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희미해진 도리깨가 일깨운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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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희한한 광경을 봤다.
두 남정네가 들깨를 매트 위에 펴놓고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다.
도리깨는 곡식의 이삭을 햇볕에 말린 뒤에 두드려서 알갱이를 터는 데 쓰는 농기구다.
흔히 콩·팥·들깨 등을 멍석 위에서 말린 후 도리깨질을 하는데, 한쪽을 턴 다음 뒤집어서 다시 한번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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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희한한 광경을 봤다. 두 남정네가 들깨를 매트 위에 펴놓고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저런 농기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비록 재질이 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지만 모양과 기능은 똑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 부딪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도리깨를 내리쳤다. 어릴 때 농촌에서 자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보리타작부터 가을걷이까지 동네 곳곳에서 수도 없이 봤던 장면이었다.
도리깨는 곡식의 이삭을 햇볕에 말린 뒤에 두드려서 알갱이를 터는 데 쓰는 농기구다. 흔히 콩·팥·들깨 등을 멍석 위에서 말린 후 도리깨질을 하는데, 한쪽을 턴 다음 뒤집어서 다시 한번 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알맹이가 껍질에서 쏙 빠진다. 도리깨질이 아니었다면 손으로 일일이 껍질을 까야 하는 고된 작업이 됐을 터다.
그렇다고 도리깨질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도리깨는 손잡이가 되는 긴 막대기 끝에 구멍을 뚫고 비녀못을 끼운 다음 도리깻열을 매어 만든다. 도리깻열은 곡식 알갱이를 터는 부분으로 두서너개의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다. 농사꾼은 도리깨를 힘껏 내리쳤다가 하늘 높이 들어 다시 치는데, 이때 도리깻열이 바닥에 있는 곡식 다발에 최대한 강하게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을 그리듯 공중에서 도리깻열을 돌려야 하므로 일정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다. 여기서 나온 속담이 ‘일 못하는 일꾼이 도리깨 탓한다’이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도리깨 탓할 때가 참 많았다. 도리깨는 탈곡기나 콤바인이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양이 많지 않은 들깨나 콩을 터는 데 거창한 농기계를 쓰는 것보다 가벼운 도리깨가 더 낫기 때문이다.
열살짜리 어린아이가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슬래브지붕 집에서 아파트로 옮겨 다니는 동안 5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사는 데 정신이 팔려 삶을 지속하게 해준 사람이나 사물의 소중함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타임슬립(time slip·시간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내 눈앞에 도리깨질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잊고 살았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고, 사라졌다고 해서 도움받은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 목숨은 여름날의 보리타작부터 가을날의 들깨 털기까지 끊임없이 심고 거두고 수확해서 밥상에 올려준 이들 덕분에 이어올 수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감사한 일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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