 제거 및 재성장을 억제하는 원리입니다.
참고로 제모 레이저는 털의 멜라닌 색소에 흡수되므로 흰 털은 제모할 수 없고, 피부가 어둡다면 털에 있는 멜라닌 색소에만 에너지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모낭 주변 피부에 있는 멜라닌 색소에도 흡수되므로 제모 효과가 떨어지거나 레이저 후 털 주변 피부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부색에 따라 출력 및 레이저가 조사되는 범위를 다르게 조정해서 진행합니다. 그리고 레이저 제모를 시작하면 한 번 받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받는데, 털이 너무 안 자라있으면 레이저 에너지를 흡수할 멜라닌 색소의 양이 적어서 효과가 미미하므로 모발의 성장 주기에 맞추어 4~6주 간격으로 시술받습니다.
이런 원리를 생각했을 때 제모 레이저의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시술 전날 저녁에 면도하는 것이 좋고, 시술 후에는 레이저의 에너지가 열로 전환되므로 쿨링과 진정크림 사용을 병행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끝으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혼자 털을 뽑다가 모공 주위로 피부가 붉어지고 노랗게 곪거나 가려워져서 피부과에 오는 편입니다.
털은 해부학적 구조상 털을 둘러싸고 있는 피부 조직과 단단하게 붙어 있어서 위에서 힘으로 당기다 보면 피부 밖으로 나와 있는 털 윗부분과 아직 피부 속에 들어있는 털 아랫부분 사이에서 줄다리기와 같은 힘겨루기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과적으로 털을 뽑으면 다행이나 힘겨루기 중에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있고, 털이 중간에 끊기는 경우 털 찌꺼기들이 피부가 찢어지면서 떨어져 나온 각질세포들과 이물 반응을 유발해 피부가 가렵고 울긋불긋하게 곪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 끊어진 모발이 다시 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삐뚤빼뚤하게 옆으로 자라면 인그로운 헤어(ingrown hair)를 형성하여 피부 밖으로 나오지 않고 피부 속에서 옆으로 자라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반복적인 모낭염의 원인이 되므로 가능하면 털을 인위적으로 뽑는 행위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피부과 전문의 임슬기(유튜브 '스킨 나이 연구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