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매장 40개·매출 200억 찍고도… "수중에 남은 돈 없었다" 털어놓은 이유

연 매출 200억 신화
날아간 수십억 상장
65억 기부왕의 반전

출처: 션 SNS

연예계 대표 기부 천사이자 마라톤을 통한 선한 영향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가수 션이 과거 전국을 뒤흔들었던 패션 사업가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지누션 활동 당시 국내 힙합 열풍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그가 연 매출 200억 원에 달하는 의류 브랜드를 일궈내고 코스닥 상장 문턱까지 다다랐던 사실과 함께, 눈앞에서 수십억 원의 대박 기회를 놓치고도 오히려 안도해야 했던 남다른 인생 철학을 털어놓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6일 유튜브 채널 '이성미의 못간다'에 출연한 션은 1990년대 후반 가요계를 휩쓸던 전성기 시절 옷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뛰어들었던 사업 비화를 전했다.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 안무 댄서 시절부터 직접 힙합 의상을 만들어 입을 만큼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했던 그는 지누션 데뷔 이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엠에프(MF!)'를 공식 론칭하며 전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출처: 션 SNS

힙합 문화의 폭발적인 인기와 맞물린 브랜드는 론칭 3년 만에 전국 매장 40여 개를 돌파했고, 연간 매출액이 200억 원까지 치솟는 폭발적인 신화를 썼다.

하지만 눈부신 외형적 성장 뒤에 가려진 실질적인 주머니 사정은 대중의 짐작과 전혀 달랐다. 션은 겉으로 드러난 거대한 매출 규모 탓에 세간에서는 자신이 막대한 부를 쌓았을 것이라 오해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의류 제조업의 특성상 200억 원의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중간 유통 매장들과 마진을 정산하고 나면 남은 순이익은 다음 해의 신상품 기획과 원단 수급, 물류망 확충을 위해 고스란히 재투자되어야 했다.

결국 브랜드를 운영하는 수년 동안 개인적으로 챙길 수 있는 수익은 거의 전무했으며, 사업을 최종 정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약간의 몫을 손에 쥐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당시 동업자였던 공동대표의 주도로 코스닥 증권시장 상장을 본격 추진했던 아찔한 일화도 함께 밝혔다. 돈을 좇기보다 옷이 좋아서 시작했던 션은 처음에는 상장에 미온적이었으나 동업자의 강력한 설득으로 기업공개 절차에 돌입했다.

출처: 션 SNS

하지만 야심 차게 내놓았던 두 번째 후속 브랜드가 연이어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지면서 공모 계획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만약 상장에 성공해 보유 지분을 장내에서 현금화했다면 단숨에 수십억 원대의 막대한 거금을 쥘 수 있었던 일생일대의 기회가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션은 수십억 원의 횡재가 무산된 과거를 후회가 아닌 축복으로 돌아봤다.

그는 혈기 왕성하던 20대 젊은 나이에 손쉽게 큰돈을 거머쥐었다면 값비싼 외제 차나 호화 주택을 사들이며 찰나의 쾌락에 빠져들었을 것이라며, 일확천금의 기회가 사라졌기에 땀 흘려 일하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삶의 본질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출처: 션 SNS

물질적인 풍요에 도취되지 않고 삶의 올바른 궤적을 지켜낸 이 같은 결핍은 훗날 그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단단한 가치관은 2004년 배우 정혜영과 화촉을 밝힌 직후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되었다.

결혼 이튿날부터 하루에 1만 원씩을 떼어 첫 결혼기념일에 365만 원을 기부한 작은 실천을 시작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주거 개선 및 어린이 재활병원,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 등으로 나눔의 보폭을 넓혀갔다.

현재까지 션의 개인 누적 기부액은 65억 원에 달하며, 81.5km를 완주하는 광복절 기부 마라톤 '815런'을 통해 1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아 총 33채의 보금자리를 헌정했다.

거액의 상장 대박 대신 이웃과의 연대를 선택한 그의 우직한 인생 역정은 진정한 성공의 척도가 통장의 잔고가 아닌 삶의 태도에 있음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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