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삶의 양태…자신만의 시각 형상화

시집 겉표지

<@1>전남 나주 출생 이지담 시인(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이 네번째 시집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는 흔들려서 좋았다’를 문학들 시인선 33번째 권으로 최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제목에서 시편들이 나아갈 방향성을 담보하고 있다. 인간은 유약하기 이를데 없다.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는 삶의 환경을 말한다. 갈수록 신자유주의 속 서민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있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도 말한다.

이런 가운데 시인의 시편들은 문학이 독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시들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기반으로 한다.

등단한 지 20년이 넘어 이제 성년에 접어들었다. 그의 시들은 강한 자극을 통한 시적 인상을 만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삶과 죽음, 생명과 반생명 등의 구도 속 다양한 삶의 양태를 자신만의 시적 변주로 읽어낸다.

이번 시집의 시 중 시인이 이제 완숙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시편이 ‘먼 길’이라고 생각한다. 시집 첫 페이지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이다. ‘…전략…//몸 속에서 아주 작은 열매 하나 떼어내고/설중매처럼 봄날을 맞이하자던 말//핸드폰 용량을 비우다가 2년 전 통화가 자동 저장되어 있었다니//창포 줄기처럼 푸르렀던 목소리를 놓칠까 봐/저장 버튼을 길게 누르는데//푸드덕 몸을 털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먼길’ 전문)라고 노래한다.

이 시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먼 길’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삶에 빗대 상상하게 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삶에 대한 모습을 섬세한 문학적 조망과 관찰력을 통한 한편의 완성된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시인의 시집에는 비유법에 기반한 문장이 꽤 많이 보인다. 그런데 시의 첫행들이 서술적 개념으로 시작된다는 점은 호기롭게 읽힌다.

‘투수와 마주보기 좋은 날씨다’(‘관계’)를 비롯해 ‘살아 숨 쉬는 책을 읽으러 제주에 간다’(‘책을 읽으러 제주에 간다’), ‘담양 평야가 한눈에 찰랑거린다’(‘면앙정에 올라’), ‘나무 책상의 결은 한 방향으로 몰려 있었다’(‘라플레시아, 안녕’)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가만히 보면 비유적 구조는 아닌 듯한데 단명한 문장의 힘을 구축해간다.

사실적인 글에서는 팩트를 먼저 앞에 놓아두는 것 같은 형식으로 읽힌다. 단정하고 왜 그런지를 시적으로 풀어낸다는 이야기다. ‘땀을 모아 호수에 풀어놓으면 아이의 보조개 같다’(‘땀의 무게’)는 온갖 비유가 한 집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를 비교해보면 위의 사례들이 시상 전개를 위한 전제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시 전체를 전개하기 위해 울타리 같은 문장이라고 하는 담 벼락 하나를 세우고 나서, 그 담벼락 안에 있는 시밭을 일구는 구조를 보여준다.

가령 ‘빙하를 보러 간 알래스카에 꽃눈이 휘날렸다’(‘한여름, 백야’)나 ‘전국의 동박새들이 모여와 병든 동백꽃에 입맞춤한다’(‘동백꽃 배지’)같은 구절이 대표적이다.

‘한여름, 백야’는 중간에 나오는 ‘이름을 알지 못한 보라 꽃 정원에서 길을 잃어도 좋았다’나 ‘호수에 이르러 잔잔한 눈빛으로 눕는다’ 같은 시행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여러 시편들이 이런 구조를 띄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그동안 시인이 펴냈던 ‘고전적인 저녁’, ‘자물통 속의 눈’, ‘너에게 잠을 부어주다’ 등에 비해 그 깊이가 한결 융숭해졌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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