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전기차와 엔진의 감성을 한 대로. 아우디 A7 55 TFSI e
전기차 시대는 쉽게 다가오지 않고 있다. 한때 국내에서도 전기차 구매 열풍이 엄청나게 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으면서 남아있는 전기차들을 털기 위해 제조사들이 할인을 해 줄 정도가 됐고, 그래도 소비자의 마음을 잡지 못해 재고가 남아도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격에 비해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전기차는 기본적으로 비싸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배터리 가격은 몇 년 안에 크게 떨어질 것이며, 그때는 좀 더 저렴한 전기차가 등장해 보조금 없이도 판매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으로 인해 소위 '자원 전쟁'이라는 것이 시작됐고, 배터리 가격은 다시 올라가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 됐다. 그 와중에 전기차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아무리 전기차가 배출가스가 없어 환경에 좋다고 해도, 구매를 독려해도 소비자는 냉정하다. 그 누가 '전기차는 비싸지만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 지구를 위해서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하겠다'고 생각하겠는가. 여기에 쉽게 늘어나지 않는 충전 인프라 문제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데 말이다. 그 시점에서 이 차라면, 전기차와 일반 엔진 자동차 사이에서 아주 현명한(?) 타협을 할 수 있다. 바로 아우디 A7 55 TFSI e. 그 이름대로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아름답게 떨어지는 지붕을 따라가다
PHEV이지만 일반 모델과 디자인의 차이는 없다. 내부에 라이트 애니메이션 기능을 품은 날카로우면서도 매력적인 형태의 헤드램프, 아우디가 철저히 다듬고 있는 헥사고날 싱글 프레임 그릴, 그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장식하는 4개의 원이 모두 A7을 그대로 가리킨다. 2세대 모델이 되면서 바뀐 뒷모습은 이전 1세대보다 더 낫다고 느껴진다. 테일램프 자체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 있고, 그 주변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A7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인 루프 라인도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 A필러와 B필러 사이에서 정점을 찍은 뒤 트렁크 리드까지 하나의 곡선으로 완만하게 떨어지는 이 라인은 세상에 등장한 다양한 패스트백들 그리고 4도어 쿠페들 사이에서 A7이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아래쪽에서 뒤로 갈수록 완만하게 올라오고 있는 벨트 라인이 첨가되면, 그야말로 언제든 앞으로 튀어 나갈 듯한 스포츠카와 같은 자태가 만들어진다.
실내는 그야말로 아우디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간단하니 더 설명을 붙이자면, 운전석에서 바라보고 조작할 수 있는 세 개의 화면 조합이 인상적이다. '버추얼 콕핏' 기술을 적용한 계기판은 운전자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고, 내비게이션을 계기판에 띄우는 것도 가능하다. 듀얼 터치 스크린의 MMI 내비게이션 플러스 및 MMI 터치 리스폰스는 운전석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 조작이 쉽다.
그러한 화면 조합에 실내를 밝히는 앰비언트 라이트가 더해지면, 그야말로 밤에 보기 좋은 실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아우디의 실내는 품질이 꽤 좋다. 언뜻 보면 그냥 플라스틱을 쓴 것 같아도 촉감과 질감이 우수하다. 게다가 각 부분을 견고하게 결합해 두어서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거나 덜걱거리는 부분은 없을 것 같다. 터치스크린에 햅틱 피드백을 사용하고 있어 운전 중 사용하기가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이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다.
시트는 처음 앉았을 때는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운전 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든 것 같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으로 인해 2열 공간 걱정을 할 수도 있는데, 성인이 목과 등을 펴고 바르게 앉아도 지붕에 머리가 닿지는 않는다. 트렁크 공간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충분하다고 느껴지며, 크게 열리는 테일게이트 덕분에 짐을 쉽게 적재할 수 있다.
정말 일부분만 타협할 수 있다면
그러면 이제 달려볼 차례다. 이 차는 최고출력 252마력의 2.0ℓ 4기통 가솔린 엔진과 142.76마력의 전기모터를 조합해 합산 출력 367마력을 발휘한다. 같은 숫자인 55를 적용한 6기통 가솔린 엔진이 340마력을 발휘하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시동을 걸어보면 먼저 적막이 감돈다. 기본적으로 EV 모드를 선택하게 되어 있으므로 배터리가 남아있는 한 전기모터만을 알뜰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집에 또는 직장에 세워놓는 동안 배터리를 제대로 충전할 수 있다면, 시내 주행에서는 엔진을 깨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전기모터만으로도 시원하게 가속할 수 있고, 시내 제한속도는 무난하게 도달한다. 시속 80km의 올림픽대로에서 엔진을 깨우지 않고 다니는 것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게다가 1회 충전으로 47km를 주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주행거리가 훨씬 더 잘 나온다. 출퇴근 정도는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고속 영역에서 막강한 힘이 필요하다면(스트리트 레이서가 아니라면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EV 모드에서 벗어나거나 가속 페달을 정말 깊게 밟아서 엔진을 깨우면 된다. 엔진음은 강렬하게 들려오지만 아마도 불만은 크게 없을 것이다. 4기통 엔진이라고 해도 꽤 부드럽게 회전하기 때문이다. 단, 6기통 특유의 보들보들한 느낌까지 원한다면 그건 어떻게 해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기통 수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차는 DCT를 탑재하고 있다. 자동변속기와는 아무래도 변속의 부드러움에서 차이가 조금씩 난다. 다행인 것은 전기모터만으로 주행할 때는 DCT라고 느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처음에 출발할 때 DCT 특유의 주춤거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DCT는 자동차의 달리는 맛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스티어링 뒤에 있는 패들을 건드리면서 변속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맛이 희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A7은 그 특성상 코너보다는 직선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날카로운 코너링이 가능하도록 정확하게 반응하면서 약간의 무게감도 있는 스티어링 휠이 있지만, 도로의 상태를 세세하게 느끼면서 완벽하고 깨끗한 감각으로 코너를 돌아서 나가기는 어렵다. 브레이크도 마찬가지로, 회생 제동의 영역에서 물리 영역으로 변환되는 느낌을 감지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회생 제동 범위가 꽤 넓으므로 일상 주행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단점이 꽤 있는 것 같지만, 아주 거대한 장점이 있다. 이 차는 효율성에 엄청난 중점을 두고 있고, 그 거대한 차체에 비해 인상적인 연비와 효율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으며, 이 크기의 자동차가 ℓ 당 15km 이상을 달릴 수 있으면서 배출가스도 엄청나게 적다는 것은 축복이다. 설령 충전을 하지 못했더라도, 하이브리드 모드로 주행할 수 있으므로 일반 엔진 자동차보다는 연비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금만 부지런하거나 인프라만 잘 갖춰져 있다면, 출퇴근 시에는 기름 한 방울 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때는 배출가스도 전혀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A7 PHEV는 아우디의 중형 라인업에서, 아니 아우디 전체로 놓고 비교해도 매력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6기통 엔진을 탑재한 일반 A7에 비해 엔진에 담긴 영혼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그 정도는 타협을 통해 참아줄 수 있으리라.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975×1910×1425mm | 휠베이스 2927mm | 공차중량 2160kg
엔진형식 I4+전기모터, 가솔린 | 배기량 1984cc | 최고출력 252ps | 합산출력 367ps | 변속기 7단 DCT
구동방식 AWD | 0→시속 100km 5.8초 | 최고속력 시속 210km | 연비 15.7km/ℓ | 가격 9985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