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리의 '벤처 대출', 꽃길 청신호일까[B.플패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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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로터)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가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속 신규 투자금 500억원 조달에 성공하며 안정적 운영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에이블리는 이번 투자 유치를 시리즈C 투자라운드 성공 기반으로 보고, 연내 조 단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밸류에이션 달성까지 박차를 가한다는 목표다.

특히 이번 투자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벤처 대출(Venture Debt)'로 진행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해 말 신설한 투자전략실의 '남다른 돌파구'라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향후 추가 투자와 유니콘 달성의 청신호가 켜진 것인지 주목된다.

벤처 대출, 투자전략실 인재 영입의 성공?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벤처 대출(Venture Debt) 형식으로 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투자는 사모펀드(PEF) 파인트리자산운용이 참여했다. 이로써 에이블리는 누적 투자 금액 2230억원을 달성했다.

이상민 에이블리 투자전략실 실장. (사진=에이블리)

벤처 대출은 스타트업이 금융기관 또는 사모펀드(PEF)로부터 낮은 금리로 대출받는 대신 해당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를 유치할 때 대출 당시 정해놓은 기업가치로 신주인수권(워런트)을 확보, 즉 일정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방식이지만 벤처 대출은 북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에어비앤비가 벤처 대출 형식으로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 식스스트리트파트너스 등으로부터 10억달러를 조달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매출이 급감해 위기에 몰렸던 에어비앤비는 벤처 대출 약 8개월 뒤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국내 환경에 맞춰 미국 실리콘밸리 방식을 변형한 형태의 벤처 대출로 스타트업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에이블리는 이번 벤처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을 두고 "'투자기관과 스타트업 양사 모두 윈-윈(Win-Win)하는' 전략적 자금 조달 방식"이라고 자평했다. 요즘같은 투자 혹한기에서는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가치를 낮추는 경우가 많지만, 벤처 대출을 통해 지분 희석없이 에이블리의 기업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다.  

동시에 업계는 에이블리가 이번 벤처 대출 형식으로 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 것을 두고 적절한 시기가 빛을 발했다고 봤다. 벤처 대출이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선진 투자 기업으로 인식돼 있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부정적인 인식도 생겼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초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전환사채(CB)를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시기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벤처 대출 방식의 자금 조달이 어려웠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에이블리 애플리케이션 화면. (사진=에이블리)

동시에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지난해 실시한 인재 영입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영입한 이상민 에이블리 투자전략실장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지난해 11월 에이블리에 투자전략실을 신설하고, 투자 전략 부문 총괄 리더로 글로벌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메릴린치 출신 이상민 실장을 영입한 바 있다. 에이블리에 따르면 이상민 실장은 삼일회계법인 PwC 글로벌 및 딜 본부에 해외 진출 전략, 자본시장 및 M&A 관련 자문을 담당했다.

에이블리는 지난해 연초 670억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누적투자금 1730억원을 기록했지만, 다음 투자 라운드 유치와 유니콘 달성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지표가 개선되고 있음에도, 국내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 상황인 만큼 에이블리만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에이블리는 국내 및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쌓은 경험이 있는 이상민 실장을 영입하며 국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중장기 성장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에이블리 내부에서도 이번 500억원 규모 자금 조달은 이상민 투자 전략 실장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됐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 실장은 평소 "특별한 기업이 되려면 투자 역시 남다르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BEP 목전에…후속 투자·유니콘 달성 부담도

한편 에이블리에게는 후속 시리즈C 라운드 투자 유치와 유니콘 달성이라는 부담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벤처 대출의 경우 후속 투자 라운드 유치 성공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시리즈C 투자 유치 실패 시 대출 상환 및 기업가치 재고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진=에이블리)

업계에 따르면 에이블리는 시리즈C 투자 라운드를 준비하면서 자사 기업가치를 1조2000억원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플랫폼 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속됨에 따라, 에이블리가 후속 투자에서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1위 무신사 외에 최근 국내 온라인 패션 폴랫폼들이 다소 고전하고 있는 상황으로, 에이블리 역시 지난 2020년 387억원, 2021년 72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에이블리는 시리즈C 라운드 유치 및 유니콘 달성이라는 목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꾸준히 앱 이용 지표가 개선되며 외형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 근거다. 특히 에이블리 내부에서는 이르면 다음달 월간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해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진=와이즈앱)

최근 에이블리는 1000억원 대 월 거래액, 연 거래액 1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외형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에이블리에 따르면 에이블리는 론칭 4년 만에 패션 플랫폼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700만명을 돌파했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의 조사에서도 지난해 12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전문몰 앱으로 에이블리(672만명)가 꼽혔다.

이에 강석훈 에이블리코퍼레이션 대표를 비롯한 에이블리 경영진들은 에이블리가 빠른 시일 내에 흑자 전환, 즉 '돈 버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에이블리가 이번 자금 조달 소식을 전하며 에어비앤비를 예시로 든 만큼 향후 IPO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블로터>에 "곧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이번 자금 조달을 기점으로 시리즈C 라운드 유치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