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최 만찬을 ‘패싱’하면서 외교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145개국 정상들이 몰려든 이 만찬에 한국 대통령만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6년 만의 유엔총회 연설을 마친 후 매디슨 애비뉴의 고급 호텔에서 각국 정상들을 초청한 환영 만찬을 개최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 145명의 세계 정상과 배우자들이 참석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백악관 관계자는 “145명의 고위 인사들과 배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고 일부는 몇 시간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후 세계 각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같은 시간 미국의 지한파 오피니언 리더들과 별도 만찬을 가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피니언 리더 만찬이 먼저 잡힌 일정이었고, 트럼프 대통령 만찬은 참석 대상을 일일이 초청하는 게 아니라 올 수 있는 사람은 오라는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통상협상 교착에 ‘전략적 거리두기’
외교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불참 배경에 한미 통상협상의 복잡한 상황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한미 간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만남을 갖기보다는 전략적으로 거리를 두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도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요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형식적인 만남보다는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접촉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만찬 대신 24일 뉴욕 유엔대표부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의 면담을 택했다. 베선트 장관의 협상 파트너는 구윤철 부총리인데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미 투자 패키지와 통화 스와프 문제를 설명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통령이 베선트 장관에게 외환시장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후 협상에서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베선트 장관에게 자신의 얘기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지 않았겠느냐”고 분석했다.
“왕따 인증” vs “전략적 선택”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불참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145개국이 참석한 만찬에서 한국만 빠진 것은 스스로 왕따임을 인증한 격”이라며 “현실을 외면한 외교”라고 공격했다.
반면 여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스치듯 만나느니 더 의미 있는 일정을 소화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통상협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만남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불참이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상 이런 행동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형식적인 만남보다 실질적인 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통상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관세 인하 조건을 둘러싸고 양국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선택이 향후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