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변화 없다? 반복되는 중재와 실패, '중재자 한동훈' 어디로?
대한의사협회가 결국 여야의정 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그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정부·대통령실과의 의견 충돌까지 불사하면서 주장해온 '추석 전 협의체 개문발차'는 실패로 돌아갔다.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이 결국 '2025년 증원'이라는 원점에서부터 엇갈리면서, 당내 입지가 불안정하다는 평가 속에서 한 대표가 야심차게 꺼내든 의정갈등의 '중재자' 역할도 오리무중에 빠졌다.
의협을 포함한 8개 의사단체는 13일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현시점에 협의체 참여는 시기상조"라며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불참 의사를 확실히 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25년 의대정원 증원 철회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등 의료계의 기존 요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추석 전 협의체 구성을 목표로 '의제 제한' 여부 등을 두고 돌고 돌던 논의가 결국 원점으로 복귀한 셈이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12일 의료대란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2025년 정원 재논의를 포함한 모든 의제가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강조했고, 의료계가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실언 논란을 향해서도 "그런 발언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당의 대표로서 그런 것이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의료계를 달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반면 당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우리 의료체계는 어렵지만 아직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다"며 지금의 의료대란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기존의 정부 입장을 반복했다. 한 총리는 " "개혁을 미루면 머지않아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쉽다", "정부·여당은 겸허하되 심지 굳게 나아갈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대표와 한 총리는 당일 당정협 비공개 회의 과정에서도 25년 증원안에 대한 협의체 재논의 여부, 현재 의료대란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 등을 두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일 논평을 통해 "'의료계가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해석에 대한 문제"라고 봉합을 시도했지만, 양자 간의 입장 차이는 비공개 회의가 아닌 모두발언에서부터 극명하게 엇갈려 새로운 '당정갈등'이라는 평가를 낳았다.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 이전부터 '2026년 의대 정원 유예'라는 중재안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운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여당 연찬회 불참도 그로 인한 것이었다. 한 대표는 "해결을 위한 협의와 중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적극적으로 본인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지만, 그 중재의 실효적인 결과는 나오지 못했다.
문제는 이 같은 중재 시도와 실패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직후에는 제3자 채상병 특검법으로, 총선 국면 비대위원장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명품백 의혹' 사과에 대한 이견과 이종섭·황상무 사태 등으로 윤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 안팎에 본인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왔다. 4월 총선의 막판 유세 국면에서 그의 단골 멘트는 "제가 눈치보지 않고 나서서 (정부의) 부족함을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대표의 첫 번째 '중재' 대상이었던 대통령 영부인의 사과는 결국 없었다. 이는 오히려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동훈-김건희 문자 묵살 논란'으로 이어져, 상대 후보들에게 한 대표에 대한 공격 빌미를 주기도 했다. 당시 당 대표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영부인의 사과가 있었다면 총선 참패는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한 대표의 정치력을 문제삼기도 했다. '중재'를 명분으로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정치세력화에 나선 한 대표에게, 그 중재의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처음으로 당내에서 제기된 순간이었다.
총선 당시 이종섭·황상무 사태에서부터 이어진 '채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안 괸련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한 대표가 공약으로 내세운 제3자 특검안은 친윤계 지도부인 추경호 원내대표와의 대립, 그것도 원내 구도상으로 열세에 가꾸운 대립 양상으로 이어졌다. 원내 다수파의 '선 수사 후 특검' 당론은 공고했다.
한 대표가 이 때도 "제 입장은 변한 게 없다"는 발언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장동혁·박정훈 의원 등 친한계 인사들마저 제3자 특검을 '공수처 수사 발표 뒤로 미루겠다'며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 관련기사 : 한동훈표 특검 '오리무중'…친한계 "공수처 수사 이후")
민주당 측에서 이를 공격 카드로 손에 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민주당의 두 번째 채상병 특검법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쳐 최종 폐기된 8월, 민주당에선 한 대표를 겨냥 "조건 붙이고 단서 달고 하는 건 결국 하지 말자는 얘기"(이재명 민주당 대표), "열흘 안에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라"(박찬대 원내대표)는 등의 공격을 쏟아냈다.
현재는 대법원장 추천 권한, 제보공작 의혹 수사 등 한 대표의 주장을 일부 반영한 민주당의 세 번째 특검법까지 발의된 상태다. 한 대표 측은 민주당이 명시한 비토권을 명분으로 '무늬만 제3자 특검', '수박 특검'이라는 방어논리를 갖추고 있지만, 제3자 특검법을 공약하며 '특검 정국의 주도권을 뒤집겠다'는 취지로 주장했던 전대 당시 한 대표의 발언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은 다소 궁색한 면이 있다.
앞서 법사위에선 야당으로부터 "제3자 추천 특검법 이 발언은 전당대회용이었다", "10명을 못 찾아가지고 법안 발의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좀 딱한 생각도 든다"(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는 조롱 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당내에서도 채상병 특검법 논의를 위한 한 대표의 중진 오찬 등을 두고 '식사 정치의 효용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을 고려하면 뼈 아픈 지적이다. '뒤집겠다' 공언했던 주도권은 당내에서도 당외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 대표가 다시금 빼든 '중재' 카드, 즉 여야의정 협의체는 그래서 그 내용적인 가치판단을 떠나 앞으로 한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좌우할 시금석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은 여전히 반복적이다. '정원 재논의', '장차관 경질' 등 의료계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완강하다. 한 대표는 추경호 원내대표는 물론, 이른바 '정점식 사태' 끝에 정책위의장에 임명돼 친한계로 분류됐던 김상훈 의장과도 엇박자를 내며 중재자의 위치에 천착한다.(☞ 관련기사 : 한동훈 "2025년 의대정원도 대화 가능"…여권 내 이견 양상)
의료계의 불참 선언으로 추석 전 개문발차까지 물거품이 되며 '중재자 한동훈'은 다시 코너로 몰린 양상이다. 추 원내대표는 의협의 불참 선언 당일인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의협의 '증원 백지화', '장차관 경질' 등 요구에 대해 "저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걸 자꾸 얘기하면서 대화 자체를 경시하기 보다는 (협의체에) 오셔 가지고 같이 답을 찾자"고 다시 한 번 날을 세웠다.
그는 당일 오전 친한계 정광재 대변인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언급한 '의원총회를 통한 2026년 유예안 공식화'에 대해서도 "중차대한 문제를 무슨 정치인 한두명이 앉아서 흥정하듯이 정할 수가 없다", "합리적인 접근방식이 아니다"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한동훈 비대위 출신의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당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료단체들의 불참 선언에 대해 "여러 단체들이 한번에 통일된 성명을 낸 건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했지만, 결국 추석 전 '중재'는 무산되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는 점에서 한 대표는 이미 옹색한 상황에 놓였다.
야당에서는 의료단체 불참선언 이전부터 한 대표를 겨냥해 "중재하는 이미지만 생각하시나. 집권당 대표라면 말따로 행동따라 하면 되겠나", "지금 당장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찾아가서 국민 안전에 아랑곳 않는 고집을 꺾도록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한민수 대변인)는 압박 공세가 나온 바 있다. 꽃놀이패가 열린 셈이다. 한 대표 또한 야당을 겨냥 "조건을 걸지 말고 일단 여야의정 협의체의 출발에 동참해주시길 바란다"고 쏘아붙였지만, 결국 공격의 주도권 자체가 야당 측에 넘어갔다는 점은 이미 '특검 국면'과 유사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재자 한동훈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추석 연휴 시작 전인 13일 한 대표의 마지막 언론 백브리핑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여야의정 협의체와 관련 돌파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대표는 "저희는 계속 설득을 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구체성이 결여된 해당 답변이 지난 4월 정부의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다"던 한 대표의 유세 발언과 겹쳐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당시에도 중재를 외치던 한 대표는 4월 11일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한 바 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 대선, 토론에서 판정승한 해리스 우세로 끝날까
- 청년들에게 아이를 낳도록 강요하는 게 꼭 좋은 나라일까
- 명절 인사가 "아프지 마세요"인 현실…"응급실 대란 우려된다" 89%
- “윤석열의 철지난 신자유주의가 국민들을 옥죄고 있다”
- <베테랑2>가 관객에게 던진 '찝찝한 질문'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호응'하는 주체, 감옥 안팎의 공투(共鬪)
- 대통령 거부하면 그만? 22대 국회도 '양치기 소년' 될까?
- 입장 변화 없다? 반복되는 중재와 실패, '중재자 한동훈' 어디로?
- 오세훈표 '약자와의 동행', 정치적으로 편히 다룰 수 있는 약자?
- 손 놓은 윤석열 정부? 오물 풍선 날아온다는 문자, 추석에도 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