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7차전, 당신의 선택은? – 일상에 자리 잡은 프로야구.

제가 진행자로 참여하는 유튜브 스브스스포츠의 ‘야구에 산다’에 지난 겨울 NC 다이노스 이태일 전 대표가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 전 대표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구의 저변이 지금보다 넓어지는 방법은 우리가 항상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언제나 생활 속에서 야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 야구의 저변을 자연스럽게 넓힐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면서 당시 방송 막판에 저는 이태일 전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 대표님이 감독이라면 선동열과 최동원 중 누구를 선발투수로 쓰실 겁니까?”

이후 저는 이 질문에 보기 항목을 조금 늘려서 올시즌 마주친 많은 관련업계 종사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야구인이라는 틀을 벗어나 제 SNS에 설문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엄청나게 많은 분들께서 참여를 해주셨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단 사흘 만에 3만명에 가까운 야구팬들이 투표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제 인스타에 올린 설문 원본입니다.

답에 예를 든 4인의 투수는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4인입니다. 물론 원래 제 메모장에는 더 많은 투수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4명으로 추렸습니다.
이 글을 올렸더니 이렇게 반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저 4명의 투수를 쓸 수 있는데 7차전까지 가는 것이 가능한가?”
“타자들은 뭐했나? 저 투수라면 4차전에 끝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저 투수들 데리고 7차전까지 온 것은 감독이 무능력하다는 증거다.”

무등산 폭격기, 나고야의 태양, 국보 등으로 불린 선동열 전 감독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투수입니다. <사진 OSEN>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는 이렇게 답해드렸습니다.

“상대팀에 배영수, 정민태, 이상훈, 구대성이 있어서 어찌어찌 7차전까지 오게 됐습니다.”
라고요.
(사실 원래 제 메모장에 작성한 보기는 뒤에 예를 든 4인까지 8인이었습니다.)

설문 득표 현황

7월 22일(화) 오전 11시까지의 득표 현황을 보겠습니다.
제 인스타 투표에는 29023분이 참여해 주셨고 최(34%) – 선(33%) – 류(21%) – 박(12%)의 순으로 득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 특별한 분석이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짐작을 해보면 제 인스타를 접하는 분들이 3040 남성팬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단일 한국 시리즈 4승'을 기록했던 고 최동원 전 감독의 투혼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KBO 올드 스타전에 출전한 고 최동원 전 감독 <사진 OSEN>

반면, 커뮤니티쪽의 반응은 (제가 파악한 바로는) 류현진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커뮤니티 주 이용층은 아무래도 이 논의를 역대 국내 최고의 투수인가로 바라보는 경향이 컸고, 단일시즌 한국 출신 투수로서 최고의 업적(MLB NL 평균자책점 1위)을 만들었던 ‘2019 류현진’이라면 당연히 그가 7차전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 최동원 감독의 13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한 한화 이글스 류현진. 데뷔 시즌 최동원 2군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애틋합니다. <사진 OSEN>

제 주변의 야구 관련 종사자들은 이런 답을 했습니다. (답변의 말투는 최대한 제게 했던 말투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이성훈 기자의 선택은 선동열 전 감독이었습니다.
“너 나랑 동시대를 살지 않았나? 그러면 네 명의 투수를 다 봤잖아. 그럼 선동열이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이건 그냥 선동열 아닌가?”
현역 야구 취재기자 중 세이버 매트릭스에 가장 정통하다고 생각하는 이성훈 기자가 ‘그냥 선동열’이라고 답하는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저도 네 명의 투수를 다 본 사람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이버 매트릭스에 정통한 사람도 '그냥 선동열'이라고 할만큼 리그 위에 군림했던 선동열 전 감독 <사진 OSEN>

이순철 해설위원은 고 최동원 전 감독을 올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형 공을 못 쳤거든. 다른 사람들 공은 건드리기라도 하겠는데, 그 형님 공은 내가 아예 건드리지를 못했어. 커브가 커브가… 말도 못해. 속도감도 그렇고 저 위에서부터 뚝 떨어지는 각도도 그렇고 이거는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야.”
이순철 위원은 선동열 감독의 슬라이더보다 최동원의 커브가 큰 경기에서 더 잘 통할 수 있는 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국제 대회에서 쿠바랑 경기를 하면 그래도 비슷하게 게임이 되는 투수가 동원이 형 밖에 없었어. 다른 투수들은 다 안돼. 쿠바 애들도 동원이 형한테만 엄지를 치켜 들고 나중에 다시 만나도 항상 동원이 형만 찾았어.”

'무쇠팔 최동원' 동상 앞에서 열린 고 최동원 전 감독의 추모행사 <사진 OSEN>

이준혁 캐스터는 류현진 선수의 손을 들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는 고점과 저점의 차이가 가장 적은,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나가야 감독으로서 경기의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지 않아도 5~6이닝 3실점 이내, 긁히면 7~8이닝 갈 수 있는 투수가 류현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준혁 캐스터는 정말 냉철하게 감독의 입장에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하기 위한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반기 첫등판에서 역투하는 류현진 <사진 OSEN>

서재응 NC 수석코치는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박찬호 선수를 7차전 선발로 꼽았습니다.
“찬호 형의 하이 패스트볼은 우리나라 역대 투수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심판이 기준이라고 해도 찬호 형 하이 패스트볼은 국내 심판들 존에도 들어오는 높은 스트라이크로 헛스윙을 유도했거든요. 저는 그 공 하나로도 7차전 선발은 찬호 형이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프로 커리어의 마지막을 KBO리그에서 보낸 박찬호 <사진 OSEN>

이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저 4명 중에 한 명을 꼽으신다면 그게 누가 됐든 정답입니다.
제 선택도 공개를 하겠습니다. 제 답도 서재응 코치처럼 3번 박찬호입니다. 사실 투표에서 득표율이 가장 낮은 것이 속으로는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물론 속으로 선택의 갈등은 있었습니다.
2000년의 박찬호냐? 2019년의 류현진이냐?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너는 어떤 스타일을 더 좋아해?’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제가 박찬호 선수를 선택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 대 약물의 시대에 그 약물로 무장한 근육 덩어리 타자들과 강속구로 정면승부를 펼치면서 맞을 때는 맞더라도 정규시즌 200탈삼진의 고지를 두 번이나 넘어섰던 박찬호의 전성기 강속구는 KBO리그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도 충분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흔들리고 비틀거리면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서 아시아 선수 최다승을 경신하고(124승) 메이저리그를 떠났던 그 근성이라면 7차전까지 오는 길고 긴 여정을 거치면서 완전히 힘이 소진된 상태에서도 마지막 경기에서 있는 힘을 짜낼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사실 뭐 이런 설명 다 구차합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제 마음이 그런 겁니다.
그냥 보고 싶은 겁니다.
박찬호의 코리안시리즈 7차전 투구를요.
제가 평상시에는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이 문제에서는 굉장히 감정적이 되더라고요.
여기에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당연히 그 의견이 옳습니다.
그래서 이런 주제들은 밤새서 끝없이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 나눌 수도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부르면 WBC, 아시안 게임 가리지 않고 푸른 유니폼을 입었던 61번 박찬호 <사진 OSEN>

사실 저는 최근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주변 어디에든 야구 이야기가 있어요.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면 야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목격하거든요..
어제 경기 이야기, 본인이 좋아하는 팀 이야기, 감독의 아쉬웠던 결정 이야기 등등.
이렇게 여러분이 항상 나누고 있는 이야기들이 지금의 야구 저변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고, 또 역대급 관중의 동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제 임무 중에 하나는 여러분이 언제나 즐거운 야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한가지 질문을 더 던지고 이 글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대표팀 출전 시 해외 미디어를 상대로 단골로 인터뷰를 했던 박찬호 <사진 OSEN>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원정팀이 한 점을 앞서 있습니다.
당신이 원정팀의 감독이라면 아래 4명의 마무리 투수 중에 누구를 올리겠습니까? (각 투수들의 전성기 기준입니다.)
1. 선동열
2. 오승환
3. 임창용
4. 김병현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